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우X정희원 칼럼] 추석에 생각해본 우리의 이동
전현우 정희원의 거대 도시에서 이동하기 18화 (마지막 회)
지금부터 20년간, 거대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 숨 가쁜 변화 속에서 거대도시민의 이동을 어떻게 구상하고, 이를 구현해 내는지가 미래 우리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넷 제로의 달성까지도 좌우할 것이다.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평소보다 2.5배로 길어진 전현우의 마지막 글, “세계 차 없는 날,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를 읽고 연재의 마무리에서 도시인의 이동에 대해 늘 생각하며 할 말이 많은 저자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찬가지의 심정이다. 액션 영화를 보다 보면, 리볼버 권총에 총알이 고작 한 발만 남아있지만, 쏘아야 할 상대는 무수히 많은 위기의 순간이 클리셰처럼 나온다.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랄까. 어느 해 보다 일찌감치 덥기 시작했던 올봄 흑석동의 양꼬치 집에서 작당이 시작된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 연재는 이 글이 마지막이다.
서론, 방법론, 결과와 토론이라는 과학 논문의 포맷으로 글쓰기를 배운 골수 이과생인 나와는 반대편 극단의 스타일로 내용을 전개하는 전현우의 글이 앞뒤로 붙었지만, 각자의 일과에서 세상의 지속가능성, 거대도시 사람들의 행복까지 한 바퀴 둘러 여기에 이르렀다.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뜨거워지는 지구에 대한 걱정, 우리 둘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고생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리고 보다 지속 가능한 이동 수단들에 대한 애착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의 이동이 가지는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지난 몇 달이었다.
민족의 대이동, 추석 연휴다. 국토교통부가 약 1만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 귀성 또는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67.9% 였다.1) 추석 전날인 오늘(9월 28일), 뉴스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로 9시간 10분이 소요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연재의 2화 <조금 특별한 퇴근길> 에서 나는 평균 시속 30킬로미터로 고속도로에 갇힌 채 대전을 거쳐 광주를 향했다. 추석 귀성객이 체감하는 고통은 내가 경험했던 석가탄신일 연휴 직전의 중부고속도로 상황을 훨씬 넘을 것이다.
바로 앞의 글에서 전현우가 이야기한 것처럼 철도의 과잉 공급과 과소 공급은 역사의 파동처럼 반복되며, 결과적으로는 있어야 할 곳에는 꼭 기차가 모자라는 모습이다. 현재의 고속철도 노선은 선로 용량을 이미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만큼 공급의 탄력성도 떨어진다. 서울-광명 구간, 평택-오송 구간 등 물리적인 선로 용량의 제한으로 일본의 신칸센처럼 4-5분 간격으로 배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풍선 효과로 자연스레 자동차가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오를뿐더러 전현우의 지적처럼 연휴 기간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마저 무료라는 차량 선택의 경제적 인센티브까지 생겨난다. 차량의 평균 이동 속도가 느려질수록 공회전과 가감속의 비중이 커지며 자연히 단위 거리당 탄소 배출도 많아진다. 혹자는 전통적인 차례, 성묘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면서 이와 같은 대이동 현상도 희미해질 것으로 예측하지만, 사람들이 고향 집을 향하지는 않더라도 그 대신의 여행지를 향하게 될 것이니, 이동의 수요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긴 연휴 기간 거대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오늘(9월 28일) 전국 고속도로 교통량을 569만 대로 예상했다. 추석 연휴의 피크 고속도로 교통량은 역사적으로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비교하자면 2014년 추석 연휴는 525만 대, 2013년은 502만 대였다. 차량의 수송 분담률 역시 증가하고 있다. 정책자료집 <10년간 명절연휴 통행실태>에 따르면 추석 연휴 수송 분담률은 2008년 79.4%에서 2017년 89.3%로 증가되었다(그림1).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고 있으며, 2023년의 국토교통부 전망치로는 승용차가 92.0%, 고속버스가 0.8%, 시외/전세버스가 2.3%, 철도가 3%, 항공이 1.5%, 해운이 0.5%를 분담할 것이 예상된다. 철도의 분담률은 안타깝게도 2008년 4.4%에서 2023년 3%까지 꾸준히 줄어들었다. 대전에서 서울을 차로 오가다 보면 마치 염장을 지르는 것 같은 ‘KTX 탈걸’이라고 씌어 있는 광고판이 있었는데(그림2), 통계를 보면 역시나 몰라서 또는 싫어서 안 타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 타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연휴 통계만 놓고 보아도, 우리나라는 지난 17화의 연재에서 두 저자가 끊임없이 부족함을 외쳤던 이동 수단, 편안하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인 철도의 입지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어떨까? 2014년부터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 이르기까지 철도의 여객, 화물 수송 분담률 추이를 보면 여객 수송 분담률에서 4.1%에서 4.6%로 증가(수송량은 1,263 백만 명에서 1,570 백만 명), 화물 수송 분담률에서 2.2%에서 1.4%(수송량은 37,379 천 톤에서 28,664톤)로 감소되었다. 