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가수, 큰 인물 故 현미
이즘 특집
경직을 깨는 즐거운 수다, 소담스러움과 소탈한 성격 등 특유의 '열린' 퍼스낼리티는 예능적 면모마저 띠면서 대중과의 거리는 한층 좁혀졌다. 주변엔 늘 친구가 넘쳤고 챙기는 후배들도 많았다. 따스한 인간미와 다정(多情)은 현미의 으뜸 정체성이었다. (2023.04.21)
현미는 저 옛날 무대에 등장하던 바로 그 순간에 존재적으로 역사성을 획득했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 그 가치와 위상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밤안개'로 한국 가요계에 글로리를 제공한 그 1962년에 이미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새 시대를 알린 가수'로 찬란한 스타트를 끊었다. 트로트만이 있던 그 시대에 한국 가요계는 현미를 비롯한 미8군 출신의 가수들에 의해 또 하나의 장르가 들어섰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스탠더드 팝으로 통한, 그러나 아직도 용어가 정리되지 않은, 미8군을 통해 흘러나온 미국 팝 음악이었다.(재즈, 컨트리, 블루스 그리고 댄스를 망라하고 있었으니 '팝'이란 용어가 적당할 것이다.) 이 음악은 기성 질서에의 도발을 야기하면서도 점령의 개념이 아닌 친숙함으로 급속 확장성을 과시하면서 가요계의 무게를 늘렸다. 그러한 중량 증가는 소용돌이가 필연적이었음에도 음악과 방송 종사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 변화에 쾌속 적응해나갔다.
생경한 스타일을 기꺼이 받아들여 기존 것과 조화를, 동행을 꾀한 것이다. 그 결과 대중들은 트로트 못지않게 스탠더드 팝에 열렬히 호응했다. 1960년대 말 10대 가수 가요제를 보면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 트로트 스타들과 함께 현미 한명숙 최희준 등 스탠더드 팝의 기수들이 섰다. 이 가운데 미8군에서 1957년 17살의 나이에 댄서로 시작해 이후 3인조 걸그룹 '현시스터즈'로 미8군 무대를 평정한 현미는 이후 솔로로 변신, 경천위지(經天緯地)의 모멘트를 준비한다.
그것은 스탠더드 팝의 정착이란 과업의 수행이었다. '현미 타임'은 상기한 대로 팝송 'It's a lonesome old town'을 개작한 '밤안개'란 노래로 비롯되었다. 현미의 재능을 갈파한 천재 작곡가 이봉조의 확신에 찬 산물이었다. 그는 현미의 우렁차고도 허스키한 색조, 격조를 놓치지 않은 목소리와 가창에 반했다. 미성과 비음이 트로트의 전형이었다면 미국 음악 시대에는 소리색이 달라야 했다. 마침 현미와 스탠더드 팝의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한명숙과 '키다리 미스터김'의 이금희도 정반대의 탁성(濁聲), 이른바 허스키였다.
현미의 노래는 깊었다. 그 황홀한 늪에 빠져 다수 음악 인구는 즉각 스탠더드 팝의 대표로 그를 승인했다. 당대 극장 쇼 MC였던 최성일은 "현미가 '밤안개'를 부르면 난 사회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마치 내가 객석 한가운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빙 도는 듯 그 노래에 홀려 다음 곡 소개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며 '밤안개'를 직무유기를 부르는 노래라고 말했다. 생소했던 미국음악, 그 스탠더드 팝의 위대한 메신저랄까. 현미는 그 음악의 분위기와 진행방식, 언어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한 사람이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 '무작정 좋았어요', '보고 싶은 얼굴' 등 현미의 대표작들은 그냥 미국 음악이 아니라 우리 땅에 들어와 우리 것이 되어버린 미국 음악의 로컬화를 증거한다. 심지어 '무작정 좋았어요'의 경우는 트로트 감(感)이 돌 정도였다. 현미는 나중 부부가 된 이봉조와 함께 이처럼 생경한 미국 음악에 한국적인 '내면'을 구현하는 위대한 변형 작업을 선두하면서 자연스레 트로트가 독점한 시장지분을 포섭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현미는 따라서 스탠더드 팝의 전달자를 넘어 '변형자' 혹은 '완성자'로 더 선명성을 가진다.
히트 가능의 틀로 확립된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는 특히 1960년대에 두드러진 음악과 영화의 콜라보레이션에서 광채를 더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싶은 얼굴' '나는 속았다' (영화 <나는 속았다>), '태양은 외로워'(<아빠 안녕>), '왜 그런지 몰라도' '총각김치'(<총각김치>), '애인' '목마른 나무', '말없이 바치련다'(모두 동명의 영화) 등 숱한 영화의 주제가들이 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현미의 공연, 영화, 레코드를 통해 미국 음악은 자연스럽고 날렵한 움직임 속에서 온전한 궤적을 써내려갔다.
또한, 예의 차분한 트로트 인물들과 달리 경직을 깨는 즐거운 수다, 소담스러움과 소탈한 성격 등 특유의 '열린' 퍼스낼리티는 예능적 면모마저 띠면서 대중과의 거리는 한층 좁혀졌다. 주변엔 늘 친구가 넘쳤고 챙기는 후배들도 많았다. 따스한 인간미와 다정(多情)은 현미의 으뜸 정체성이었다. 이런 인성 측면도 그의 누구보다 긴 이력을 만들어내는 걸 도왔다. 하지만, 그러한 롱런은 팔순인 2017년 신곡 '내 걱정은 하지 마'를 발표한 것이 시사하듯 가수로서의 투철한 소명 의식을 전제하지 않곤 설명할 수 없다. 인간관계의 탄력과 음악 예술에의 집중은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 1월 아리랑TV가 현미의 66년 노래 인생을 조망한 프로그램 <더 K레전드: 가수 현미>편을 방송했을 때의 타이틀이 '그는 지금도 노래한다(She's still singing)'였다. 방영 후 도움말로 참여한 내게 전화를 걸어 "미8군 시절을 잘 소개해줘 고맙다. 꼭 식사 자리를 갖자!"고 감사 말씀을 전했다. 봄날에 찾아뵙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천추의 한이다. 스탠더드 팝 스타의 마지막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위인의 영원한 안식과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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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