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풍문으로 들었던 황현산 선생님의 원고가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66회) 『악의 꽃』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불현듯(오은): 오늘의 특별한 게스트는요, 난다 출판사의 권현승 편집자님입니다. 안녕하세요.
권현승: 난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권현승이라고 합니다.
불현듯(오은): 오늘 소개할 책은 황현산 선생님이 번역하신 보들레르의 『악의 꽃』입니다.
샤를 보들레르 저 / 황현산 역 | 난다
불현듯(오은): 제가 알기로, 권현승 편집자님은 해외문학도 많이 보세요. 해외문학의 판권을 사서 그것을 번역, 출간하는 업무까지도 맡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 업무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권현승: 난다에서 이전부터 꾸준히 해외문학 책들이 나왔죠. 대표적으로 앤 카슨의 여러 책들, 시집들이 나왔었는데요. 그것의 연장선이기도 해요. 난다 출판사에 제가 들어오게 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난다에서도 해외문학 쪽을 해보자고 해서요. 많이 기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번역 원고들은 들어와 있는 상태거든요. 아무래도 책의 완성도를 높여 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요. 출간에 급급할 게 아니라 다 모아두고 딱 마음에 찼을 때 내려고 해요. 그게 내년 초부터 시작될 것 같아요.
캘리: 반가운 소식이네요.
불현듯(오은): 또 얼마나 예쁘게 나오겠어요. 난다 출판사니까요.
캘리: 이번에 대화 나눌 『악의 꽃』도 참 예쁘게 만드셨어요. 책등까지도 되게 클래식하고 좋더라고요.
불현듯(오은): 폰트도 그렇죠. 사실 옛날 시집이나 옛날 책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폰트 같았거든요. 요즘 나오는 시집은 이런 폰트를 쓰지 않잖아요. 그래서 뭔가 2023년 책인데 1993년 느낌이 나는 책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아주 고급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 책의 원고를 황현산 선생님 컴퓨터에서 우연한 계기로 발견했다는 얘기가 책 뒷부분에 선생님의 아드님께서 쓰신 글에 드러나잖아요.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권현승: 일단 황현산 선생님께서 『악의 꽃』 번역 작업을 하고 계셨던 것은 이미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셨을 텐데요. 선생님의 여러 지인 분들께서도 황현산 선생님께서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계셨다고 전해 들었던 상태였어요. 그리고 사모님이신 강혜숙 선생님께서는 황현산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드디어 작업을 끝냈다”고 말씀하신 기억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약간 전설처럼, 그러니까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전해지기만 했던 원고였는데요. 아드님분께서 꽤 오랫동안 해외에서 체류하시다가 2년 전쯤 한국에 들어오게 되시면서 선생님의 자료를 한 번 싹 찾아보셨고요. 그렇게 그 전설의 원고가 나오게 됐던 거예요.
캘리: 발견하셨을 때 다들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권현승: ‘문서 통계’를 보면 ‘2018년 7월 1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최종 수정 날짜까지 모든 게 아귀가 맞았던 거죠. 정말 그게 맞구나, 그 이야기가 맞구나, 생각했어요.
불현듯(오은): 그 원고를 최종 수정하시고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에 다시 입원하셨다고 제가 편지에서 읽은 것 같아요. 정말 입원 전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들여다본 원고가 이번 『악의 꽃』 원고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발견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출간까지 좀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자님께서 내년에 나올 책들도 신중하게 한 권 한 권을 마음에 담고 싶어서 천천히 작업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 신중이 『악의 꽃』 출간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가요?
권현승: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아요. 『악의 꽃』이 되게 많은 층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원고였잖아요. 황 선생님의 원고이지만 동시에 보들레르의 시이기도 하고, 누가 편집을 맡을까, 하는 문제도 있었고요. 게다가 주석이 없는 상태이기도 했기 때문에요. 이런 것들을 모두 유족분들과 이야기해봐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죠. 보다 근본적으로, 출판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물론 편집 과정도 생각보다 길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불현듯(오은): 편집 과정이 길어지게 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권현승: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요. 원서 대조하는 작업도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그다음은 디자인하는 데도 계속 공을 들였고요. 정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과정이었어요.
