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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서울살이의 빛, 빚
빚진 바 없이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
도시는 외부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쓰레기를 뱉어내는 방식으로 생태계의 정점에 선다. 그리고 도시는 거주자들이 자신의 호흡에 순응하길 요구한다.
술을 마시러 친구와 집 근처에서 만났다. 우리는 근황을 나누고 서로 좋아하는 것을 털어놓았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친구는 영화판 <슬램덩크>에 빠져 있었고 이른바 ‘성지 순례’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최고의 교양필수 항목일 그 작품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했다. 실은 원작 만화조차 아직 보지 않았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교양을 쌓기로 약속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좋아하는 작품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가고 싶었다. 그날 휘적휘적 걸어서 귀가하며, 내가 낯선 도시에 관광객으로 방문한 상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뻔한 길을 밟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기대감을 품고 실컷 두리번거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가지 못하는 장소를 방문하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가게를 발견해 호기롭게 먹고 마시는 것도 좋아하는 일이다. 숙소 근처에서 취하면 더욱 좋다. 알딸딸한 정신에 들뜬 마음으로 걸으면 도시가 나를 반기는 기분이 든다. 나는 환영받는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책임 없이, 소속 없이, 생소함을 만끽하는 경험이 그리웠다. 취해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도쿄의 야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잠시나마 꿈을 꾸게 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뉴욕의 야경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하늘 아래 사방이 반짝거리는 모습이겠거니. 서울과 똑같이 관광객에게는 아름다워 보이고 거주자에겐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링 마의 『단절』은 뉴욕을 중심으로 대도시의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캔디스’는 아득바득 뉴욕에 살고 있는 중국계 2세다. 그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우연히 출판업계에 취직한다. 캔디스가 맡은 일은 타국의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후려쳐 어떻게든 싼값에 성경을 생산하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도덕적이진 않지만 합법적이고, 캔디스가 뉴욕에 계속 살고 싶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도시의 삶은 값이 비싸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시가 내놓는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도시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다. 도시의 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도시의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다. 도시의 소비세를 지불하는 것이다. 도시의 노숙인에게 1달러를 기부하는 것이다. /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그 도시의 시스템에 가담하고 그 시스템을 선전하는 것이다.”(『단절』 , 467쪽) 도시는 외부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쓰레기를 뱉어내는 방식으로 생태계의 정점에 선다. 그리고 도시는 거주자들이 자신의 호흡에 순응하길 요구한다.
찾아보니 서울의 경우 소비 전력의 91%를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밤의 서울에서 반짝이는 불빛의 9할은 서울 바깥에서 받아온 빛이다. 그러면서 서울은 하루에 약 3,200톤의 쓰레기를 배출한다. 그중 2,200톤은 자체적으로 처리되지만 나머지 1,000톤은 인천으로 향한다. 서울의 천만 인구의 일원으로서 나는 매일 서울이 들이쉬고 내쉬는 거대한 흐름에 편승해 있다. 합법적으로 값을 지불하며, 그것이 정당한 값이라고 믿으며. 서울을 벗어나 관광객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는, 일상의 루틴만이 아니라 이런 물질적인 루틴에서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 빚진 바 없이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무책임하게, 관광객답게. 다른 도시의 풍경이 서울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더라도 나는 관광객인 동안 그곳에 책임이 없다. 이것은 내가 서울살이에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소극적인 부채감이다.