2) 여객의 경우 지하철을 합쳐서 계산하면 사정이 좀 더 나아지는데, 2014년 12.4%에서 2019년 15.5%까지 증가한다(코로나-19가 찾아왔던 2020년, 이 수치는 다시 13.0%까지 쪼그라든다). 총량(여객 수송량)으로는 철도의 공급이 느리게나마 증가하고 있지만, 극단적으로 이동 수요가 증가하는 명절을 대응하기에는 새 발의 피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주로 건강보험의 영역에서 진료하며,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은 다른 과에 비해 현저히 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얽혀 있는 처방을 검토해 약을 줄여내는 일을 많이 한다. 진료를 마칠 때 오늘 내가 몇 명의 환자에서 도합 몇 개의 약을 정리했는지를 세어 볼 때가 있는데, 이를 연간 약제비로 환산하면 꽤 큰돈이 된다. 때로는 여러 곳의 병원, 대여섯 명의 의사를 만나던 어르신이 드시던 20개 이상의 약을 한 장의 처방전에 모아낼 때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번에 열 개 이상의 약이 정리되기도 한다. 때로는 약은 간소해지며, 한편 어르신들의 전신 상태까지도 개선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환자와 가족은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고, 비용이 절감되고, 삶의 질도 나아지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검사는 적게 내고 생각은 많이 하는 일이라 진료를 하면 할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가 나는 구조다. 이런 일을 하는 노년내과 의사의 입장에서 철도를 바라보면 늘 묘한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7화 <결핍에서 찾는 희망, 거대 도시와 철도>에서 살펴본 것처럼 철도를 위시한 대중교통을 보급하고 유지하는 일은 사업주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재분배적이고 탄소 감축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도 좋은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운영 주체 입장에서는 돈을 쓰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철도를 운영하는 주체는 돈을 어떻게 더 잘 사용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들을 평가할 때 엄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는 의료 복지를 위해 돈을 쓰기 위한 조직으로 존재하는 공공병원이 적자를 내는 것으로 비난받거나, 또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제약물관리나 연령친화의료시스템과 같은 노인 의학적 진료 시스템을 설립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수서 KTX 운행 등 철도 민영화 정책 중단의 기치로 이루어졌던 2023년 9월의 철도 파업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볼 만하다. 미디어오늘은 철도 파업을 보도한 전체 193건의 기사를 분석했고3) 철도노조의 파업 이유를 기계적으로 나열한 보도는 114건(59.1%)이지만, 파업 쟁점을 심층적으로 설명한 보도는 10건(5.2%)에 불과함을 보였다. 한편, “하루 이자 비용만 10억 원씩 발생하는 상황” 등으로 파업을 비난하는 논리는 사회간접자본으로서 철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올곧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아 중환자실과 응급실, 분만실을 닫고, 노인 의료는 도외시하며 무궁화 노선을 폐지하듯 돈을 벌지 못하고 쓰는 무언가는 설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굴러갈 수 있을까? 자동차 회사는 돈이 들어가는 조직인 공장과 연구 부서를 모두 없애버리고 돈을 벌어들이는 캐피탈과 영업 조직만 남겨야 할 것이다. 이런 소위 ‘컨설턴트식 사고방식’으로 쇠락해 버린 우량 회사로는 제네럴 일렉트릭(GE)을 들 수 있다. 회사도 이런데, 하물며 공공 서비스에서 재무적 가치를 바라보고, 본질적 가치를 바라보지 않는 방식으로는 그 사회에 필수 의료나 철도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내가 이동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자동차로부터의 테이퍼링(tapering)’ 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새벽 출근은 편도 택시를 활용하고, 퇴근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새벽에도 지하철을 타면 금상첨화이겠으나, 도저히 여기서 잠을 45분 더 줄이기는 어려웠다. 자동차의 월간 평균 주행거리는 올 1월에 578km였으나(작년의 평균 월 주행거리는 600km), 7월 267km, 8월 269km로 감소하였다. 도시 간의 이동 방식도 바뀌었다. 구형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행동반경을 넘어서는 장거리 이동은 철도와 버스를 다양하게 조합했다. 소요 시간은 더 길어지고 때로는 비용이 더 들지만, 이동 중에 일을 처리하거나 글을 읽고 쓸 기회가 늘었다.
