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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 : <팬텀싱어 4> 진호
뫼비우스의 띠를 이탈하는 아이돌
'아이돌'과 '실력'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저울질해 본다. 복잡하게 고민할 것도 없이, 15년간 한 길만 우직하게 파온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져도 좋을 빛나는 배지가 그의 가슴에 반짝인다. (2023.06.07)
아이돌과 실력은 꽤 긴 시간 어색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그러냐'고 한다면, '촌스럽게도 의외로 아직 그렇다'고 답하겠다.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했다. 적어도 아이돌을 이야기하며 음악적 진정성부터 재단하려 하는 곰방대 든 이들은 확실히 줄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빛의 전진은 안타깝게도 케이팝이라는 안온한 둥지 안에만 적용되는 중력에 가깝다. 최근 수년간 음악과 관련해 쏟아진 서바이벌 콘텐츠 속 아이돌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언프리티 랩스타 3>의 전소연, <고등래퍼 1>의 마크,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이채연, <내일은 미스트롯 2>의 허찬미. 케이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아이돌은 여전히 다양한 고정 관념과 가치 평가 아래 서야 했다.
화제성을 높이기 위한 섭외, 높은 주목도, 그로 인해 자연스레 생기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시선, 딱히 대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직업군이나 자신이 속한 그룹 이름에 최소한 먹칠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평생 매진해 온 바닥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위해 시도한 도전에서조차 아이돌이 처음 만나 물리쳐야 하는 적은 '아이돌'이라는 '개념'이었다. 센스 있고 맷집 강한 이들이 요령 좋게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적지 않은 이들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처럼 '아이돌'이라는 단어 주위를 끝없이 맴돌았다. 마치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JTBC <팬텀싱어>는 범람하는 음악 서바이벌 사이에서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만든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올해 4시즌을 방영하며 장수 프로그램으로서의 밑바탕을 다진 데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정말 '노래 잘하는 사람'을 모은다는 기본에 충실한 진행이 있었다. 이는 한 사람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게 아닌, 출연자들이 직접 크로스오버 사중창단을 꾸려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특징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일반인 참여자에서 성악, 국악, 뮤지컬 등 장르를 막론한 꾼들이 모여 성대 하나를 무기로 대결하는 동시에 동료를 찾았다. 2016년 방영된 시즌1부터 심사위원으로 활약해 온 뮤지컬 음악 감독 김문정이 심사 도중 던진 "우리 프로그램은 좋은 곡을 소개해 드리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좋은 곡을 잘 불러주는 싱어를 소개받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그대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노래 실력 하나로 심사위원과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 건 물론 동료에게도 선택받아야 하는 복잡다단한 잎맥 속, 얕은꾀가 통하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가벼울 수 없는 그 증명과 생존의 무게 아래 한 아이돌이 섰다. 그룹 펜타곤의 메인 보컬, 진호다.
진호가 속한 '크레즐'의 최종 순위는 3위였다. 어찌 되었든 우승이 최종 목표일 수밖에 없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을 생각하면 아쉬운 숫자지만, 이는 진호에게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숫자였다. 진호는 지금까지 네 번의 시즌을 진행한 <팬텀싱어> 사상 첫 현직 아이돌 출신 예선 통과자이자 첫 결승 진출자였다. 노래를 매개로 한 조진호의 도전은 15년 전인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16살의 나이 SM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입사해 2010년, 발라드 프로젝트 그룹 S.M. THE BALLAD의 첫 유닛 '제규종지' 멤버로 대중 앞에 처음 섰다. 데뷔 전 공개된 멤버로는 드물게 회사를 옮겨 2016년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 그룹 펜타곤의 메인 보컬로 정식 데뷔하기 전까지 한동안 실용 음악학원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지금도 소속사 후배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그는 2022년, 역시 아이돌 최초로 온라인 강의 서비스 '클래스 101'에서 보컬 레슨 강좌를 열기도 했다.
본업도 꾸준했다. 7년 활동 기간 동안 정규 3장, 미니 앨범만 12장을 낸 펜타곤 활동은 물론 <올슉업>, <아이언 마스크>, <여신님이 보고 계셔>, <태양의 노래> 같은 뮤지컬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으며 경력을 차분히 쌓았다. 부지런하게 보낸 시간이 다진 실력은 서바이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진호는 보컬뿐만이 아닌 노련한 무대 연기와 선곡, 프로듀싱 능력까지 인정받으며 <팬텀싱어 4>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과 '실력'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저울질해 본다. 복잡하게 고민할 것도 없이, 15년간 한 길만 우직하게 파온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져도 좋을 빛나는 배지가 그의 가슴에 반짝인다. 그의 노래도 아이돌의 실력도 덩달아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당당하게 얻은 다음 스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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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