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도처에 깔린 시대, 김수영 시의 힘은 무엇인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황규관 저자 인터뷰
우리 시대는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개인의 문제와 역사의 문제를 한 몸으로 삼고 ‘혁명’에 미쳐 날뛴 시인 김수영. 그가 설움에 몸을 태우면서까지 버리지 않았던 ‘사랑’. 우리 시대는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무기력과 온갖 위기의 시대에 ‘시’는 유용한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를 펴낸 시인 황규관으로부터 들어본다.
『리얼리스트 김수영』 이후 5년 만에 다시 김수영에 관한 책을 내셨습니다. 전작과 다른 해석, 나아간 해석들이 인상적인데요.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가 나오기까지 시인 김수영과 작가님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그 사이에 김수영의 전작을 읽는 시간을 두 번 가졌습니다. 두 번 다 시민들과 함께 읽는 자리였지요. 하지만 김수영은 읽을 때마다 뭔가에 대해 자꾸 골똘하게 됩니다. 이런 소감은 비단 저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다른 비평가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와 『리얼리스트 김수영』의 차이는, 아무래도 언어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얼리스트 김수영』은 아무래도 김수영의 시와 격투한 경향이 있어서 원군(?)이 필요했죠. 그래서 제가 한때 심취했던 철학자들에게 기대봤습니다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는 나름 제 언어로 썼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이런 반응도 들려와서 다행이다 싶고요.
강렬한 제목과 평소 접하던 김수영 시인과는 다른 인상의 표지도 눈에 띕니다. 저자로서 이번 작품에 임하실 때 무엇에 초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작인 『리얼리스트 김수영』이 저 혼자만의 목소리였다면, 『사랑이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에는 시민들과 함께 쉰 호흡이 배어 있습니다. 물론 김수영 시의 난해성 때문에 주로 제가 말을 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함께 읽은 분들의 호흡은 당연히 제가 쓰는 문장에 스미기 마련이죠. 즉 누가 말을 더 많이 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듣는 귀’가 있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는 문장 자체에 큰 차이를 준다는 거죠. 이번에 그것을 절실히 경험하기도 했고요. 물론 다시 훑어보면 조금 더 치밀하게 쓰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어 그게 아쉽습니다만, 그것도 언젠가는 저 자신도 모르게 표현될 거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기다림’의 문제가 대두된다고나 할까요.
제목은 사실 부제인 ‘김수영의 비원’으로 할까 했습니다. 김수영이 평생 품었던 꿈을 찾아서 독자들에게 알려주면 그의 시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니 당연히 ‘비원’이란 말을 제목으로 삼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 제목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거라는 조언들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아무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제목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다시 김수영의 시구에서 두 개 정도인가 뽑아봤는데 최종적으로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가 된 것이죠. 사후적인 소감이지만, 이 제목 자체가 제가 이번 책에서 제기하고 싶었던 김수영의 ‘비원’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 흡족했습니다. 제목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좋았고요.
제주의 '시인의 집'과 예약판매를 진행하셨습니다. 책방지기인 시인 손세실리아 님이 “후배 시인이 작고한 선배 시인의 삶의 궤적을 뚫고 뚫고 뚫어가며 파고든 연구의 결과물”이란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황규관 시인이 김수영 시인을 지속적으로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금 쑥스러워지고는 합니다. 애정이란 고백하는 것보다 품고 있는 게 더 설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고백이라는 것도 당자에게 해야지 공개적으로 하면 좀 그렇잖아요? 제가 김수영의 시를 뭐 뚫고 뚫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만 평생 품고 사는 순정파도 아니고요. 하지만 때가 되면 김수영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고나 할까요. 그때 그의 시를 읽거나 되새겨보고는 하지요. ‘연구’라기 보다는 나름의 배움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수영의 언어에는 제가 가지지 못한 뜨거운 깊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가 마치 용천수 같지요. 그 생각이 들 때마다 김수영의 말대로 저의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구름의 파수병」)이 아프곤 합니다. 김수영은 제가 아는 천생 시인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시대를 이렇게 ‘온몸’으로 정직하게 산 시인도 정말 드물죠. 저는 김수영이 겪은 전쟁과 자신이 스스로 미쳐 날뛴 혁명의 패배를 생각하면서 그의 시를 읽습니다. 그는 시로 현실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시 자체와도 싸웠고 당연히 자기 자신과도 싸웠습니다. 이 삼중의 싸움이 그의 시를 어렵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이 삼중의 싸움을 동시에 수행한 이는 아마 김수영뿐일 겁니다. 아무래도 이 점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는 시인 김수영만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로서 김수영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인 김수영이 현재의 우리에게 보내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김수영의 시는 역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느낌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해독도 잘 안 됩니다. 제가 김수영 읽기를 할 때마다 이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는 하지요. 그리고 작품들이 서로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김수영에게는 하나의 독립된 작품을 쓴다기보다는 자기 삶의 깊은 꿈, 바람을 그때그때 시로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그러니까 정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자신의 꿈을 말할 때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김수영이 꾼 꿈은 개인적인 또는 소시민적인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달나라의 장난」에서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시적 레토릭이라고 부를 수 없죠. 설령 이 시를 쓸 때 김수영 자신을 어떤 전기가 휘감아서 나올 수도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순간적인 심취가 아님을 평생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나 자신”이라고 하지만 김수영에게는 자신과 자신이 사는 역사를 동시에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김수영의 시가 갖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김수영은 시 자체와도 싸웠습니다. 그래서 시가 더욱 어려워졌죠. 그리고 이 난해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수영의 시를 읽는 데 있어서 그가 처한 역사적 조건을 떼어놓는 경향도 적잖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보다는 해석이 더 어려워지고 말죠. ‘제대로’ 해석해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는 제목은 시 「사랑의 변주곡」의 구절이지요. 「사랑의 변주곡」이 김수영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랑의 변주곡」에 대한 연구나 비평들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의 변주곡」은 작품 자체도 뛰어납니다. 엄밀히 말하면 작품 ‘자체’가 그러니까 형식적 완결성이라는 것은 시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죠. 이에 대해서는 김수영도 말년의 산문인 「참여시의 정리」나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룬 바 있습니다. 「사랑의 변주곡」은 제가 책에도 썼듯이 김수영이 쓴 혁명시의 정점입니다. 제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혁명을 배반한 역사를 몸소 살고서도 혁명의 순간과 혁명이 가리키는 “먼 곳”(「먼 곳에서부터」)을 버리지 않은 김수영의 순정한 영혼입니다. 도리어 혁명은 반복된다는 역사의 진리를 그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혁명을 처절하게 짓밟은 쿠데타의 상처에 굴하지 않고 「사랑의 변주곡」을 쓸 수 없는 거거든요.
