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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다시 쥐게 된 따사로운 인생의 그립감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정예헌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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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다시 손에 쥐고 싶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의 치유 과정에서 의지가 꺾였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작은 변화를 만드는 어떤 용기에 관한 책이다. 가스라이팅에 의한 폭력과 섭식장애를 직접 겪으며 심리적 외상을 입는 과정과 그 고통의 현장을 마치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글 솜씨로 묘사하고, 심리적 외상에 의한 트라우마와 강박과 중독 극복 과정을 심리학적 해석을 곁들여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설명하고 있는 에세이다.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낸,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이 책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섭식장애를 꽤 오랫동안 겪으면서도 내가 겪고 있는 이 불편함과 고통이 ‘섭식장애’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이런 병명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인터넷에 폭식하는 이유, 그리고 토하는 이유 등을 찾아보며 고군분투하던 중, 어떤 블로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와 놀랍도록 유사한 증상을 겪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글을 통해 제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섭식장애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검색하다 보니 이런 증상을 앓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하더군요. 좋은 책들도 나와 있었지만, 저처럼 영문도 모른 채 힘겹게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경험과 자료들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경험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섭식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산책하면서 책을 읽었던 경험이 있어요. 걸으면서 인터넷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책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을 즐겼던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정보와 감정을 얻는 과정은 더디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차분하게 공감하고 오래도록 그 정서를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심리장애 극복 과정에서는 마음이 정돈되지 않고 혼란합니다. 유튜브를 보며 짧은 시간 많은 정보를 얻는 것 또한 유익할 수 있겠지만, 안 그래도 정돈되지 않은 마음에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많은 정보는 오히려 심적 부담이 될 때도 있더라구요. 느린 호흡으로, 제 이야기와 독자들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두 번째 이유는 치유의 과정에서 글쓰기와 공부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외상을 겪고, 섭식장애와 부적절한 기분으로 고통받으며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갈팡질팡하기도 했지만 그 물음들에 답을 하며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공부와 함께 글을 쓰며, 제가 이런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 심리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보편적인 특성을 알게 된 것이죠. 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과, 더 확장된 질문에 대한 답을 모아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 선한 영향력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심리적 문제를 이겨낸 분들의 자전 콘텐츠를 보면, 그 당시를 긴 터널이나 암흑으로 묘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깊은 절망에 매몰되면 과연 이 순간이 끝이 날지 확신할 수 없거든요. 섭식장애로 한창 고통받던 시기, 정보를 얻으러 들어간 ‘소금인형 카페’에서 다른 이들의 게시물을 보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 또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제가 괜찮아진 것도 아닌데,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한다는 게 가식적으로 느껴졌죠. 하지만 이제는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습니다. 라면을 두 개 끓이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순간은 분명히 온다고 말입니다.

제목이 인상적인데요,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으며, 숨어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더불어 책은 어떻게 구성했는지 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목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저도 제목이 참 맘에 듭니다. 출간의 전반적 과정보다 제목이 지어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사실 이 제목은 저보다는 헤르츠나인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인데요, 책을 다 쓰고 나서 제목을 지으려니 아무래도 섭식장애에 국한되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섭식장애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사실 심리적 문제 혹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패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제 경험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어려움이 있어도 그냥 그것과 함께 살아가며,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용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출판사에서 편집을 하다 보니 연예인 박명수의 ‘중요한 것은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유행어가 떠오른다고 말하며, 그런 내용의 제목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듣고 정했죠. 그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어요. 마음에 너무 쏙 든 나머지 더 고민할 여지가 별로 없었죠.

