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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독서클럽2

독서클럽, 진한 공감과 무장해제의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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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에서 나는 M과 꼬마와 나 자신 사이를 수없이 오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서클럽의 테이블에 심윤경 한 사람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삼존불처럼 M 속성, 꼬마 속성, 나 속성의 세 존재가 나란히 앉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2023.12.08)

출처_Unsplash


2019년 <윤고은의 EBS 북카페>에서 매주 한권의 책을 소개해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라디오 일은 처음이라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책읽기가 여의치 않은 내 형편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결국 나는 매주 ‘에세이’를 한 편씩 소개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이후 1년 반동안 즐겁게 그 일을 잘 해냈고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만일 소개해야 하는 책이 소설이었다면 나는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난독 증세는 분야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 소설 쪽이 훨씬 읽기 힘들다. 에세이라면 소설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상당한 정도의 기대감을 느끼며 읽기에 임할 수 있다. 에세이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인생을 담은 책’이기 때문일 것 같다. 에세이를 읽는 것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실존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더 강하기 때문에 내가 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말로 사람을 좋아한다. 새로 만나는 사람도,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도 모두 다른 색깔의 즐거움과 반가움을 준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치유를 주는 것 또한 사람인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낯가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내면에도 꽤나 까다로운 여러 겹 장벽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잘 발달되어 있다. 초기의 어색함을 잠시만 견디면 상대방의 좋은 점, 낯선 점들이 눈에 들어오며 매력과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우리 사이에 아기자기한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면, 빙고, 그날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좋은 날이다.  

내가 참여한 독서클럽은 모두 학교를 기반으로 한 학부모 독서클럽에서 시작되었다. 내 독서클럽 회원들은 모두 아이를 키우는 문제, 아이를 공부시키고 진학시키는 문제들로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독서클럽에서 수많은 M과 꼬마들을 다시 만났다. 그것은 무시무시하면서도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다시 M과 대면하게 되는 많은 순간, 나는 수시로 공포심이나 격렬한 적대감을 느꼈다. 피가 역류하는 트라우마를 숨기고 표정을 고르게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그곳이 나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고함과 눈물로 뒤범벅된 과거의 어느 지점이 아니라 안전하고 화목한 독서클럽의 한 장면인 것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내 앞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삼지창을 들고 입에서 독사를 내뿜는 악마들이 아니라 평범하고 애정 깊은 엄마들이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표독해졌다가 돌아서서 후회하고, 반성과 다짐을 하지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내 얼굴이나 똑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소소한 실수들을 함께 나누며 빵 터져 웃고, 그 일화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좀 더 너그럽고 현명해지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래봤자 똑같은 바보짓을 반복하기 일쑤였지만 우리의 불안과 조급함을 조금이라도 멀리 밀어내려 애쓰고, 더 기다리고 더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과거의 상처들과 현재의 바보짓들을 조금씩 떠나보낼 수 있었다. 

나의 꼬마는 원한이 깊고 집요하다. 삶의 예상치않은 모퉁이에서 그 아이의 긴 비명을 마주하고 석상처럼 얼어붙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대형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칠 때다. 

“읽어봐. 다 가르쳐줬잖아. 몇번이나 배웠는데 아직도 못 해? 너 바보야? 이러려면 학원은 뭐하러 다녔어?”

돌아볼 필요도 없다. 영어 그림책을 펼쳐놓고 아이를 채근하는 젊은 부모와, 몸을 비틀면서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있는 어린 아이가 내 등 뒤에 있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꼬마의 곤혹스러운 수치심과 M의 억누른 분노는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날마다 수천억번씩 재현되고 있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어딘가에 존재하는 제 3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본다. 살아있는 전복의 등껍질을 떼어낼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자기혐오에 압도되어 어깨와 목덜미에서부터 소름이 비죽 솟아오른다. 터져나오려 하는 비명을 목 안으로 삼키며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겨 그 현장을 떠난다. 

그렇게 한번씩 과거의 망령이 엄습하고 나면 나는 며칠이나 감정의 조절을 잃고 갱년기의 체온이 고르지 않은 것처럼 마음의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해서 손부채질을 하며 지내야 한다. 마음 속에서 꼬마가 발악하고 있다.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M이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꼬마들은 울고 있으며 너는 비겁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고. 꼬마의 통곡과 비난이 끝나기까지는 보통 사나흘이 걸린다. 서점과 놀이터는 M의 부비트랩이 가장 흔하게 폭발하는 장소다. 그곳을 지날 때 나는 귀를 닫고 발걸음을 힘껏 빨리한다. 

