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 번역가 "저를 행복하게 하는 '무엇'은 그림책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왕』 릴리아 번역가 인터뷰
눈물짓는 따뜻한 이야기 사이사이에도 웃음을 그려 넣었던 릴리아 작가가 어떻게 외양을 확장해 가며 그림책 세계와 더 많은 접점을 맺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 보자. (2023.07.26)
『아무것도 없는 왕』은 무(無)의 왕국을 지배하는 왕 미모 1세가 느닷없이 나타난 '무엇'을 만나는 내용의 그림책이다. 아무것도 없는 영토를 다스리고 아무것도 없는 부하들을 거느리며, 허상의 만족을 느끼던 미모 1세가 자신의 권력이 닿지 않는 '무엇'을 가두고 위협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이면서도 현실 세계를 닮아 있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이 그림책은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거나 엄숙하지 않다. 그림책 작가 릴리아가 이 책의 번역을 맡았다. 눈물짓는 따뜻한 이야기 사이사이에도 웃음을 그려 넣었던 릴리아 작가가 어떻게 외양을 확장해 가며 그림책 세계와 더 많은 접점을 맺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 보자.
많은 사랑을 받은 그림책 『파랑 오리』로 데뷔하신 뒤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시다가 첫 그림책 번역 작업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번역 작업을 하게 되셨나요? 또 첫 번역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번역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기도, 인연이기도 합니다. 첫 그림책 『파랑 오리』로 인연을 맺은 킨더랜드의 편집자 님과 구리디의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책의 번역을 제안받았어요. 구리디 그림책 중 가장 귀여운 책이 저에게 와서 '이건 꼭 해야 돼' 하고 외쳤죠. 첫 번역이라 부담감도 있었지만 도전이라 생각했고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왕』은 철학적인 내용과 유머러스한 문장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그림책이에요. 개구진 문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초기엔 원어가 가지고 있는 재밌는 요소들을 잘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어 하나부터 문법이나 표현에 초점을 맞춰서 정직하게 진행을 했는데, 끝내고 나니 번역에서 텍스트만 있고 영혼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곧 알게 되었어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왕의 목소리와 말투를 상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갑자기 그 차이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고, 연기하듯 소리 내어 한 페이지마다 원어로 한번, 한국어로 한번 읽으며 느낌또는 왕의 목소리를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미모 1세' 등 원어를 한국어로 옮기기 까다로운 지점이 계속해서 나오는 그림책이에요. 특히, 전 연령을 위한 장르이다 보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문장의 의미와 문장의 맛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림책의 서사를 옮기는 작업을 할 때에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멈추어 있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수 있는 씬이라 특별히 더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미모 1세가 느끼는 오묘한 감정을 살릴 수 있을지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궁금한 어린이 독자들에게 책을 추천하신다면 어떻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받았으면 하나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또 나에게 '무엇'은 어떤 것일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그림책이지요. 물질적 풍요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진짜 미소를 짓게 하는 '무엇'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 '무엇'이 생소하거나 혹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모 1세가 그런 것처럼, 마침내는 미소를 짓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는 '무엇'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의 '무엇'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작가로서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선과, 번역자로서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또 다를 것 같아요. 두 입장에서 그림책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는 감정에 충실할 것, 번역자로서는 감정을 잘 살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림책 작가로서의 릴리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릴리아'라고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작가님은 그림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또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독자분들은 저를 따뜻한 이야기, 안아주듯 포근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 많이 기억하고 계세요. 첫 그림책인 『파랑 오리』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무해하고 따스한 이야기만을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림책은 제 삶과 이야기가 맞닿는 지점이니까요. 삶에서 지나가는 순간순간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어떤 형태로든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남아요. 그중에는 일그러진 모양도 있을 테고, 단단한 모양과 뾰족한 모양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 나의 일부로 남은 것들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창작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어요,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림책 작업부터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최근에는 번역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영역으로 작업 반경을 넓혀가고 계세요. 작가님이 계속해서 활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저에게는 공기를 마시는 것과 비슷해요. 멈추거나 쉬면 숨이 막히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하지요. 제게 계속 호흡할 공기를 내어주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이 바로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릴리아 (번역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국으로 건너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며,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책 속 세상을 상상하고, 그리고, 쓸 때 가장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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