책을 출간하고 나서 출판사 대표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제가 고치고 싶은 습관이 있는데 매번 도전하다가도 실패한다. 지금도 도전 중이지만 언제 실패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대표님께서 “실패해도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로 다시 재도전하면 되죠”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사실 실패하면, 그러니까 꺾이면 꺾인 김에 그만두고 싶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첫 책 제목을 이렇게 지어서 저는 평생 도전을 거듭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음을 느꼈죠(웃음). 체력이 많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 책은 크게 5부로 구성했어요. 읽다가 시간 순서를 헷갈릴 것 같아서 책 앞쪽에 설명을 붙였어요. 1부는 공시생 6년 차였던 스물셋, 섭식장애를 자각하며 그 굴레에서 고통을 겪는 과정을, 2부는 스무 살, 한 남자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하며 외상을 입은 이야기를, 3부는 스물에서 스물셋 초반까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며 섭식장애가 심화하는 과정과 외상이 어떻게 섭식장애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4부는 스물셋, 미술 심리치료를 시작하며 섭식장애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이야기, 5부는 그 이후 마음이 단단해지고 삶을 긍정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대 초반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기까지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 이제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섭식장애는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 의지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치유의 과정을 통해 ‘의지’와 ‘실패’,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과 ‘작은 변화’ 그리고 ‘용기’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에 대해서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기독교인인데요. 모태신앙이라 매주 교회에 나갔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어요. 저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교회를 가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섭식장애를 몇 년간 앓으면서도, 교회는 꼬박꼬박 나갔어요. 그런데 가장 증상이 심각했던 어떤 주에, 난생처음으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어요. 몸이 좀 부었다는 이유만으로 방에 틀어박혀 있는 제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섭식장애가 제 평생의 습관까지 건드리고 있는 걸 직접 보니 무서워졌죠. 제 삶을 야금야금 잠식당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있는데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이런 모습이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제 삶이 어디까지 잠식당할지 무서워졌습니다. 섭식장애가 계속 제 삶을 갉아먹게 두면 안 되겠다, 경각심을 가지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집 앞에 있는 뷔페를 갔습니다.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곳이었거든요. 뷔페를 가서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딱 오늘 하루만큼은 토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처음으로 작은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이죠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의지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없어요. 결국 그냥 하는 용기도 의지의 문제이니까요. ‘섭식장애는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말은 주변의 오해 때문에 나온 말이에요. 섭식장애의 증상을 먹는 걸 줄이고 토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 의지가 약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리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먹토’가 반복되면 내 의지는 고작 이건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섭식장애 극복을 ‘의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섭식장애가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섭식장애 증상(절식- 폭식-구토)을 의지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는 거죠.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나는 것을 닦을 수는 있지만 콧물이 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듯이 섭식장애 증상도 제가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어요. 다만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증상들을 겪으면서도 내가 개입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 또한 스스로를 더 나은 상태로 이끌려는 의지인 거죠. 

실패는 말 그대로 목표에 대한, 얻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좌절 경험이에요. 책의 초반부에는 경찰이 되고자 했던 목표, 또 45kg을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 월급 천만 원, 허리 25인치, 허벅지 둘레 50cm. 저는 많은 목표들을 세웠고, 좌절했지요.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이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 주어진 일들을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해내는 것을 의미해요. 만약 숨 쉬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변화’의 시기가 찾아오거든요. '어차피 살아갈 하루 뭐라도 좀 더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생기죠. 사실 용기는 약간 다른 느낌인 거 같아요.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은 일상적인 상태에서도 가질 수 있는데,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그냥 하는 데에 마음을 넘어 용기까지 필요하단 뜻이거든요. 그렇게 생긴 용기를 가지고 하루하루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취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는 다시 용기를 불러오고, 용기는 다시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한두 가지만 꼽자면 인내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꺾인 상태에서 그냥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아요. 뭐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꺾인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상황을 단기간에 변화시키고 싶지만 달리 방도가 없거든요. 시간과 노력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해결되는 일들이 대부분인데 그때까지 견뎌내야만 해요.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이후에 다른 고난들도 그냥 그 괴로운 상태 안에서 견뎌 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길러진 것 같아요.

책 곳곳에서 현장감 넘치는 묘사로 섭식장애의 고통을 표현하셨는데, 그 당시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심리적 고통도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다가 했을 텐데, 책에는 주로 고통이 떠오는 상태를 표현해 주셨는데, 고통이 가라앉았을 때 즉, 조금 편한 마음이었을 때에는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또한 본인 스스로 책을 통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용기를 냈나요?

제가 이 질문을 보고 떠오른 단어가 있는데요, 요즘 유행어 중에 ‘맑눈광’이라는 게 있어요. 인터넷에 뜻을 검색해 보면, “‘맑은 눈’이 포인트지만, ‘알 수 없는 광기’가 느껴지는 사람에게 쓰는 밈으로 줄여서 '맑눈광'이라고도 한다”라고 나오는데, 이런 것처럼 묘하게 돌아있는 느낌? 고통이 가라앉은 상태에서는 상대적으로 기분이 좋았어요. 정신도 뚜렷하고 명료하게 느껴졌죠. 그런데 항상 그때도 모든 신경이 다이어트에만 집중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걸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덜 먹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절식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을지 생활 속에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느라 항상 그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어쩌면 고통스럽고 어쩌면 부끄러울 수 있는 나의 경험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심리학에 있는 개념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 중 하나인 ‘고립감’과 ‘방어기제 승화’인데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 중 하나인 소외감은 외상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과 연결이 끊어졌다고 느끼고 혼자라는 감정, 고립감을 강력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제가 신대방삼거리 사건 이후로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인스타그램만 쳐다봤던 것도 이 증상이 발현된 모습이죠. 이 고립감은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아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런 걸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또 존재한다고,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고 알려줘야 해요. 그래서 나도 이런 걸 겪었는데,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방어기제는 많이들 아실 것 같아요. 방어기제란 내면의 무의식적이고 강한 움직임을 다스리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중에 승화가 있어요.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바람직한 목적을 추구하여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으로, 본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배출되는 방어기제예요. 자기 공개를 한다는 건 저에게는 책에 쓴 사건들이 불러일으킨 어떤 역동을 배출하는 통로가 되었을 거예요. 나를 드러내면서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내가 살기 위해 나를 드러냈던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들어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 말고도 사회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스라이팅에 의한 심리적 폭력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고통의 당사자로서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또한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둔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미의 기준이 ‘마른 몸매’로 정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연예인들은 점점 더 마른 몸매를 보여주고, 미디어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세대인 청소년들은 무의식중에 마르면 마를수록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형성할 수밖에 없지요. 이는 SNS를 통해 극단적인 체중감량법을 공유하면서 더욱 부추겨지고 있어요.

