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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칼럼] 이토록 처절한 ‘선물하기’의 세계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 - 1화
커피부터 음식, 문화예술 공연, 책 구독 서비스, 건강검진마저 ‘선물하기’가 가능해진 세상. 선물하기는 우리의 삶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마음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 (2023.12.29)
기후위기 시대, 소비와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법을 고민하는 이소연 에디터의 에세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생일 아침. 보글보글 끓던 엄마의 짭조름한 미역국 냄새 대신 까랑까랑한 모닝콜 소리가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눈을 채 뜨지도 않은 채 더듬더듬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확인한다. 12시 정각에 맞추어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몇몇 친구들의 이름이 보여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엄지를 몇 번 내려보지 않았는데 이내 끝나는 메시지. 에잇. 이런 게 뭐가 중요해, 이불을 박차고 나오지만 어쩐지 힘이 쭉 빠진다.
점심시간.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확인해 보세요!’ 반가운 연락들에 마음이 풀어진다. 집에 뒹굴어 다니는 핸드크림이 많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렇게 선물을 챙겨주는 게 고마운 거지. 택배를 받아볼 주소지를 기분 좋게 남기고 선물 후기도 미리 남긴다. 맛집 후기처럼 별점도 매길 수 있다.
며칠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탄 엘리베이터. 벌어지는 문틈 사이 어둠 속에 택배 상자가 잔뜩 쌓여있다. 한걸음에 달려가 확인해 보니 와, 이게 다 뭐야. 집 앞에 귤 박스며 롤케익 상자며 건강 챙기라는 홍삼 세트까지. 위로감과 안정감을 넘어선 어떠한 확신마저 생긴다. 그래! 내가 인생을 참 잘 살았구나. 찬 공기가 들어오는 무거운 대문을 발로 밀어 잡아두고 택배를 하나둘 집 안으로 들인다. 투박한 택배 상자와 새하얀 스티로폼은 한쪽으로 제쳐두고, 안에 고이 접혀 동봉된 쇼핑백과 선물용 포장 상자를 요리조리 접어 인증샷을 찍는다. 인증샷에 달린 좋아요와 댓글을 몇 번이고 새로고침하다 잠이 든다.
2010년 등장한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친구로 추가되고, 친구가 되면 생일을 알려준다. 생일인 사람의 프로필 옆에는 앙증맞은 선물 상자가 콩콩 뛰는데 그 버튼을 누르면 300원짜리 막대 사탕부터 5000만 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브랜드 제품까지 모든 연령, 가격, 취향을 총망라한 휘황찬란 선물하기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몰랐다. ‘선물’하기가 아닌 ‘선물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나지 않는 강제 선물의 늪에 5000만 전 국민을 빠뜨리는 신호탄이 되리라는 것을.
“아. 누가 카카오 선물하기 기능 좀 없애줬으면 좋겠어.” 한 해를 떠나보내는 송년회 자리에서 누군가 한숨과 섞어 흘려보낸 말은 탄식에 가까웠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하며 정색하는 표정으로 동의 표를 보태었다. 나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도 수많은 선물하기와 선물받기의 늪에 빠져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9명이 모바일 선물하기 기능으로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연말. ‘진작에 선물이라도 사서 찾아뵈어야 했는데’라는 한마디 인사치레는 이토록 철두철미한 ‘선물하기’의 세계에서는 눈곱만치도 허용되지 않는다.
“선물 받은 것 안 쓰고 환불하면, 선물 준 사람에게 티 나나요?” 책상을 가득 채운 선물 상자 앞에서 찍은 인증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이, 비공개와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커뮤니티에는 ‘받은 선물 티 안 나게 환불하는 법’에 대한 질문과 노하우도 쌓이기 시작했다.
한 플랫폼의 대표 카피 문구다. 선물하기가 마음을 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는 모르겠어도, 세상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선물함으로써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고립된 원자 상태에서 손쉽게 벗어난다. 적어도 한 해 한 번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믿음 아래에서 이 세상에 꼭 맞는 자리를 갖게 됐다고 느낀다.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나 의심, 외로움도 사라진다.