역설적으로 쿠데타의 상처가 김수영에게 ‘다른 혁명’을 믿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꾸 쿠데타의 상처를 말하면 믿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나 산문에서 쿠데타 세력이나 박정희를 비난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쿠데타 직후에 쓴 ‘신귀거래 연작’ 아홉 편은 김수영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쿠데타 세력에게 받은 충격도 충격이지만 혁명을 통해 얻은 해방의 감격과 희열이 일시에 무너진 심리적 충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4·19혁명은 김수영의 내적 비원이 일시에 역사의 지평에 떠오른 사건이었는데, 그래서 그만큼 혁명에 미쳐 날뛰었던 것인데, 한순간에 그가 맞은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입니다. 그러면서 짧지 않은 모색을 통해 마침내 도달한 지점이 「사랑의 변주곡」입니다. 이 시는 역사에서 ‘배운 것’을 미래를 ‘향해’ 개방한 예언시이기도 합니다. 예언은 길흉화복을 맞추는 복점 같은 게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살고 있는 현재에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뱉어내는 언어죠.
다른 한 편으로, 「사랑의 변주곡」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는 시적인 계시를 얻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돌보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언제나 퇴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하죠.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을 산문적으로 풀어 쓰자면, 인간 해방의 날, 지금보다 더 좋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가리키기도 하고 뭇 생명이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문명 대전환의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수영이 도달한 혁명의 최종점은 지금껏 역사 속에 있었던 혁명을 넘은, 요즘 회자되는 말로 ‘개벽’이라고 한 것입니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개벽의 순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현재의 우리가 김수영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심지어 김수영의 시는 어렵다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독자들을 질리게도 하지 않습니까?
일단 김수영을 떠나서 시를 읽어야 하겠지요. 시를 쓰는 사람이 시를 읽으라고 하면 무슨 영업용 멘트는 아닐까 오해하시는 독자분들도 있겠지만, 시는 결국 삶에 대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노래입니다. 음표가 아닌 언어를 통한 노래지요. 시인 개인이 부르는 노래인 동시에 시인 개인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죠. 시는 또 삶에 대한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주의나 정의를 말하지 않고 직관적 인식을 보여줍니다. 직관은 지성과 감성이 종합된 인식 방법인데 그 직관이 만들어 낸 예술이 시입니다. 따라서 시를 읽으면서 천천히 좋은 시를 찾아 나서는 과정은 어떤 인문학적 수련이나 공부에 앞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수영이야말로 이런 시를 썼던 사람이고, 그래서 김수영을 읽는 것은 자신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여정이 쉬울 리는 없잖아요? 쉬운 길로 가서는 깊이도 얻기 어렵고 지금보다 좋은 삶의 양식을 계발하기도 어렵습니다. 다행히(?) 김수영이 남긴 시의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닙니다. 거듭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키가 부쩍 자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으로 김수영이 품은 꿈, 바람, 비원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연마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적으로 김수영의 시가 어려운 것은 그의 말대로 사이비 난해성 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깊이 때문입니다. 김수영의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깊은 우물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현기증과 비슷한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시를 잘 모르고, 김수영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에게 딱 한 마디로 설득해 주신다면?
김수영의 시는 학교 교과 과정에서 얼마간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 이상은 모를 수도 있고, 시험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이름마저 잊었을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김수영의 시 앞에서는 이른바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연구자나 문학평론가들도 마찬가지로 곤혹스러워합니다. 앞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기도 해서 불가피하게 제 대답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데요, 시는 본래 어려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기쁠 때나 슬플 때 노래를 읊조리듯이 시 또한 그런 것입니다. 어려운 것과 친해지는 방법은 자주 접하는 것밖에 없지요. 우리는 너무도 쉬운 길, 이미 나 있는 길을 가려는 습관에 젖어 삽니다. 그러나 한 번씩은 어려운 길로 접어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어렵고 쉽고 하는 문제 자체가 몸으로 겪어봐야 판명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책은 학문적인 연구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요점 정리 같은 가이드북도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듣는 귀’와 함께 호흡한 책입니다. 조금씩 읽어가다 보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자신합니다. 감사합니다.
1968년 전라북도 전주시 교동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삼례에서 청소년기를 지냈다. 제철소에서 일하며 쓴 시로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시집으로는 『패배는 나의 힘』,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등이 있고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와 『리얼리스트 김수영』, 『문학이 필요한 시절』 등이 있다. 2020년 제22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
추천기사
<황규관> 저18,900원(10% + 5%)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 그러나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향적인 비평들만 그의 주변을 떠다닐 뿐 김수영을 읽었다거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는 드물다. 그만큼 일반 독자들이 접근할 만한 작품도 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독자들이 김수영을 읽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