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이유
이즘 특집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2023.05.26)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 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The Fifty>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The Fifty>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0~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 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검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검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검)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 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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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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