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해진 “겨울은 기필코 끝난다는 말”
『겨울을 지나가다』
어떤 힘든 시기(겨울)가 끝나면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2023.12.26)
엄마 명순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항암 치료를 시작한 게 작년 늦봄이었다. 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올해 9월에는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남은 시간은 3개월 남짓. 엄마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르기를 바랐으므로 딸 정연은 J읍으로 향했다. 서울에서의 일과 일상을 등 뒤에 두고 엄마의 곁을 지켰다. 겨우 두 달이 지나고, 엄마가 떠났다. 성큼 다가온 것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동지(冬至)의 시간이었다. 정연은 엄마의 집에 남기로 한다. 엄마의 옷과 신발에서 체취를 느끼고, 엄마가 식구로 맞은 강아지 정미를 돌보고, 엄마 대신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엄마와 이웃한 사람들을 만난다.
『겨울을 지나가다』는 딸 정연의 시간을 가만히 비춘다. 그 속에는 작별도 있고, 애도도 있고, 뒤를 이어 계속되는 삶도 있다. 엄마를 떠나 보내며 동지를 맞았던 정연은 대한(大寒)을 지나 우수(雨水)에 이른다. 소설가 조해진은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에 기대어 견디고 싶던 겨울날, 독립서점 마바사에서 조해진 작가를 만났다.
『겨울을 지나가다』는 “선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 제일 따뜻하다”고도 하셨고요. 이번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이전 작품에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인 문제, 이슈들에 대해서 썼었는데요. 물론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요.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나 겪을 수 있고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슬픔에 대해서 썼어요. 세부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전에는) 항상 어떤 관계나 끝나 있거나 끝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이야기도 들어있고요. 그래서 이전 소설보다 온기가 더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예리한 칼을 쓰지 않고 요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어떤 작품을 더 좋아하는가 하는 것은 독자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저도 이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요. 다만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픔이 왔을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주인공 정연은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 이야기가 작가님의 ‘슬픈 꿈’에서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님이 부재하는 슬픔 꿈을 꾸셨다고요?
맞아요, 그런데 그건 작은 계기였고요. 원래는 ‘인생의 기본값이 바뀌는 인물’을 써보고 싶었어요. 익숙한 직장과 관계에서 벗어나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전혀 다른 것에 집중하는 인물을 써보고 싶었는데, 그 계기가 무엇일지 생각하니까, 정연이라는 인물에게 현재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난 후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소설을 구상하다 보니까 제가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는) 꿈을 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꿈이 너무 슬프기도 하고 좀 울컥해서, 약간 변형하기는 했지만 소설에 담기는 했어요.
한 명의 딸로서 『겨울을 지나가다』를 쓰시는 시간은 어땠나요?
저희 엄마의 부재를 구체적으로 상상했다기보다는, 저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애도의 방식을 이렇게 (정연처럼) 배워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어요. 그리고 제가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살아온 날이 더 많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되면서, 질병 돌봄 죽음 애도 이런 주제에 관심이 부쩍 늘더라고요. 그런 책도 많이 읽고요. 김진영 작가님의 책과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 『자유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제 질병과 죽음에 대해서도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엄마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지만, 제가 갖고 있는 ‘나도 이렇게 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나중에 묘지나 납골당에는 가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병원이나 시설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그런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반영됐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고 쓰셨습니다. 때로는 이 말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아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것 같은 때가 있잖아요.
맞아요.
그럼에도 ‘겨울은 반드시 끝난다’고 확신하시나요?
저도 예전에는 굉장히 시니컬할 때도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했지만, 언젠가부터 확신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끝이 있다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조건적인 낙관을 믿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힘든 시기(겨울)가 끝나면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믿음을 공유하는 것도 문학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한 번이라도 ‘나만 이렇지 않구나’ 혹은 ‘다르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을 줄 수 있다면 문학의 큰 힘이 아닐까, 그럴 수만 있다면 소설을 통해서 겨울은 기필코 끝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싶어요. 다르다고 생각해요,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건.
이 소설은 ‘동지冬至’ ‘대한大寒’ ‘우수雨水’의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드러나는 절기를 제목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으시죠?
(2015년에 발표한) 『여름을 지나가다』의 목차는 ‘6월’ ‘7월’ ‘8월’ ‘여름의 끝’이었는데요. 처음에 겨울이라는 시간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12월’ ‘1월’ ‘2월’을 생각하기는 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목차를 생각하다가, 절기라는 것이 신비롭게도 자연의 변화를 다 보여주잖아요. 그리고 이 소설 안에서 반복되는 자연, 순환하는 자연이 중요한 배경이 되기 때문에 절기랑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각 달마다 어울리는 절기를 찾아서 제목을 붙이게 됐죠. 가장 밤이 길었을 때 엄마가 떠나고, 가장 추울 때 슬픔이 극대화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추울 때 그 끝에는 봄으로 나아가는 틈이 벌어지잖아요. 우수는 말 그대로 눈이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비가 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우수를 맞으면서 자신의 애도가 완성됐다고 생각하면, 아마 우수가 별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것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것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새로운 봄을, 애도를, 안고 사는 거겠죠. 그게 죽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고요.
