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비혼주의자 관찰기
『옆집의 비혼주의자들』 김지서 작가 인터뷰
우주에 공기가 없듯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비혼주의자들의 유토피아만 없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처음부터 없는 거니까 서러워할 필요도, 구태여 없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필요도, 남들은 다 있는데 왜 나만 없냐고 성낼 필요도 없죠. (2023.08.02)
불같은 사랑에 눈이 멀어 사이좋게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간 가족 이야기 『요산요수』 이후 김지서 작가가 선택한 인간은 바로 '비혼주의자'다. 어딘가 별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고 돌부리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을 것 같은 비혼주의자들은 『옆집의 비혼주의자들』 속에서 너무나 평범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행복해야만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라고 외치는 비혼주의자들의 경쾌한 첫 번째 비행을 만나보자.
첫 작품 『요산요수』 이후 1년 여만에 다시 『옆집의 비혼주의자들』로 만나뵙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서로 찰싹 달라붙어 있어 징그러운 한국의 모던 패밀리 이야기 같은 가족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고 하셨는데, 두 번째 소설은 오히려 빨리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고,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비혼'이라는 소재를 선택하셨어요. 계기가 있을까요?
근래 들어 관심이 좀 사그라들긴 했지만 『요산요수』 의 차기작을 고민하던 작년 경에는 비혼주의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과 설전이 정말 대단했어요. 특히, 비혼주의자들과 기혼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서로의 삶을 두고 갑론을박하며 대차 대조표를 작성하려 들었는데, "무조건 내 선택이 옳고 너는 틀렸어! 넌 결국 불행해지고 말 거야!" 저주를 퍼부으며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살을 날리는 그들의 행태가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때는 직장생활도 몇 년 해본 때였는데, 이십 대 초반 또래들밖에 없던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들어가니 기혼인 상사들, 미혼인데 결혼을 고민하는 상사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하는 상사들을 만나게 됐어요. 회사에 다니며 동시에 자녀의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여성 상사들의 삶 또한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는데 이 소설을 창작하는 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이 모든 우연과 고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엉키며 『옆집의 비혼주의자들』을 쓰게끔 나 자신을 충동질한 것 같습니다.
'비혼주의'를 주제로 하는 글에서는 언제나 글을 쓴 작가의 깊은 고민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께서 '비혼주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엮어가실 때 가장 깊게 고민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설이 프로파간다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삶, 인간적인 결함과 고민을 균형 어린 시각으로 다루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남녀노소를 떠나 모든 인간에게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끔찍한 결점이 최소 한두 가지씩은 있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팔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강한 인정 욕구, 지독한 이기심, 도벽과 물신 숭배, 타인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희생 정신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책임, 물색없음 등 여러 성격적 결함을 인물들에게 고르게 분배하려고 했고, 그 결함으로 인해 공동 생활에서 끝없이 갈등이 발생하도록 이야기의 전체 틀을 구성했어요.
이렇게 캐릭터 조형에 힘을 쏟았던 건 이 소설을 쓸 당시 인터넷을 점령했던 비혼주의자에 대한 세간의 편견 때문이었어요. 그건 비혼주의자를 꿈꾸는 20대 초반 젊은 세대 역시 품 안에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편견이었는데, 인터넷에서 자신을 '행복한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하는 익명의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다들 가족과 사이가 좋고 직업도 훌륭하며 중년이 된 지금도 꾸준히 이성의 대시를 받을 만큼 매력적이고 언제든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친도, 노후 걱정 없이 펑펑 쓸 수 있는 통장 잔고도, 여행과 취미 생활을 즐길 시간도 많은 소위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더라고요.
저는 비혼주의자에 대한 그런 인식이 절대다수 평범한 비혼주의자들의 삶을 표백한다고 생각했어요. 삶에는 행과 불행이 사이좋게 오가고 행보다는 불행이 훨씬 많은 법인데, 어떻게 그런 삶이 존재할 수 있겠어요? 비혼, 기혼, 미혼을 다 떠나 대다수 사람은 남들에게 말 못 할 가정사가 한두 개쯤은 있고 직업도 평범하며 돈도 별로 못 벌어요. 대다수 사람은 그냥 이백, 삼백 되는 월급을 아껴서 적금을 붓고 2년마다 전셋값이 오르는 걸 걱정하며, 외모도 지극히 평범하고 취미는 쉬는 날 집에서 넷플릭스 보기 정도겠죠. 그리고 가까웠던 친구들이 결혼하게 되면 비혼인 당사자와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는 게 당연하고요.
그럼 그 사람들은 비혼주의자가 아닌 걸까요? 그저 시집 장가 못 간 불쌍한 노총각, 노처녀에 불과한 걸까요? '비혼, 비혼주의자, 비혼 공동체'에 대한 헛바람을 좀 빼서 지금, 여기 우리가 실제 밥 먹고 잠자고 돈 벌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현실 위로 비혼주의자들을 내려오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이 땅 위에 두 발로 딛고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수진이 모집한 여성 비혼 공동체는 여성 비혼주의자들의 쾌적한 삶을 이루겠다는 취지가 있긴 하지만 동시에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너무 높은 서울 집값을 적절히 분배해줄 월세 동반자를 구하고자 하는 목표도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경제적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한다면, 수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비혼주의자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진실로 이상적인 삶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해요. 기혼에게도 미혼에게도 비혼주의자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이며, 서울에 자가 아파트가 있다고 해도 삶은 백일몽 속에서 굴러가는 게 아니라 현실 위, 말 많고 짜증스러운 기기묘묘한 인간들 사이에서 삐걱삐걱 겨우겨우 굴러갈 뿐이니까요. 소설의 주인공인 수진이는 33세이고 직업 활동을 하는 여성이지만, 한 번도 부모님 슬하를 벗어난 적이 없기에 자기 힘으로 자기 1인분의 삶을 꾸려가는 문제에 관해선 어린아이와 다름없어요.
