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스포주의※ 장류진 신작 엄청 재밌어, 근데 본인은 그걸 몰라 (G. 장류진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53회) 『연수』
나는 나를 그저 조그맣고 단순한 기계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메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그 성능만큼은 믿어보기로 한다. 무언가를 넣고 작동시켰더니 어쨌든 이런 것들이 출력되었다고.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니까 고장 나지 않게 하려면 꾸준히 기름칠해 주면서 멈추지 않고 작동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23.08.10)
소설을 쓰게 된 후로 소설을 '어떻게' 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친구들은 "머릿속에 이런 게 다 있었던 거야?" 간솔히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려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소설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장면이나 인물, 혹은 그들이 내뱉는 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떠오른다. 왜 이렇게 자주 나타날까? 자꾸 생각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소 무모한 생각으로 큰 틀을 잡고 쓰기 시작한다. 뭔가가 있긴 있겠지, 없지는 않겠지. 흐릿하고 두루뭉술한 마음으로 써나간다. 정말 신기하게도 다 쓰고 나면 매번,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가 고여 있고 덧대어져 있다.
나는 나를 그저 조그맣고 단순한 기계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메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그 성능만큼은 믿어보기로 한다. 무언가를 넣고 작동시켰더니 어쨌든 이런 것들이 출력되었다고.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니까 고장 나지 않게 하려면 꾸준히 기름칠해 주면서 멈추지 않고 작동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게 무엇이든 계속 써보려고 한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연수』의 「작가의 말」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으로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는 작가를 모셨습니다. 새로운 소설집 『연수』를 펴낸 장류진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황정은 : 이번 책에 부치는 인사말로 "이 여정을 당신과 함께"라고 쓰셨는데요. 표지를 넘기면 독자들이 장유진 작가님이 손으로 쓴 그 인사말을 먼저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여정'이라는 말을 쓰셨어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장류진 : 표제작인 '연수'라는 단어랑도 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여기 실린 소설들의 인물들이 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 속에 놓인 인물들, 어떤 여정을 가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여정을 독자 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황정은 : 이번 단편집 『연수』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연수」라는 단편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한 20대 화자의 이야기입니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는 말로 끝이 나는 소설인데요. 혹시 그 말 때문에 표제작이 되었을까요?
장류진 : 꼭 그런 건 아닌데요. 그 말을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힘이 됐던 말이기도 하고. 제가 사실 자신에 대해 의심을 되게 많이 하는 성격인 것 같거든요. 행동이나 실천은 과감하게 하는 측면이 있어요. 생각나면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긴 하는데, 행동만큼 마음이 과감하지가 않은 거예요. 계속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되나?' 의심을 하는 성격인 것 같아서, 그럴 때 '네가 지금 하는 그대로 괜찮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라고 해주는 말이 불편하거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는 말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잘했어'랑 '잘할 거야'랑도 조금 다르거든요. '잘했어'는 이미 내가 뭔가를 보여줘서 인정받는 말인 것 같고 '잘할 거야'는 '저 사람이 내가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데 내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잘하고 있어'라는 현재 진행형은 있는 그대로 힘을 주는 말인 것 같아서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쓰게 된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러면 그 말이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을까요?
장류진 : 사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긴 한데요. 그 말을 마지막에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소설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소설을 쓰다 보면, 결말이 정해졌을 때의 경우에, '이런 말을 써야지' 혹은 '이런 마지막 장면을 써야지'라고 마음먹고서도 그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이 소설은 다다르신 거네요.
장류진 : 네, 그렇죠. 사실 '잘하고 있어'라는 말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중간에 어딘가에 넣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까 거기서 끝나게 됐어요.
황정은 : 연수의 화자인 '주연'은 살면서 여러 관문들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통과해 왔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잘하고 있다'라는 응원이 필요한 인물이에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인물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도 조금 궁금했거든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등장을 합니다. 한 명은 화자의 엄마,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화자의 도로 연수를 돕는 여성인데요. 읽다 보니까 '역할을 두 사람이 나눠서 가지고 있을 뿐이고 어쩌면 둘 다 화자의 엄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이 두 여성의 이야기가 주연의 이야기에 왜 필요했는지 좀 궁금하기도 했어요.
장류진 : 주연은 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남에게 해를 끼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나한테도 안 그래 줬으면 하는, 그런 예민한 성격의 사람인 거죠. 그런데 이런 성격의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삶이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있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공포라고 느껴질 정도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거죠.