차 시간이 애매하게 남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스터디 카페에서 논문을 읽기도 했고, 가방에 러닝화를 챙겨가 처음 가보는 동네의 헬스장 일일권으로 운동을 하기도 했다. 차가 사라진 장거리 이동에서는 두 다리가 중요한 환승 교통수단이 되었다. 몸의 움직임이 많아지면서 온몸이 찌뿌둥하고 부어오르는 것 같던 자동차 여행의 후유증도 완화되었다. 지금 다시 석가탄신일 연휴 직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센트럴시티에서 광주를 향하는 저녁의 고속버스를 탈 것이다. 센트럴시티까지 지하철로 오는 동선이 복잡해서 선택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총 소요시간은 한 시간 반쯤 더 걸리더라도 전체적인 피로도는 훨씬 낮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 삶에서 차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움을 느낀다. 때로는 왕복 이동시간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두세 배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동차는 고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과잉 소비는 건강에도, 지구에도 이롭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곧바로 완전히 삶에서 제거해 버리기에는 상당한 실질적 어려움이 있다. 개인의 건강이나 시간 배분과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사회적 편익을 더했을 때, 현시점에서 자동차나 고기를 줄여나가는 것의 편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역-U(inverted U)형 곡선일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적으로 우선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선에서 식사에서 최대한 고기를 절제하는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들의 접근처럼 가능한 선에서 자동차 소비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전현우가 제시하는 깍지 모형처럼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거대도시를 구성하는 도시들이 연결되는 것, 대중교통의 물리적, 사회적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 반환경적인 이동 방식에 대한 모종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이 곡선의 형태를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도시를 사는 이들의 이동과 고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논의를 하다 보면 결국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현상이 문제라는 깔때기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현재부터 10-20년 내에 물리적인 서울 집중 현상이 해소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22년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시도편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40년까지 20년 동안 서울 인구는 962만 명에서 854만 명으로, 인천 인구는 295명에서 295명으로, 경기 인구는 1,345명에서 1,479명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곳을 합친 수도권 인구는 2,602만 명에서 2,628만 명으로 미세하게 증가한다. 참고로 같은 추계에서, 수도권 인구는 2035년 2,641명(총인구의 51.9%)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실질적으로 거대도시 안에서 이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 앞으로 늘 수 밖에 없다. 고령화로 인해 거주지 근처를 넘어서는 이동이 보호자 없이는 상당히 어려운 인구의 증가를 추가로 고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의 예상 변화를 이용하면 된다. 2021년 기준 약 95만 명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보유하고 있었고, 필자는 2041년에는 약 300만 명이 기준에 부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4) 수도권에 장기요양보험 등급자의 약 40%가 거주한다고 할 때, 이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수도권 거주 노령 인구는 20년에 걸쳐 약 40만 명에서 약 120만 명으로 증가한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수도권 내 이동 수요는 약 60만 명, 또는 2020년 대비 2~2.5%가량 감소할 것이다. 다만,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시도편은 장래인구추계의 ‘중위가정’을 활용하였는데, 실제로는 인구가 가장 부정적인 ‘저위가정’보다 더 빠르게 감소되고 있으므로, 여기서 수도권 이동 수요 인구가 100~200만 명 더 감소할 여지도 있다. 좀 오래된 통계이지만, 한국은행 경기본부의 자료를 참고하면 2015년 경기지역에서 서울로 통근, 통학을 하는 인구는 127만 7,000명이었다. KT의 휴대전화 통신과 서울시 대중교통 이용 등 행정 데이터를 조합한 서울 생활 인구 빅데이터에서, 서울 외 지역에 살면서 출근이나 통학을 이유로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2018년 기준 최대 165만 명이었다. 아주 거친 계산이지만, 165만 명에 동수의 가족 인원을 더하면 330만 명이고, 이를 우리나라의 평균가구원 수인 3명으로 나누면 110만 세대다. 이만큼의 가구가 서울의 직장 근처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된다면 통근 지옥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인데, 2040년까지도 요원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필자가 『지속가능한 나이듦』에서 기술하였던 것처럼, 현재 60대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2035년경부터는 80세의 선을 넘게 된다. 