학부모 독서클럽 또한 M의 텃밭으로 꼽힐만한 곳이다. 학부모 동아리의 특성상 그곳은 학부모들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다.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욕망이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넘칠락말락 할 때가 많은 그곳에서 꼬마는 눈에 쌍심지를 올리고 ‘M 감별사’로 행세한다. “저 사람은 M이야! 저 말과 표정과 행동은 M의 것이야! 여기서는 점잖은 척 하지만 집에 가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해! 아이들은 울고 배우자는 외면하고 온 집안은 지옥이겠지!” 

M이라는 의혹을 받은 사람에게 사나운 삿대질을 해대는 꼬마의 기세는 해방 직후 서북청년단의 완장질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꼬마의 비난은 ‘M 용의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는 나 자신도 M의 동조자, M과 한패로 몰려 똑같은 비난을 받는다. 말하자면 ‘아동학대 방조죄’와 비슷한 죄목일 것이다. 

독서클럽에서 나는 M과 꼬마와 나 자신 사이를 수없이 오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서클럽의 테이블에 심윤경 한 사람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삼존불처럼 M 속성, 꼬마 속성, 나 속성의 세 존재가 나란히 앉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내 내면에서 꼬마의 목청이 크긴 하지만 내가 부모의 노릇을 수행하며 느낀 고단함과 갈등 또한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쌓여 있다. 나는 순간순간 M이 되었다가 꼬마가 되었다가 하는 존재의 이동을 견디며 지그시 멀미를 참는다.

학부모 독서클럽을 하다 보면 별별 희한한 일화들이 쏟아져나온다. 어느 집 아이가 꼴통짓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꼬마조차도 눈이 휘둥그래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자람을 견뎌야하는 부모 노릇이 매 순간순간 쉽지 않은 미션인 것을, 꼬마는 머쓱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부모의 기대와 욕망이 아이의 자람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일화가 등장하면 또다시 꼬마는 신나게 목청을 높인다. “거 봐! 부모라는 이름으로, 선 씨게 넘었지!” 

중요한 것은, 꼬마가 화를 내는 순간에조차 그 목소리에 상당한 흥겨움이 묻어있다는 점이다. 독서클럽에 모여앉은 부모들이 자조를 섞어 나누는 우스꽝스러운 일화들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꼬마조차도 독기를 풀고 푸헥 웃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독서클럽은 내가 아는 가장 진한 공감과 무장해제의 시공간이다. 내 안에서 소리지르던 꼬마는 독서클럽에서 여러번의 발언권을 얻고 여러 목소리들을 경청한 끝에, 자식이자 부모로 살아가는 일들에는 여러 가지 다면성이 있음을, 인간은 약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거듭하지만 그런 자신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깨쳐보려는 끝없는 노력 속에 돌연한 아름다움과 성숙함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함을 천천히 깨달아갔다. 조금의 발전도 이룩하지 못하고 끝내 자신의 한계 속에 갇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불행에 몰아넣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선택이고 나는 그의 인생을 어찌할 수 없다. 적어도 꼬마와 나는 최대한의 이해심을 가지고 그의 문을 노크했다. 상대방이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꼬마가 나를 ‘아동학대 방조’ 운운하며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을, 세상에는 수많은 야만과 폭력과 비이성이 존재하고 나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 모든것을 없앨 수는 없음을 꼬마는 천천히 받아들였다. 

독서클럽을 한다고 해서 내가 세상의 M을 박멸하는 위업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그저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꼬마와 M을 데리고 삼존불처럼 함께 걸으며 내가 만난 수많은 고뇌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의 문을 노크했다. 어떤 문은 열리고 어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열리고 닫히는 그 문들 앞에서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낙심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서 서로를 증오하고 탄핵하던 M과 꼬마의 분규를 서서히 잠재우고,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세 존재의 공존과 통합을 천천히 이루어갈 수 있었다. 

책은 힘들지만 사람은 좋아하는 내가, 학부모 독서클럽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치유의 행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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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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