하지만 상세하게 남아있는 선물 ‘취득’의 기록은 한 해 동안 인생을 잘 살았노라 하는 작고 소중한 훈장인 동시에 언젠가 돌려주어야 할 곗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들이 얼마나 오려나 마음 졸이며 떡볶이며 김밥이며 잔뜩 차려두었다가, 북적해진 생일잔치에 뛸 듯이 기뻐하던 어린 시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아. 나중에 저 친구 집에 한번 가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
마음이 선물이 될까? 결국 선물하고자 하는 게 마음이라면, 혹은 사랑이라면 궁금해진다. 마음은 선물이 되는가. 생일을 어떻게 축하하더라.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없을 때 우린 어떻게 했더라.
에리히 프롬은 “실체로서 사랑이라는 사물은 없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뿐”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선물하기는 사랑 그 자체는 아니고 사랑의 행위에 가깝다. 따라서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큰 택배 박스를 하나둘 세는 것으로는, 떡볶이가 식어가는 생일 잔치에 모습을 드러내며 손을 흔드는 친구의 몸짓을 보는 것만큼이나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선물하기’는 이 삭막한 도시에서 우리가 (아직은) 타인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희미한 연결의 흔적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인 양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처사에 가깝다. 그러니 현대인들이여. 그 누구보다 1월 생일을 앞두고 선물하기를 주제로 칼럼까지 쓰게 된 나 자신이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지 않고 유일하게 나눌 수 있는 게 있다면 온전한 마음이자 순수한 사랑일진대 ‘난 작년에 선물했는데 왜 얘는 올해 선물을 안 해주지’하는 외상 거래장부 형태로 마음의 본질을 오염시키지 말지어다.
며칠 전 친구에게 따뜻한 음료를 ‘선물하기’ 했다. 우연히 발견한 ‘주고받은 선물 추억’ 기능에서 친구와 주고받은 선물 기록에 ‘받은 선물’만 반복된 것을 보고 도둑이 제 발 저린 탓만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온 친구의 한마디를 보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보낸 (진심 어린) 선물이었다.
각박한 현실에서 메신저로나마 서로 잘 먹고 잘 지내자 인사하는 건데, 뭐 현대인씩이나 거들먹거리며 그리 문제 삼아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선물하기’ 시장의 거래액은 5조 원을 넘어섰다. 365일로 나눠 보면 오늘 하루에만 약 137억 원의 물건이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돈이 되는 시장을 기업들이 가만 둘리 없다. 기업들은 사람들이 ‘선물’ 대신 ‘선물하기’하게 할 것이고, 이때 팔리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다. 1년에 하루뿐인 생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동료에게 비타민 음료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 고단한 하루를 보낸 친구에게 따뜻하고 달달한 음료로 위로를 전하고 싶은 마음. 커피부터 음식, 문화예술 공연, 책 구독 서비스, 건강검진마저 ‘선물하기’가 가능해진 세상. 선물하기는 우리의 삶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마음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
다가오는 연말. 우리는 여전히 사랑받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또 확인받기 위해, 특정한 사물을 소유하고 점유하며, 선물하고 선물 받겠지만 그것만이 삶을 확인받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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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기후위기, 환경, 포스트팬데믹 뉴노멀에 대한 글을 썼다. 바닷속과 바닷가의 쓰레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됐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폐어구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릿터] [코스모폴리탄] [1.5도씨매거진] 등 다수의 매체에 기후위기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영펠로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2020년 제2회 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십)에서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을 연구했다. 그 밖에 스브스뉴스 「뉴띵」, 모비딕 「밀레니얼 연구소」, EBS FM 「전효성의 공존일기」, KBS 라디오 환경의 날 특집 같은 예능·교양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환경 교육 및 특강을 진행하는 등 일상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 그린워싱, 패스트패션의 허와 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