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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을 기다립니다] 이원 시인께 - 안미옥 시인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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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제게는 늘 너무 무거운 것이어서,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잠시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던 것 같아요. 거리를 두고 보니, 그동안 시를 얼마나 커다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는 것을요. (2023.07.03)


선생님 안녕하세요. 미옥이에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생겼는데, 누구에게 쓸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시를 쓰는 선생님,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 순간을 살고, 세계와 닿고자 하는 선생님 생각이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제 안에 가득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저의 아주 안쪽에 있는 마음인데, 평소에는 잘 모르고 지내다가 흔들리거나 무너져 내릴 때마다 저를 지탱해 주던 마음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무엇이든 너무 큰 것은 꺼내기가 쉽지 않네요. 주머니의 입구가 작은데 안에 든 것이 컸을 때, 주먹을 움켜쥐는 대신 손끝으로 아주 작은 조각 하나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에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선생님,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어떤 시적인 순간을 만나셨는지도 궁금하고, 선생님 댁에 있는 황인숙 시인께서 선물로 보내주셨다는 커다란 낙타(인형)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창밖을 보고 있는지 방 안을 보고 있는지, 선생님이 요즘도 눈알을 맑게 닦아주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소녀(피겨)는 여전히 앞을 보고 질주하고 있는지도요. 절반이 정확하게 나뉜 선이 여전히 선명하게 있는지 궁금해요. 그것에서 시를 보고 계신 선생님의 시선도요.

저는 요즘 아주 분주한 일상을 살고 있어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금결처럼 흘러가는데, 그 위에서 저는 우왕좌왕해요. 세상을 처음 겪는 아이와 더불어, 저도 처음 해보는 일들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때도 많고, 내게 이런 에너지가 있었나 싶은 순간도 많고요. 그렇게 흘러가며 지내다가 한동안 시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기도 했어요. 그것이 두려웠는데 또 솔직히 편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시가 제게는 늘 너무 무거운 것이어서,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잠시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던 것 같아요. 거리를 두고 보니, 그동안 시를 얼마나 커다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는 것을요. 시를 많이 쓰지 못했던 시간 동안 그래서 마음이 평온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일상에서의 고민과는 별개로 더 고민할 것을 하지 않고 있어서요.

그러다 제가 시를 안 쓰고 있을 때, 선생님이 농담처럼 하시던 말도 떠올랐어요.

"얼굴이 좋아졌다, 요즘 시 안 쓰는구나?"

그러면 저는 흠칫 놀라서 어떻게 아셨지, 하고 들킨 마음을 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시를 써야겠다 다짐하곤 하였지요. 열심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 그 시를 쓰며 골몰하는 얼굴로 다시 뵈어야지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백지를 마주하는 곳으로 가곤 했습니다.



지금의 내 얼굴을 보면 선생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 싶다가, 이러다가 정말 시와 영영 멀어져 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나던 순간이 있었어요. 평온한 얼굴은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 덮어두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 자신과, 세계와, 시와 마주하고 대면하는 시간을 다시 찾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러다 『시를 위한 사전』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금 읽었습니다.

누군가 어느 때가 시적인 순간이야, 물으면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신다고 하셨지요.

"이유 없이 용감해지는 순간. 문득, 왈칵, 풍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풍경을 다 두고 날아올라도, 혼자라고 느껴도 반짝이는 순간" 그리고 "부정과 긍정, 어둠과 빛의 구분이 없어지는 '맨 처음'의 자리, '저절로'의 움직임이 발생하는 곳"에 시가 있다고요. 시에 대한 선생님의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다시 이유 없이 용감해지고, 왈칵 풍경을 벗어나는 순간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의 문장에 아주 진한 밑줄을 그으면서요.

어느 순간에도 시는 삶의 편이라는 문장에,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움직임이라는 문장을 품으며, 선생님이 이야기한 바늘 한 개의 환함을, 삶을 뚫고 솟아오를 시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일상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오롯이 시의 환함을 마주하고 싶어졌어요. 새로운 생활이 새로운 시를 만나게 해줄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저도 모르게 생겨났습니다. 그러니 다시 알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선생님은 시를 쓰고 싶게 하는 사람, 시를 만나고 싶게 하는 사람, 내가 쓸 수 있는 좋은 시를 제대로 만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것은 선생님의 시가 가진 힘이기도 하지요. 선생님의 삶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선생님의 시, 세계와 최소로 닿아 최대치를 들어 올리는 선생님의 시요.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주 질문했어요.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나요? 

계속 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 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서랍을 뒤적이는 심정으로 기억을 되짚어 보았어요. 최초의 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시'를 만난 순간을 말한다고 한다면, 선생님께 시를 배우면서였다고 이야기했어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시를 아주 가까운 이를 만나듯 만나게 된 것은요. 제 속을 꿰뚫는 선생님의 언어들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편지 장인이기도 하잖아요. 편지에 적힌 문장 자체가 시이기도 하고요. '이원체'에 담긴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곰곰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제 시가 그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요즘엔 일전에 카드에 써 주셨던 문장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 책상 오른쪽 벽에 붙어 있답니다.



선생님은 『최소의 발견』에서 '기계-무당'의 시를 써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기계이면서 무당인. 또는 무당도 기계도 아닌."

그 '기계-무당'이라는 말이 선생님과 너무 잘 어울려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가장 멀리 있으면서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것의 세계라서요. 현실이 진창에 자꾸만 빠지려고 할 때, 정신은 멀리 높이 던지겠다는 선생님의 다짐이 선생님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저는 또 자주 놀랍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선생님의 시는 '기계-무당'의 지점을 가지고 있어서 감각보다 빠르고 이성보다 정확하지요. 먼저 와서 닿고 만나게 되고요. 그리고 시가 삶의 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낯선 두 세계가 뒤섞이지 않고 나란히 놓여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요. 저는 그래서 늘 선생님의 새로운 시를 기다리게 됩니다. 오토바이에서 애플스토어까지, 모자에서 천사까지, 사람에서 사랑까지, 죽음에서 삶까지. 넘어가고 흘러가고 주고받고 솟아오르고 관통하고 열리고 열리는 선생님의 세계를 응원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시를 써주세요. 선생님을 통해 시와 삶이 만나는 찰나를 엿볼 수 있게 해주세요.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서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를 저는 요즘도 자주 읽어요.


움켜쥘 수는 없단다

물러설 수는 없단다


우아하게 다리를 쭉 뻗으며

더더 가늘어지란 말이다

위태로워지란 말이다

더더 내달리란 말이다

더더 더럽혀지란 말이다

확신에 닿지 않을 때까지



힘껏 내달리던 시가 확신의 방향이 아니라 확신에 닿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아요. 무언가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생겨요. 『사랑은 탄생하라』를 읽으며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사랑과 희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도무지 누구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때 「모두의 밖」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제 안에 생기기도 해요. 시집을 읽다 보면 새롭게 탄생해야만 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시는 참 신기해요. 그래서 게속 쓰고 읽게 되나 봐요.

선생님,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조금밖에 못한 것 같은데, 또 기회가 있겠지요. 선생님의 시집이 마지막으로 출간된 지 벌써 5년이 흘렀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선생님의 새 시집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환하고 부드러운 날들 보내다가 또 뵈어요. 


사랑과 존경을 담아

안미옥 드림



*안미옥


시인. 시집 『온』, 『힌트 없음』,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등을 썼다. 


*이원


1992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 등을 썼다.




시를 위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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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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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미옥

시인. 시집 『온』, 『힌트 없음』,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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