캘리: 말씀을 들으니까 『악의 꽃』의 담당 편집자로 배정이 되고 나서 부담감도 크셨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권현승: 정말 그런 그런 마음이었죠. 어떻게 누가 쉽게 생각하겠어요. 쉽게 맡을 수도 없는 원고고, 작업도 쉽게 할 수 없는 원고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한동안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캘리: 도망치고 싶으셨던 순간은 없으셨어요?
권현승: 그런 순간은 없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공부도 많이 될 것 같았고요. 제가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는데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악의 꽃』 시집 전체를 읽어본 경험은 없거든요. 보시면 아시다시피 되게 긴 시집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한번 깊게 들어가 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불현듯(오은): 저도 이전 판본으로 『악의 꽃』을 접했어요. 그때는 그게 부분인지도 몰랐어요. 그러다 이번 완역본을 보니 이렇게 부가 많고, 동일한 제목이 여러 개인 시들도 존재하고, 시도 정말 많아서 놀랐어요. 이전에는 이렇게 많을 거라고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죠. 뒤에 덧붙은 시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두꺼운 시집이기 때문에 읽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프랑스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보니, 시대상이 다르잖아요.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등을 환기하면서 읽느라 좀 더딘 독서가 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다 읽고는 역시 시인은 시대와 불화하는 자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캘리: 저도 굉장히 새롭게 느끼는 점이 많았어요. 보들레르 하면 일단은 우울하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시편들도 많이 등장하고요. 근데 그 밖에도 예를 들면 자연을 노래한다거나 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거나 ‘익살 시편’들로 구분된 부분들까지 있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다양하게 시 쓰기를 했구나, 정말 많이 쓰고 열심히 썼구나, 이런 생각을 새삼 하게 됐어요. 괜히 보들레르가 아닌 거죠. (웃음)
권현승: 고양이 말씀하셨잖아요. ‘고양이’가 제목으로 들어가는 시가 세 편이 있어요. 편집을 할 때 「고양이」와 「고양이들」이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고양이」가 나왔는데 또 「고양이」가 나오는 거예요. 고양이가 두 번 나오는 걸 보고 내가 이거 실수했구나, 싶었던 적이 있어요. 큰일 났다고 생각했었죠. 근데 알고 보니까 세 편이었어요. (웃음)
불현듯(오은): ‘일러두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책에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에 인덱스를 한 페이지이기도 한데요. 일러두기가 자그마치 여섯 개예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일러두기죠.
권현승: 지금 보니까 굉장히 말하고 싶은 게 많은 편집자 느낌이 드네요. (웃음) 일러두기가 길어진 이유는, 아까도 비슷한 말씀을 드렸지만 이 책이 되게 다양한 층위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일러두기가 이렇게 길어진 것도 그 흔적이 아닌가 싶기는 한데요. 제 생각에 이 책은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아시고 읽으셨을 때 더 풍요롭게 읽으실 수 있는 시집 같아요. 단순히 뭔가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이런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컨대 우리가 ‘완역판’이라고 계속 얘기를 했는데요. 이 완역판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도 설명해야 했죠. 『악의 꽃』이 두 가지 판본이고, 여기에 둘 다 수록했다는 것, 뒷부분에는 ‘떠다니던 시편들’이라는 다른 시집도 수록을 했다는 것도 남겨두었고요. 이런 구성은 왜 한 것일까에 대해서도 남겼어요. 이것 역시 황현산 선생님께서 해 주신 것을 저희가 따른 건데요.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것들도 궁금할 수 있잖아요. 이 내용을 독자분들도 아시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일러두기에 썼고요. 그러다 보니까 길어지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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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샤를 보들레르> 저/<황현산> 역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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