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두려워하지 않는 추락 『일만 번의 다이빙』
『일만 번의 다이빙』 이송현 작가 인터뷰
『일만 번의 다이빙』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추락을 반복하는 고교 다이빙 선수들의 이야기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온몸을 내던지는 십 대들의 분투기를 담았다. (2023.07.31)
아동·청소년 문학 분야의 여러 상을 섭렵하며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이송현 작가가 활기 가득한 스포츠 소설로 돌아왔다. 『일만 번의 다이빙』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추락을 반복하는 고교 다이빙 선수들의 이야기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온몸을 내던지는 십 대들의 분투기를 담았다. 매 순간 마주하는 높이에 대한 공포, 이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기량이 뛰어난 동료를 향한 경쟁심 등 다이빙 선수들의 이야기이지만,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추락을 반복하는 다이빙은 종목 그 자체로도 충분히 문학적이면서, 사춘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십 대들의 삶을 잘 대변하는 것 같아요. 다이빙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어느 날 제게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나에게 오라고 반긴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알아서 나가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어떻게든 유난스럽지 않게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슬럼프를 겪을 때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해요. 추락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그렉 루가니스'를 떠올렸지요. 제가 좋아했던 다이빙 선수이자 스크랩한 유일한 사람이에요. 추락하는 루가니스의 연기를 보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목격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꽤 오랜 시간 수영을 했고 한때 수구에 빠져있기도 했어요. 언젠가 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 하던 찰나 나의 슬럼프를 데리고 우아하게 추락해 보자 결심하게 되었어요.
『내 청춘, 시속 370㎞』의 매사냥, 『라인』의 슬랙라인, 『나의 수호신 크리커』의 양궁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자주 집필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오래 앉아서 작업하다 보니 이외의 시간에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 건강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지요. 『내 청춘, 시속 370㎞』, 『라인』은 스포츠보다는 우리 전통 문화를 현대화해서 풀고 싶었어요. 오늘의 독자들이 전통을 고루하거나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나의 수호신 크리커』는 우리나라의 십 대들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특별한 면모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스포츠, 양궁을 소재로 삼았어요.
다이빙 훈련 장면이나 선수들의 심리가 세밀하게 그려진 것 같아요. 혹시 집필 간에 다이빙을 직접 해보셨나요? 어떻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작품을 쓰는 동안 코로나 시기라 아파트 단지 안 수영장이 폐쇄되었어요. 한창 수영할 때 스타트대에 올라섰던 기억을 더듬었지요. 그렇게 연습을 해도 스타드대에 서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무서웠거든요. 고작 스타트대에 선 기억으로 3m, 5m, 10m 위의 세상을 끊임없이 상상했던 것이지요. 허풍이 셌던 것일까요?
주인공 무원과 다이빙부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인물들까지 모두 매력이 상당한데요. 편의점 알바, 약수터 할아버지, 맛집 주인 등 조연들이 이야기를 더욱 감질나게 끌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들은 어떻게 구상하시게 됐나요? 혹시 조연 중에서 가장 애정 가는 인물을 꼽자면 누구인가요?
이야기를 꾸리기 전에 늘 이런저런 인물들을 그려보는 습관이 있어요. 저는 제 이야기 속 인물들이 대단히 멋지거나 완벽한 사람이기를 바란 적이 없어요. 대신 건강한 사람일 것! 각자의 방식으로 제 삶을 하루하루 열심히 꾸려가는 사람이면 충분해요. 대신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이 있다!" 주·조연 따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지금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연을 만드는 데에 애를 쓰는 편이지요.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약수터 기창 할아버지와 편의점 알바 구본희가 오래 기억에 남아요. 6·25전쟁을 겪었던 세대와 '1억 목돈 만들기'가 삶의 목표인 세대가 공존하는 오늘의 현실을 조화롭게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별을 보았지' 챕터를 막 시작했을 즈음, 허리가 나갔어요. 평소 출간 시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이번 작품만큼은 욕심내서 꼭 여름에 출간했으면 했거든요. 마음이 서서히 조급해지고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어어, 불길하다. 허리 나가겠는데?' 하고 나서 허리가 멋대로 어디론가 나갔지요. 머릿속에서는 무원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은강이가 안간힘을 쓰고 본희가 미친 듯이 편의점 일을 하고 기창 할아버지가 지나치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응원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내 몸이 이 친구들의 속도를 못 따라가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허리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간 사람은 엄마였어요. 그때 보호자 대기실에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아, 끝까지 쓰라는 신의 계시구나!' 물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일만 번의 다이빙』을 대표하는 문장이나 장면은 무엇인가요?
"우리 모두 용기 있는 것이지. 산다는 건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야. 제각각 생김새가 다르듯이 우리에겐 각자한테 어울리는 용기가 있지."
이 순간에도 저는 용기 있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수많은 형태의 용기들이 모여서 세상은 더 괜찮아지는 것이라고 늘 믿고 있어요. '늘 푸른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즉석 떡볶이를 먹는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저는 십 대에도 이십 대에도, 오십 대가 되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려 즉석 떡볶이를 먹는 어른으로 남을 겁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특별한 이야기인 양 떠들어대는 그런 사람이 될 겁니다. 제가 쓴 이야기도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해서 '앗, 나도 이런 적 있는데', '이런 뻔한 이야기도 소설이 되나?'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그럴수록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독자들의 삶 역시 특별하다는 의미니까요. 결국은 우리 모두, 의미 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힘껏 버둥대고 있는 십 대들에게 응원 부탁드립니다.
"삶은 길고 선택은 다양하다."
"쓰러진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쓰러진 몸을 일으키는 건 오로지 나 스스로 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일만 번의 다이빙』에 나오는 문장들입니다. 어차피 하던 일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외면할 것도 아니라면 그냥 늘 했던 대로 하자! 바닥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힘차게 추락할수록 바닥을 딛고 솟구치는 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날지도 모릅니다.
*이송현 중앙대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아동·청소년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화 『아빠가 나타났다!』로 제5회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했고, 동시 「호주머니 속 알사탕」으로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장편 소설 『내 청춘, 시속 370km』로 제9회 사계절문학상을, 동화 『엄마 배터리』로 제13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늦은 밤,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만년필로 공책에 끄적이는 것이 인생 최고의 낙이다. 수영, 수구에 진심이며, 건강한 이야기꾼으로 사는 게 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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