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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도시에서
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9화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돌리면 누군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2023.07.12)
격주 수요일, <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돌리면 누군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특히 등하교 시간 학교 앞에서는 자전거를 구르며 학교에 가는 장엄한 학생들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닌 아이들은 마치 자전거와 한 몸인 듯하다.
인구 9만 5천의 상주시에 등록된 자전거 수가 8만 5천 대라고 한다. 누가 어떤 식으로 자전거 숫자를 파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는 며칠 전에 이 도시에 합류한 내 자전거까지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모든 가정에 두 대 이상의 자전거가 있음은 물론이고, 거동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시 전체가 평평하게 너른 땅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주에는 시내버스가 없다.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까... 이상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든 간다.
지금보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정말 거의 모든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고 상주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다면 전교생 수만큼 자전거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 많은 자전거 중에 자기 자전거를 어떻게 찾지? 나의 질문에 상주 사람들은 그게 뭐 어려운 것이냐는 듯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학교마다 자전거 관리원이 있었지요. 주차료로 100원씩 받았어요 빵구도 300원 받고 때워주고요."
학년별로 다른 색깔로 자전거 후미에 학년·반·번호로 구성된 네 자릿수를 적어 넣었고, 학년마다 다른 주차 구역을 사용하는 등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는 것이 상주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증언이다. 두 손을 놓고도 물결처럼 자전거를 몰던 상주고 남학생이 교복 치마 가운데에 옷핀을 꽂고 바람처럼 자전거를 구르던 상주여고 여학생과 만나 결혼한 후 함께 아이가 탈 자전거를 고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흔히 전해졌다.
'자전거의 도시 상주'의 역사는 1923년 경북선 철도의 상주역 개통을 기념하여 열린 '조선 팔도 전국 자전거 대회'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상주의 자전거 역사는 올해로 100년째가 된다. 상주에 있는 '자전거 박물관'에 가면 자전거를 테마로 한 다채로운 전시들이 있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과거 시절 상주를 주름잡던 자전거 장인들에 대한 전시다. 옛 시절 귀신같은 솜씨로 자전거를 조립해 내던 장인들의 사진과 대를 이어 유지되던 자전거포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도시의 장구한 세월이 아득히 그려진다.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100년에 걸쳐 변함없이 자전거를 타고 고치고 사랑하고 살았다는 것은 어쩐지 근사한 일이 아닌가.
자전거 도시 상주의 주민답게 나도 자전거가 있다. 상주지청으로 발령 나면서 오래전에 집에서 쓰던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몸체는 연두색이고 앞에는 갈색 바구니가 달린 아줌마용 자전거다. 뒤에는 아기 탑승용 의자가 달려 있는데, 애가 어릴 때 쓰던 자전거라 그렇다. 이제는 아이를 태우고 다닐 일이 없어 떼버릴까 했으나, 짐 같은 걸 싣기에 편해서 그대로 두었다. 그랬더니 한층 더 아줌마용 자전거로 보였다. 내 자전거의 이름은 '연두'다. 올리브그린 색인 내 차 이름이 '올리브'인 것과 같은 단순한 작명법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지만, 이름이 있는 연두는 이제 그냥 탈것이 아니다. 이 도시에 함께 선 나의 동반자다.
연두를 처음 상주에 데리고 온 날 검찰청 마당을 가로질러 퇴근하는 길에 사무과장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데, 바퀴를 구르며 중심을 잡느라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가 지나치게 하이톤으로 올라갔다. 과장님은 잠시 나를 못 알아보고 멀뚱히 있더니 상황을 알아채고는 크게 웃었다.
"아니 청장님이시네요 하하하하하하."
왜 웃는지 모르겠지만 과장님의 웃음소리가 바퀴 아래로 퐁퐁퐁 터졌다. 저녁 햇살을 받으며 웃음소리가 멀어지도록 페달을 밟는 느낌이 청명했다. 너무 크게 웃은 것이 미안했던지 뒷날 과장님은 '과연 자전거 도시의 지청장다운 모습이었다'고 평가해 주었다.
야심 차게 자전거를 가지고 왔지만 사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 겁이 많고 자주 비틀거린다. 바퀴가 달린 것들은 언제나 컨트롤하기에 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바퀴는 내 생각보다 항상 빠르고 가속을 잘 받으며 마음대로 방향이 조정되지 않는다. 제어되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염려를 늘 품고 사는 인간에게 바퀴는 아무래도 버거운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좋아한다. 두 개의 바퀴가 방향을 맞춰 굴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차르르륵 가느다란 바퀴의 접촉면만이 땅에 닿은 채로 나아가지만, 나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최소한의 면적일지언정 언제나 땅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좋다. 인간이 원래 갈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지만 그 동력의 원천은 오직 인간이 페달을 구르는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 그 모든 순간의 균형 역시 인간의 몸체에 의해서 비로소 잡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비어 있는 바큇살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과 부서지는 햇살의 아름다움은 덤이다. 결국 바퀴란 힘들이지 않고 빨리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지만, 자전거는 그중에서 가장 날렵하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무해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자전거의 도시에 입성한 시민으로서 자부해 보는 것이다.
자전거 도시에서는 당연하게도 자전거와 관련된 사건과 범죄들이 일어난다. 이 도시의 교통사고 중 상당한 사건은 자동차 대 자전거 사건이고, 노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사고는 종종 사망 사고로 이어진다. 제각기 각자의 자전거를 가진 도시에서는 자전거를 훔쳐 가는 자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자전거 절도 사건도 심심찮게 접수된다. 범죄는 언제나 인간의 생활 양식에 깃들어 벌어지기 때문에 상주의 범죄는 어느 정도 상주의 자전거와 그것을 타는 사람들의 삶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범죄들을 가르는 일을 소임으로 하는 자는 무엇보다 자전거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탄다. 상주 바닥에서 처음부터 나고 자란 야생마 같은 자전거 무리 속으로 아직은 수줍은 풋내기 연두를 몰고 들어간다. 몇 번이고 비틀거리고 자주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 다니지만, 어젠가는 자전거 시티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겠지. 한껏 들뜬 포부로 바퀴를 구른다. 차르르륵 연두의 바퀴가 상주의 땅에 닿아 싱싱하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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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썼다.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