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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단색화 거장 박서보, 별이 되다

한국 현대미술계의 핵심 인물 故 박서보 화백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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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의 성장에 일조한 한 명의 거장이 떠난 이 순간, 모두에게 긴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故 박서보 화백의 작품과 발자취는 전 세계 곳곳에 고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2023.12.21)

YES24의 새로운 아트 커뮤니티 ARTiPIO가 들려주는 ART STORY.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아티피오 사이트 바로가기

참고 링크: 박서보재단(前 기지재단)


살아있는 한국 미술계의 역사이자 단색화 거장 중 한 명이었던 박서보(Park Seo-Bo, b.1931-2023)화백이 2023년 10월 14일 타계하며 미술계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습니다.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단색화 거장’ 등 어떤 수식어도 빠질 수 없을 만큼 미술계에서는 핵심 인물이었죠. 일평생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쓴 것뿐 아니라, 미술행정까지 전면에 앞장서 한국 현대미술을 이끈 인물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향년 92세의 나이까지 故 박서보가 이룬 시기별 작품 세계에 대해 알아볼까요?


故박서보 화백의 모습 Photo : Hangil Lee


그의 작업 일대기는 크게 5가지초창기, 원형질 시기, 유전질 시기, 초기묘법 시기, 후기묘법 시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6.25 전후 상황을 겪은 박서보의 20대는 정신없이 흘러 갔는지도 모릅니다. 1956 서울 명동 동방문화회관에서 《4인전》을 열어 ‘반(反)국전 선언’을 외치며 당시 유일한 등용문인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중심의 제도 미술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저항 정신을 보입니다.

이후 현대미술가협회에 합류해 정기 그룹전인 《현대전》에서 선보인 박서보 및 현대전 참여 작가들은 비형상주의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의 전위적 활동매진합니다. 이른바 ‘비정형’이라고 하는 유럽의 앵포르멜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혼합한 ‘추상 회화’가 전면적으로 부상된 것이죠. 이처럼 그의 작업은 앵포르멜 화풍을 통해 초기 전위예술가로서의 활동을 구체화합니다.


1961년 유네스코 후원 국제조형예술협회 프랑스 위원회가 주최한 ‘세계 청년화가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박서보가 자신의 작품 ‘원죄’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박서보재단


이후 1961년 프랑스 파리 ‘세계 청년화가 대회’에 한국을 대표할 만 30세 이하 청년 대표작가로서 참석합니다. 이때 11개월간 파리에 머물며 기존 뿌리기와 흘러내리기에 주목한 그의 작업은 큰 변화를 맞이하며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이게 되는데요. 파리에서 귀국 후 제작한 <원형질>시리즈는 오브제를 태워 화면 위에 형태를 쌓아 올리고, 나이프로 깎거나 쓸어내리고, 마티에르를 주는 방식을 통해 ‘전쟁의 트라우마’로 뒤섞인 암담한 미래 속 겪는 불안감을 작품에 표현하게 됩니다. 해당 시리즈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제작됩니다.


《제13회 현대작가초대전》 (1969. 7. 1. - 7. 10, 중앙공보관화랑) 사람이 빠져나가고 옷만 있거나, 옷만 걷는 형태의 작업인 <허상(虛像)> 시리즈 작품 앞에 앉은 박서보의 모습, 사진 제공 : 박서보재단


이후 이어진 초기 <유전질>시리즈는 이전 <원형질>시리즈와 상반되게 전통적인 오방색을 활용해 기하학적 추상을 선보입니다. 이 시기에 작가가 한국의 전통에 대한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구상성을 드러내며, 에어 스프레이 기법을 활용해 원색적이고 팝아트적인 색채를 구사합니다. 이때 서구 미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죠. 이 시기에는 평면 작업뿐 아니라 설치 작업인 <허상(虛像)> 시리즈도 선보입니다. 해당 시리즈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제작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2019.05.18. – 09.01.)》 박서보 개인전 전시 전경


이후 박서보의 대표 시리즈<묘법(描法)/Écriture)>시리즈를 맞이합니다. <초기묘법>시리즈는 아들의 공책 낙서에서 착안한 반복적인 연필 긋기는 안료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연필의 필압에 의해 밀려나간 안료는 축적되며 작가의 신체 호흡에 따른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해당 시리즈는 1969년 일본에서 만난 이우환 작가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며 1967년부터 1986년까지 작업이 이어집니다.


좋은 예술이란 과연 뭘까, 그 답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네 살배기 둘째가 형이 글씨를 쓰는 걸 보고 흉내를 내더라고.

방안지 칸에 글자를 적으려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야.

제풀에 화가 나서 종이에 마구 연필을 휘갈기더라고.

이게 바로 체념의 몸짓이구나, ‘비움’이구나 싶었어.”