『여름을 지나가다』가 연상되는 제목인데요. 지으실 때 고민은 없으셨어요?
많이 했죠. ‘겨울’이 들어가는 제목을 많이 생각했다가, 『여름을 지나가다』와 연결해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은 다르지만 청춘을 대변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소설)을 읽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으로써의 겨울을 읽어도 좋겠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시리즈인 듯 아닌 듯한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름이라는 시절에 대해서 갖고 계신 이미지, 겨울 하면 떠올리시는 이미지도 있을까요?
여름은 왕성하죠. 뭔가 좀 축축하기도 하고. 변화무쌍하고, 뜨거울 때는 되게 뜨겁고,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무한 성장할 뿐이지 열매가 없잖아요. 태풍도 오고. 그런 변화무쌍함을 겪으며 성장만 할 뿐이죠. 여름 하면 그런 청년, 청춘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름을 지나가다』를 썼을 때가 벌써 8년 전이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청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까 청년 맞았는데. (웃음) 그때는 청춘을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는데, 돌아보니까 ‘나도 그때 젊었는데, 오히려 내가 쓰면서 위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겨울은 어떤가요? 작가의 말에서 ‘겨울을 탄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재미있게 표현한 거지만, 그런 편이기는 해요. 겨울에는 기분이 다운될 때도 많고, 뭔가 사고를 칠 때도 겨울이 많고. (웃음) 그런데 또 겨울의 풍경을 좋아하거든요. 겨울의 풍경이 ‘이전까지 겪지 못했던 슬픔을 배워가는, 그렇지만 영원히 배울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인물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명순은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어요?
아마 제가 되고 싶은 생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고요. 명순의 어떤 조각들, 식당을 하고 미용실에서 식자재를 사고 젊었을 때 고생했고... 이런 건 사실 저희 엄마에게서 많이 가져오기는 했어요. 그래서 작가의 말에도 고맙다고 썼고요.
소설을 읽고 난 뒤에도 명순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주 멋있고 쿨한 인물이라서, 이상적인 인간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렇죠. 저도 명순이라는 인물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쓰고 나서도.
작가님은 정연에게 어떤 것을 주고 싶으셨나요? 커다란 부재를 겪고 있는 인물에게 무엇을 주고 싶으셨어요?
아마 이전까지 정연에게 제일 중요한 건 일이었을 것 같아요. 자기 일에 대한 욕심과 애정이 많은 인물이기 때문에. 엄마가 떠날 수도 있다는 걸 외면도 했겠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엄마가 더 이상 예외적인 풍경을 누리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닫고, 그 자리에서 일을 내려놓기로 결정하고 (엄마가 있는 J읍으로) 내려가잖아요. 그러면서 정연은 무언가 자기를 붙잡고 있던 것으로부터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의 부재를 겪으면서 극도의 슬픔 속에 있지만, 결국 정연을 움직이게 하는 건 강아지 정미와 길고양이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 ‘란 미용실’의 아주머니처럼 엄마가 남기고 간 관계들이잖아요. 아마 엄마의 부재를 겪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인데, 그런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원래의 삶에서 약간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도 된다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여름을 지나가다』랑은 비슷한 듯 또 다르죠. 『여름을 지나가다』에서도 주인공이 약혼자의 어떤 모습을 보고, 또 노동자의 죽음을 보고, 회사에서 나와서 즉흥적으로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구하는데요. 그런 면은 약간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삶을 살아보면서 ‘(원래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연이 J읍에서 만난 사람 중에 영준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짐작도 못했던 사연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영준에게 왜 이런 전사를 주셨는지, 왜 그런 인물을 정연과 만나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연과 영준) 둘 다 죽음을 겪은 거죠. 물론 영준은 (죽은 사람이) 가족은 아니고, 일종의 사회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층위이겠지만, 어쨌든 안타까운 죽음을 겪은 거죠. 이 소설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인 이야기도 어떻게든 담게 되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죽음이 많고, 특히 젊은 청년들의 죽음이 많다고 느껴져요.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저도 영준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죽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제 주변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점점 희소해지는 안타까움도 있어요. 그조차도 외면하거나 비웃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누군가의 사회적인 죽음에 무심해지거나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통해서라도 한 순간이나마 그런 사회적인 죽음을 생각해 보고, 구체적인 사람으로서 한 생애를 생각해 준다면, 그런 무심한 비인간적인 비웃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소설을 쓸 때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다현’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 한 사람을 보게 되잖아요. 기사에 나오는 A씨나 ㄱ씨가 아니고요.
그렇죠.
누군가 내 곁에서 떠났을 때,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죄책감과 회한 같은 것이 있죠. 정연과 영준은 그 감정들을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갈까요?