해외에서는 이런 세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미디어 출연을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지난 2017년부터 ‘마른 모델 활동 금지 법안’을 시행해 모델의 체질량지수(BMI)가 포함된 건강진단서를 2년마다 제출하도록 하고 있고, 또 모델의 원본 사진을 수정할 경우 ‘수정된 사진’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고 해요. 스페인, 이스라엘, 영국 등의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제와 법규들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고 하고요. 유튜브에서도 섭식장애 콘텐츠를 담은 영상의 게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제재가 부족한 편이라서,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많은데, 저 또한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이성간의 관계에서 겪었지만 심리적 조종은 비단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만은 아닌데요,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부정당하고 이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인 만큼 그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디어로 가스라이팅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고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가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심리적 조종이 이루어지기 좋은 환경 중 하나는 수직적 관계입니다. 수직적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은 어떤 관계가 수직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수평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현재 작가님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폭식과 구토의 유혹이 가끔 찾아올 때가 있나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요? 마음의 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고통의 시간을 건너온 작가님은 이제 웬만한 마음의 병은 다 이겨낼 것 같은 마음의 힘이 느껴지는데 어떠신가요? 더불어 현재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마음이 고장 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는 섭식장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끼 정량만을 먹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가끔 많이 먹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폭식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그냥 일상적인 과식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전만큼 많이 먹을 수 없게 되기도 했고요. 갑작스레 많이 먹는 상황이 생기면, 구토하는 대신 한번 저 스스로를 돌아봐요. 폭식하기 전 식사량이 적어 배가 아주 고팠던 건지, 많이 움직이지 않았는지, 최근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들여다보면 짚이는 구석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뭐 때문에 많이 먹는구나 하고 그냥 죄책감 없이 맛있게 먹어요. 무엇 때문인지 알았고, 아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니까요. 그리고 섭식장애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과식하지 않는 게 아니듯이, 마음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해서 모든 심리적 불편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작은 변화들이 생겨난다는 것을요. 결국 책에서도 지금도 전하고 싶은 내용은 이 마지막 한 마디인 것 같습니다. “라면을 두 개 끓이며 행복함을 만끽할 순간은 반드시 온다.”

현재 구체적으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글은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글쓰기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책 속의 묘사와 심리 표현이 섬세한데 앞으로 소설에 도전하실 건지도 궁금합니다. 더불어 향후 집필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오래 하다 보니 딱히 이렇다 할 취미를 만들지 못했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내고 비워낼 수단이 필요했는데 할 줄 아는 것도 딱히 없고, 미디어에도 익숙하지 않다 보니 가장 익숙한 것이 글자였고, 미술치료를 시작하며 선생님이 권한 것도 식단을 포함한 일기였어요. 그렇게 기록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성장과 함께 자연스레 글쓰기로 발전한 것 같아요. 

현재 저는 학교와 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동물매개치료’라는 동물 관련 분야와 심리학, 교육학, 재활의학 등이 융합된 학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하니 글쓰기는 잠시 미뤄두긴 했지만, 글 쓰는 일이 즐거워서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현재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초기 성인기, 즉 청년들의 성장에 관한 것이라서 다음 책을 쓰게 된다면 자기계발서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앞으로 글쓰기 실력이 더 늘면 소설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정예헌

‘공시합격’과 ‘45kg’만을 바라보며 20대 절반을 우울과 섭식장애로 보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심리적 문제는 환경, 외상 사건, 우울 등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자기와 타자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 외상 후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책을 쓰다 보니 욕심이 났고, 보다 나은 책을 만들고 싶어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어 건국대 대학원 바이오힐링융합학과에 진학해 동물매개치료를 공부 중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반려견과 산책하고, 눈을 맞추면서 그가 나에게 주는 선물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서 나누며 살아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심리학을 사랑할 것이며, 반려동물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막상 부딪혀 보면 세상이 꼭 그렇게 어렵고 무서운 일로 가득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정예헌 저
헤르츠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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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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