그때부터는 상당수가 노쇠, 질병, 기능 저하로 시설에 입소를 경험할 것이다. 배우자 사별 이후 독거 상태에서 장기적이고 돌이키기 어려운 시설 입소가 발생하면, 집이 비게 된다. 이는 부동산 공급 요인이다. 우리나라가 노인의 시설 입소 요양 서비스 수요가 2005년 OECD 국가 평균인 65세 이상 인구 중 4.9퍼센트로 수렴한다고 하면, 2040년 노인 의료복지시설(요양원 요양병원)에 거주하는 사람은 84만 4,000명 정도로 예상한다(65세 이상 인구 1722만 명). 2019년 발표된 장래가구추계에서는 2040년에 총가구 수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노쇠, 질병, 기능 저하에 따른 시설 입소에 의한 가파른 가구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의 가속 추세를 보면 실제로는 가구 수의 정점이 이보다 5년 이상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 집중화의 압력이 꾸준한 상태에서 인구 자연 감소와 노쇠 진행, 시설 입소 등에 따른 실질 부동산 공급은 점진적으로 장거리 통근 수요 인구를 흡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도시철도 노선 역시 지옥철이기는 하더라도 거대도시 내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수도권의 직장인들이 겪는 지옥의 이동은 적어도 15년 내에는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개선될 것이다. 참, 2040년에 서울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기후를 유지하고 있다는 가정이 필요한데, 2020년 국립기상과학원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41~2060년에 고탄소 시나리오(SSP5-8.5) 기준 동아시아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섭씨 3.2도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므로(매우 더운 날은 현재 1년에 36.5일 정도이다가 2040-2060년에는 82.5일로 늘어난다), 일상이 상당히 버겁겠지만 그때까지 서울시민은 생존을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미래를 예측해 보면, 결국 달이 차면 기울고, 과잉이 있으면 다시금 결핍을 향하듯 모든 사람을 빨아들이던 수도권의 과밀화와 이동 지옥이 구성원들의 삶을 한계까지 도탄에 빠뜨린 만큼,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인구 감소 역시 빠르게 일어나며 과밀의 문제가 소실을 향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통념과는 다르지만,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생태학자인 프랭크 굿마르크(Frank Götmark)교수는 한 사회의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합계출산율이 감소하는 현상을 사회가 고도화되고, 동시에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바뀌어가는 발전의 모습으로 해석하는데5) 이런 기준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거대도시로 발전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이런 거대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거대도시인의 삶이 굳이 먼 거리를 도로와 철도를 활용해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조금씩 바뀌고, 대중교통의 경험도 점차 나아지면 자동차 리듀스테리언은 자동차 없는 삶에 가까워진 모습을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연 인구 감소에 기대어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기를 관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온실가스 예산은 그리 풍족하지 않다. 지금부터 20년간, 거대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 숨 가쁜 변화 속에서 거대도시민의 이동을 어떻게 구상하고, 이를 구현해 내는지가 미래 우리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넷 제로의 달성까지도 좌우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해야 할 것들과 빼야 할 것들은 이제 더없이 명백하다. 바뀌는 일만 남았다.
1) 국토교통부, 2023년 추석 연휴 특별교통대책 안전하고 편리한 고향가는길 2) e-나라지표 (//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5/24/K4HBZDQN6VC7XHZV6D6ZDNA6SE/) 5) Götmark F, Cafaro P, O'Sullivan J. Aging Human Populations: Good for Us, Good for the Earth. Trends Ecol Evol. 2018 Nov;33(11):851-862. doi: 10.1016/j.tree.2018.08.015. Epub 2018 Oct 16. PMID: 3034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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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과대학 시절, 호른을 연습하던 중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감소증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내과 실습을 돌며 노인의학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내과 전공의 시절 노쇠에 대해 연구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의과학대학원에 들어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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