'세상 물정 모름'에서 비롯되는 비혼주의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이상과 기대감이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인데 그런 망상에 가까운 이상이 몇몇 사건을 통해 하나둘 깨지며 진작에 졸업했어야 할 유년기의 이상주의를 버리고, 자기 나이에 맞는 현실주의를 받아들이는 게 이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변모였어요. 그러나 아직은 그 변모가 시작에 불과합니다. 소설은 철없는 이상주의자가 마침내 현실주의자가 되는 성장통의 전사(前史)를 그릴 뿐, 소설 마지막 장에 가서야 겨우 성장의 낌새가 느껴지는데 '이상적인 삶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의 삶이 진정 편안해질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비혼주의, 비혼주의자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옆집의 비혼주의자들』 속에는 기혼 여성 '소희'도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소희가 가진 키워드는 부유한 시댁, 스튜어디스, 경력 단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작가님의 시선에서 소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은 성인 여성 한 명과 어린아이 한 명을 자신의 수입으로 부양해낼 능력이 없어요. 그들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냥 오늘날의 상황이 그렇죠. 결혼 후 배우자에게 선뜻 지금 다니는 직장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할 수 있는 사람, 부모 명의로 된 서울 시내 방 네 개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소희라는 여자는 우연히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스튜어디스 출신의 아름답고 젊은 아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다정한 남편, 부모가 마련해준 널찍한 아파트, 많이 배운 시부모 등 소희의 삶은 '겉보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여요. 소희가 직장에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대신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가능케 해줄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한 건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1순위로 고려한 끝에 어렵사리 도출한 결론이지만, 지레짐작에 불과한 상상과 실제 현실은 언제나 어긋난다는 걸 저는 수진이뿐만 아니라 소희의 삶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804호에 사는 인물들은 사실 '비혼주의'라는 중심에서 다들 각자의 거리를 갖고 떨어져 있습니다. 채식주의에도 단계가 있는 것처럼, 비혼주의도 개인의 신념에 따라 그 깊이와 의미가 천차만별일 수 있겠죠. 804호의 그녀들에게 '비혼주의'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집니다.
소희에게 민규와 결혼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듯 804호 그녀들에게 비혼주의 역시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내린 한 가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결혼해서 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비혼 역시 살다 보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꽤 중요한 선택이긴 하지만 결혼과 비혼이 한 인간의 생사의 기로를 가를 만큼 중차대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아마 살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행복하기 위해 내렸던 과거의 선택이 대뜸 내 뺨 싸대기를 후려갈기며 나에게 불행을 선사할 때인 것 같아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사는 건 다 플러스 마이너스 원 제로라고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도 해요. 지금 마이너스니까 조만간 반드시 플러스가 올 거라고. 플러스가 안 오면 시간이 더 지나 호호 할머니가 됐을 때라도 올 거라고.
결혼과 비혼,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간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내가 했던 과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현재 진행 중인 삶을 헐뜯기도 해요. 기혼자들이 '기혼'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지듯 비혼 여성들의 삶도 분별 불가능한, 동질의 것으로 취급받지만 804호에 사는 그녀들은 전부 다 다른 인간이에요. 그녀들이 해석하고 경험하는 비혼주의 역시 모두 다 다르고, 그 선택에서 비롯되는 그녀들의 감정과 행복감도 다 다를 거라고 봐요.
804호 공동체의 첫 시작은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역시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고 말했던 작가님의 생각이 녹아 있는 듯한데요. 비혼주의자들의 유토피아는 정말 없을까요?
없어요. 우주에 공기가 없듯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비혼주의자들의 유토피아만 없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처음부터 없는 거니까 서러워할 필요도, 구태여 없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필요도, 남들은 다 있는데 왜 나만 없냐고 성낼 필요도 없죠.
캐릭터를 이토록 치밀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건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강렬한 특징입니다. 『요산요수』를 읽었던 때처럼, 신간 『옆집의 비혼주의자들』의 마지막 장을 덮자 곧바로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어요. 다음 작품은 어떤 사회적 인간들을 다루고 있는지 조금만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최근 가장 관심 가지는 주제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자, 소위 말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가정 내에서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그 성격 장애가 어떤 식으로 대(代)를 이어 물림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에요. 직장에서 나르시시스트 상사를 만나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얻고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지만, 이상하게도 가정 내에 명백히 존재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다 같이 함구하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 가정의 치부를 바깥에 드러내는 것은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여기는, 가족과 자기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병적인 가족주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나 가정 내에 나르시시스트가 존재하면 그 가정은 자연스레 역기능 가정이 되고 그런 가족 같지 않은 가족에서는 딸이 친구가 되고 아들은 애인이 되고 아내는 엄마가, 남편은 큰아들이 될 수밖에 없어요. '친구 같은 딸'. 저는 이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역기능 가정에서 발견되는 그로테스크한 관계들, 그리고 비극을 다음 작품에서 다뤄볼 예정입니다.
*김지서 1997년 1월 출생.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낸 책으로는 장편 소설 『요산요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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