사실 둘 다 잘 가기가 힘드니까 '난 저쪽 길로는 절대 안 가야지, 난 이쪽 길로만 가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사실 '이 길'로만 갈 수는 없잖아요. 이 길로 가다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건데, 화자는 그 '다른 길'에 대해서 너무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사실 저는 '주연'이라는 인물이 어떤 길로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길로 가든 저 길로 가든, 뒤에서 경적을 막 올리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초행길이면. 그래서 이 인물에게 그 경적을 막아주고 '가던 길 가'라고 하는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황정은 : 「펀펀 페스티벌」은 직장인 여성인 화자가 오래 전에 목격한 어떤 뻔뻔함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전한 뻔뻔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세명그룹 신입 사원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연수원 프로그램에서 벌어진 일을 회상하는 소설이잖아요. 이 소설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장류진 : 제가 회사를 거의 10년 정도 다녔어요. 그 중에서 IT업계 서비스 기획자로 가장 오래 일을 했었는데, 실무진으로서는 좋았어요. 그런데 계속 연차가 쌓이면서 회사원으로서의 미래를 그려보게 되잖아요. 그때는 소설가가 될지 몰랐으니까.(웃음) 그려 보면, 어쨌든 회사원으로서의 성공이라는 건 위로 올라가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씩 하나씩 승진을 하는 것. 회사의 조직 구조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겼으니까 위로 갈수록 자리가 좁아진다는 얘기인데, 그럼 올라가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지금 내가 실무로서는 재밌고 좋고 다 좋은데 저 위로는 못 올라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거예요. 올라가도 나랑 안 맞을 것 같은 느낌. 왜냐하면 그 위에 누가 가는지를 봤을 때, 사실 일을 잘하는 순서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면면을 보면 그런 사람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가당치도 않은 사람이 올라가 있는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황정은 : 종종 있죠.
장류진 :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저런 데 올라가는 사람이 올라간다'라는 거였어요. '내가 저기 올라갈 수 있을까?', '올라갈 자격이 있을까?', '가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하는 사이에 '비켜, 비켜! 내 자리야' 이러면서 막 올라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올라가서 '나 여기 올라왔으니까 이것 좀 받아' 이러면서 자기가 지고 있던 걸 막 밑으로 떨어트리고, 자기의 가치를 고민하던 사람은 그걸 받는 거예요. 자기가 안고 있던 자기 사람들까지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그 위치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고민하고 지향점을 고민하는 사람이 조직 전체에서는 더 도움이 될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못 올라가고 '비켜, 비켜!' 하는 사람들이 올라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회사 전체로 봤을 때는 이게 안 좋은 거예요. 그런데 겉에서 보면 또 회사가 잘 돌아가요. 희한하게. 굴러는 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비단 사회생활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굉장히 엉뚱한 원리로 돌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제가 회사를 10년 정도 다니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펀펀 페스티벌」 속의) 가상의 페스티벌을 통해서 녹여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공모」는 제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거든요.
장류진 : 감사합니다.
황정은 : 정말 재밌었어요. 저는 사실은 이 단편에 대한 이야기만 거의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궁금한 것도 되게 많고, 너무 좋았어요. 내용을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40대 초중반의 여성 화자 '현수영'이 17년 전의 일을 회고하는데, 지금은 관리직까지 올라간 사람이고요. 그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천의 얼굴'이라는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소설이 시작이 되는데요. 현수영은 흔히들 말하는 남초 조직에서 기회를 잘 잡고 승진을 한 인물이죠. 소설은 현수영이 결정권을 가진 자리로 승진한 이후에 남성적인 조직 문화를 바꿔가다가 채용 비리에 공모하게 된다는 내용인데요. 단순하게 보아서는 과거 이 회사에서 있었던 채용 비리하고 좀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복잡한 맥락이 있어요. 이 소설은 일단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장류진 :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서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잖아요. (여성이) 술이랑 음식을 파는 영업장을 운영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성을 사고파는 건 아니지만, 오는 손님들이 술과 음식과 함께 뭔지 모를 성적인 느낌을 같이 사는 것 같은, 그런 중년의 남성 손님들이 능구렁이 같이 더러운 농담을 하고, 주인은 영업을 위해서 그걸 어느 정도 받아주는. 그게 사실 되게 많고 흔하게 나오는 설정이잖아요.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 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거의 한 10년 전부터 계속 해오던 생각이에요.
사장은 한 명이 있는데 어쨌든 손님은 여럿이니까 오히려 손님들끼리 경쟁하고 사장이 확 이용해 먹는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서 그냥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근데 그 여사장한테 딸이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근데 그 딸이 똑똑한 거야', '그래서 취직을 시키고 싶은데 그 손님의 회사로 청탁을 하는 거야', '그러면 손님이 어떻게 할까?', '근데 이 손님은 그 여사장을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청탁을 받고서 어떻게 그 딸을 (회사로) 데려올까 고민하는데, 그냥 취직을 시키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때 갑자기 현수영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뿅 떠오른 거예요. '근데 현수영이라는 사람이 있어', '현수영은 이 남자 손님과 이런 전사가 있어. 그래서 현수영은 천 사장이 싫어', '근데 만났는데 딸이 마음에 들어' 막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거 된다, 된다' 이러면서 '이거 써야겠다, 써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된 거예요.
황정은 : 저는 이 소설이 재밌어서 두어 차례 읽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 목소리로 듣는 것도 재밌는데요?
장류진 : 그래요?(웃음) 이걸 하다 보면, 사실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구축을 한다는 게 방송에서 하하 씨가 하는 것처럼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분이 상황극 설정을 하는데 '나는 아이돌 그룹의 막내야. 근데 비주얼 담당인데 난 그걸 몰라. 난 내성적이야. 근데 무대 위에선 열정적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해. 나는 몰라' 이런 걸 막 하거든요.
황정은 : 캐릭터를 빌드업 해나가는 거네요.
장류진 : 네. 그걸 '하하 유니버스'라고 해서 '하하버스'라고 하는데, 사실 캐릭터 구축하는 게 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황정은 : 아, 세상에. 소설 쓰는 비법을 하나 배운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장류진 1986년에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 국문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8년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편 소설 『달까지 가자』 등이 있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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