캔디스는 출장으로 방문한 홍콩에서 짧은 관광을 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치고 엄청난 쇼핑을 한다. 그곳의 백화점에는 무수한 브랜드 상품이 비교적 저렴한 값에 놓여 있다. 뒷골목에서는 지전을 비롯해 이국적인 물건을 판매한다. 캔디스는 종이로 만든 돈을 태워 죽은 자의 안녕을 비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낀 캔디스는 부모님을 위해 무수한 물건의 사진을 태운다. 이 목록은 길고 구체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아빠를 위해 조스 에이 뱅크의 정장과 그 정장에 어울리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윙팁스 신발을 태웠다. 보다 편하게 입을 옷도 필요할 듯해서 제이크루의 옷도 몇 벌 태웠다. 에디 바우어의 플리스 재킷도 몇 벌 태웠다. 에디 바우어의 플리스 재킷도 몇 벌 태웠다. 그러다가 사후세계라면 이미 몹시 뜨겁지 않을까 싶어서 땀을 흡수해 주는 나이키 운동용 셔츠도 몇 장 태웠다. 신간 도서도 몇 권 태웠다. (...) 《보나페티》에 담긴 치킨 한 접시도 태웠다. 아빠가 치킨을 무척 좋아해서 엄마가 장기간 푸저우에 머물 때면 둘이서 거의 매일 치킨을 먹었기 때문이다. 문득 편두통에 시달리며 낮에 몇 시간 내내 누워만 있던 아빠가 생각난 나는 타이레놀도 몇 알 태웠다. (...) 엄마를 위해서는 루이비통 여행 가방과 펜디 핸드백을 태웠다. 혹시라도 알몸 상태로 배회하고 있을까 봐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갭 티셔츠와 탤벗 드레스 몇 벌을 엄마가 좋아하는 크림색과 베이지색 계열로 골라서 태웠다. 늘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갖고 싶어 했기에 코트도 한 벌 골라 한 태워 주었다. 코치의 사첼백도 하나 태웠다. 엄마는 코치 브랜드를 정말 좋아했고, 코치 외에도 미국의 대표 브랜드들과 그런 브랜드의 깔끔한 제품을 좋아했다. (...) 그런 다음에는 새우 칵테일 요리를 태웠다. 엄마는 디저트용 수정 유리잔의 가장자리에 새우를 얹고 안에는 붉은 소스를 담은 맛 좋은 새우 칵테일을 즐겨 먹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미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음식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다.”(같은 책, 174~176쪽)
캔디스는 아빠와 엄마의 생전 모습을 그들이 소비하고 싶어 했던 물건으로 기억한다. 이승에서는 사진일 뿐인 것들이 저승에서는 명품으로 둔갑할 것이다. 사진 태우기를 마친 캔디스는 아빠와 엄마가 산더미 같은 물건을 받아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평생 필요한 양보다도 많은, 영겁의 시간에서조차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양의 물건”(같은 책, 176쪽)이다. 미국의 도시에 살고 싶어 했던 부모님에게 뉴욕에 사는 딸이 보내는 공물이다. 이는 그녀가 뒤늦게 부모님을 위로하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자란 부모님과 달리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미국 도시 출신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울 출신이다. 캔디스가 견고하고 거대한 뉴욕을 사랑하듯이, 나는 내가 평생 가도 속속들이 알지 못할 만큼 복잡한 서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올해 어쩌다 보니 국내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어느 곳도 서울만큼 번쩍이지 않았다. 경주와 통영 시내는 단정하고 예뻤지만 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충주 출신으로 경주에 살고 있는 친구는 그곳이 적당하고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서울 사람인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번화가가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친숙하다.
울산, 포항, 김해는 편했지만 좀 심심했고, 대구는 괜찮더라도 서울만큼은 아니었다. 지하철이 작고 느려서 귀여웠지만 급할 때는 속 터질 것 같았다. 천안 출신으로 대구에 살고 있는 이하진 작가는 대구도 자기에겐 크고 시끄럽다고 했다.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 9호선에 단련된 나에게는 공감이 가진 않는 말이었다. 인천, 안양, 용인, 수원, 의정부도 방문할 때는 재미있었지만 나의 집은 아니었다. 정말로 몸에 배어서 떨치기 어려운 감각이다. 『단절』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첫 번째 장소, (...) 그런 장소가 네가 한 인간이 되는 최초의 장소이자 네 자신이 되는 최초의 장소야.”(같은 책, 462쪽) 캔디스는 이를 떠올리며 자기 배 속의 아이에게 도시를 출생지로 주기로 한다.
장르를 규명하자면 『단절』은 좀비물에 속한다. 대도시와 대형마트가 생존자들에게 좋은 환경이 된다는 뜻이다. 다만 이 소설의 감염자들은 흔히 좀비가 하는 것처럼 남을 습격하지는 않는다.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저 과거의 습관을 반복한다. 식사를 차리고, 운전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자신이 더는 먹을 필요가 없고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예전에 하던 행동을 지속한다. 그것은 끔찍하고 가엾고 기묘하게 평화롭다. 그들을 약탈하는 일행은 감염자를 완전히 죽여서 멈추게 만드는 것이 안식을 선사하는 일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캔디스는 그에 공감하지 못한다. 감염자는 감염 전의 과거와 단절되어 있지 않고, 루틴을 반복하는 도시생활자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기분’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우리는 SF를 좋아해』에 수록된 정소연 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퇴근할 때 서울 올림픽대로를 타면 정말 다리마다 불이 들어와 있고 차가 꽉 막혀서 번쩍번쩍해요. 이런 삶의 형태가 몇십 년 뒤까지 유지될까, 도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이 많은 물질이 앞으로도 남아 있을까 싶어요. (...) 현재의 모든 걸 나중에는 ‘옛날에는 그랬지.’ 하며 돌아보게 될지 몰라요.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필연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사라지겠죠. 다음 세대가 아니라, 저의 세대에서 이런 소비가 한계에 부딪히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기분이 이상해져요. 나중에 지금 이 시기의 일상을 돌아보면 진짜 이상하겠다. 차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려요.”(『우리는 SF를 좋아해』 , 359~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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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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