결국 그 참담함과 슬픔을 보듬고 사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너무 금방 잊거나 더 무심해지지 않고, 시간을 더 들이고 더 생각해 보고, 그것조차도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 것의 연속이 아닐까요. 그것이 맞지 않나 생각돼요.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을 결국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나 이게 왜 이것밖에 못 느끼지?’라고 생각하는 거고, 이것밖에 못 느껴도 그것을 안고 사는 것도 보편적인 모습이고. 그러니까 그것 자체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방금 하신 말씀을 들으니까 소설의 결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맺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두 사람이 어떻게 됐다’ 이렇게는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두 사람의 몫이겠죠. 둘 다 공통점은 있어요. 다 내려놓고, 그 부채감을 안고 떠나왔다는 것. 그 안에서 또 작은 기쁨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끝나지 않을 부채감을 안고 살면서도,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들을 만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또 작은 생명들을 보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의 말에서 ‘이런 시대에 여전히 소설을 읽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타인의 고통에 관심 갖지 않고, 자극적인 것만 찾고, 무언가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에는 다른 이의 고통 때문에 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아픔 고통에 예민한 것은 아무리 해도, 어떤 깊이어도, 다 귀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로. 저는 그것이 어떻게든 남아 있기를 바라는 쪽이고요. 그것을 온기라고도 할 수 있겠고 휴머니티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잊지 않고 언젠가 인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는 쪽이에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이미 소중하고, 지켜졌으면 좋겠고요. 나도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내년에 등단 20주년을 맞으시죠. 축하드립니다! (웃음)
언제 이렇게 20년이 훌쩍 흘렀죠? (웃음)
소감이 어떠신가요?
소설이 어려운 건 똑같은 것 같아요. 여전히 쓰는 동안 막막하고, 물론 완성해 가는 기쁨도 있지만, 지금도 빈 종이를 보면 어떻게 써야 되지? 싶은 건 똑같아요. 책이 나와도 그래요. 처음의 설렘도 있고 걱정도 되고. 나이가 들어 들고 등단 연차가 쌓여도 의연해지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조금씩 희석되긴 했겠지만. 그리고 소설에 대한 마음도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애정이라든지 ‘그래도 쓰고 싶다’는 마음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고요. 여전히 쓰고 싶은 것을 쓰고요.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에 여전히 감사하고. 20년이 됐지만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20년 동안 계속 써온 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웃음)
저에게도 겨울이 있었겠죠. 쓸 수 있어서 지나온 것 같아요. 쓰지 않았다면 또 다르게 살았을 수도 있지만, 쓸 수 있어서 그 순간순간들을 지나온 것 같아요.
누군가 어떤 일을 지속하는 데에는 분명 동력이 있겠죠. 작가님은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고 계속 써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독자로서도 소설을 너무 좋아하고, 문학에 대한 선망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소설 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두세 번째 책을 낼 때까지는 독자 반응이라는 걸 많이 못 느끼기는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책을 읽고 자기 삶의 작은 변화들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산책을 하게 됐다, 일기를 쓰게 됐다, 누구한테 편지를 썼다... 그런 말들이 저에게 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빛의 영원’이 될까요?
지금 연재 중인데, 절반 정도 썼어요. 『빛의 호위』를 장편화한 거고요. 분쟁 지역 다니는 사진가 이야기인데, 저도 쓰면서 배워요. 분쟁 지역을 갔다 온 간호사, 다큐멘터리 PD, 국경없는의사회 분들이 쓰신 책을 (자료)조사차 읽는데요. 참 대단한 분들이 많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고 배워요. 자기의 건강과 목숨을 다 던져서 그렇게 산다는 게, 보상이 큰 것도 아니고 누가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도 아닌데, 용기 있는 분들이 참 많구나 싶고요. 저도 배워요. 예전에 『로기완을 만났다』를 쓰면서 난민에 대해서, 그리고 입양 이야기 쓰면서는 입양의 역사에 대해서 그랬고요. 저도 쓰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꼭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문학이 오래오래, 외면 받지 않고 사랑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워낙 요즘 위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니까요. 서점들도 많이,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요. 문학을 읽는다는 건, 어쨌든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잖아요. 저도 문학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이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인 죽음이나 아픔에 대해서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위로라는 걸 왜 해야 되지? 나도 힘든데?’ 이런 생각도 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읽게 되고, 타인을 계속 생각하게 되고, 상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방식으로 살고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거든요. 문학이 여전히 남아서 누군가에게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일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조해진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환한 숨』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를 장면으로 기억하는 내게는 인생 영화가 딱 한 편 있지 않고, 대신 끊임없이 재생해보는 ‘장면들’이 있다. 지금까지 잊은 적 없고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은 두 장면이 있는데,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 엔딩 신과 언제라도 나를 웃게 해줄 수 있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 속 생일 파티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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