- 박서보 -


오래 물에 불린 한지를 캔버스 위에 여러 겹 쌓고, 문지르거나 긁어내면 수많은 골이 생긴다. 골짜기를 품은 캔버스를 가까이서 보면 밭고랑이 떠오르기도 한다. 2014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30×200cm 사진 출처 : W Korea


이어 제작되는 <후기 묘법>시리즈에서는 빠질 수 없는 재료인 ‘한지’를 기반으로 제작됩니다. 서양 종이와 달리, 안료를 흡수해 일체화하는 한지(혹은 닥지)의 특성을 자연의 일부 삼아 한국인의 자연관을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초기 묘법과 동일하게 연필로 선을 긋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한지에 스며드는 한지의 침투성과 흡수성과 만난 작가의 반복적 행위매개로 화면 위에 박서보만의 마티에르로 거듭납니다.

생전까지 지속된 <후기 묘법> 시리즈는 제작 시기별 주된 특징이 구분되는데요.  ‘지그재그’ 시기(1982-1993)에 이어 블랙 작품을 첫 등장으로 모노톤의 ‘블랙  화이트’ 시기(1994-2004)를 선보입니다. 이 시기와 중첩되며 2000년부터 레드등장하고, 이후 점차 지속적으로 다양한 색상을 찾아 나갑니다.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2023.08.31-12.03》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 과정에서 생성된 물성을 정신화하는 것,

이것이 단색화의 요소이다.”

- 박서보 -


이러한 그의 <묘법>시리즈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로 열린 단색화전을 통해 해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소위 ‘단색화 열풍’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단색화의 예술적 가치가 조명된 데에는 박서보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이처럼 일평생 50여 년 작업의 후반부가 돼서야 빛을 발한 박서보의 작가로서의 외길 인생은 2023년 2월 폐암 3기 판정 소식 이후에도 끊임없이 펼친 작업과 활동을 감행한 그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2024년 준공될 제주 ‘박서보 미술관’ 예상 이미지 ⓒ 박서보 미술관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은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몹시 중요하게 여겨온 프로젝트인데요. 지난 5월,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박서보 미술관의 기공식을 참석했던 그는 "미술관에 오는 분들이 내 작품을 보고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다 풀고 치유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그의 바람 대로 내년 여름 완공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박서보 이름을 딴 첫 미술관인 박서보 미술관은 스페인 출신 건축가인 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가 맡았으며, 제주 자연의 빛과 그림자, 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건축될 예정입니다.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2023.08.31-12.03》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좌) Park Seo-Bo Park Seo-Bo Ecriture No.200402 2020 Pencil,Acrylic and Oil on canvas 22x31cm
(우) Park Seo-Bo Park Seo-Bo Ecriture No.200407 2020 Pencil,Acrylic and Oil on canvas 30x41cm


부산 조현화랑과 박서보의 인연은 1991년부터 14회에 걸쳐 지속되어 왔는데요. 이번 전시는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신작 묘법을 볼 수 있기에 보다 의미 있는 전시입니다. 떠나는 박서보의 마지막 작업의 발걸음이자 마지막 전시가 된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은 12월 3일로 연장되어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

그 시간만큼을 알뜰하게 살아 보련다. (…)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 박서보 -


Park Seo-Bo Solo Exhibition Installation View(2023.02.25-04.01)White Cube West Palm Beach© the artist. Photo © White Cube (Oriol Tarridas)


이외에도 미술 애호가에게 상징적인 공간이자 유럽 최대 상업 갤러리인 영국 화이트큐브의 전 세계 분점 곳곳에서 2016년부터 전속 작가로서 각종 개인전을 선보였는데요. 최근까지도 SNS를 통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내년 화이트큐브 뉴욕에서 선보일 신작인 신문지 작품을 준비 중이었기에, 그가 떠난 이후에도 예정된 내년 전시는 기대로 남아있습니다.


故 박서보 화백의 모습. 사진 제공: 조현화랑


온전치 않은 건강 상태에도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의 행보에 이어진 비보 소식은 갑작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사실 故 박서보 화백은 가는 길에 대한 스스로의 준비를 담담히 받아들여온 듯, 마지막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의 업적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죠.

한국 현대미술의 성장에 일조한 한 명의 거장이 떠난 이 순간, 모두에게 긴 아쉬움을 남깁니다. 떠나기 전의 업적인 제주 박서보 미술관의 완공이나, 화이트큐브에서 공개될 신문지 작품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하고 떠난 것은 그에게 너무도 큰 아쉬움이 될 테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과 발자취는 전 세계 곳곳에 고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Park Seo-Bo, 박서보 개인전, Video, 2023 © Johyun Gallery Youtube


참고: 위키백과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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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숙 저
인물과사상사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국립현대미술관 저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
박서보
케이트 림 저
마로니에북스
Park Seo-Bo: The Untiring Endeav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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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저
국립현대미술관
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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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저 | 박서보,오광수 공감수
재원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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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저 | 박서보,오광수 공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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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티피오(ARTi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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