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 "북한 이주민이기 전에 이주민이에요"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김이삭 저자 인터뷰
북한 이주민 관련 책 중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운 책은 없었잖아요. 북한 이주민인 가족들이 더 쉽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05.22)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탈북민', '탈북자', '북한 이탈 주민', '이주민'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한으로 이주해 온 북한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북에서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대기근과 체제 붕괴 위기를 겪고 난후 '남쪽으로'의 이주라는 새로운 물결이 생겨났다. 현재 남한 내 북한 이주민의 숫자는 3.3만 명에 이른다. 북한 이주민이 북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탈북 과정 등 과거는 끊임없이 소환된다. 그러나 한국으로 이주해 온 북한 이주민의 현재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핵, 간첩, 갈등, 종전과 같은 무거운 이슈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직장을 다니는 북한 이주민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왜 듣기가 어려울까? 장르 소설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이삭은 자신의 첫 에세이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에서 북한 이주민과 맞닿은 자신의 삶을 담백하게 들려준다.
서울 토박이인 남쪽 여자와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의 북한 남자라니 흔지 않은 조합입니다. 이 책은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여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데요. 사생활이 폭로될 수 있는데도 식구들이 괜찮다면서 열심히 써보라고 응원해 주었다지요. 출간 후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사생활이 폭로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가족들이 저를 응원해준 건 제가 함부로 사생활을 폭로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에세이를 쓸 때 북한 이주민과 관련된 내용은 배우자와 논의를 하면서 썼습니다. 될 수 있으면 제 경험으로만 에피소드를 구성했고요. 북한 이주민에 관해 보고 들은 게 있다고 할 지라도 멋대로 타인의 이야기를 에세이에 넣지는 않았습니다. 북한 이주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쓰자,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거든요. 다행히 가족들과 주변 북한 이주민들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쓴 책이면서도 가족들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자 증정본도 공평하게 나눴습니다. 제가 다섯 권, 배우자가 다섯 권 그리고 시댁이 열 권이에요.
남녀북남 연애 스토리는 드라마처럼 달콤하지 않습니다. 매운맛과 현실 자각 타임이 수시로 찾아오고요. 직진형 여주와 내향적 남주와의 조화가 좋아 저절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연애사에 과몰입한 일부 독자 중에는 왜 결혼식을 안 올렸는지 불만이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군요. 제가 쓴 게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독자분들의 반응을 배려했겠지만, 아쉽게도 제 삶을 기술한 에세이라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네요. 저는 사실 결혼식이라는 예식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죽은 이들간의 결혼식인 명혼이라면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썼던 소설에서도 명혼이 몇 번 나왔어요. 그리고 배우자도 결혼식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북 MZ세대인 두 분의 취업 분투기가 눈물겹습니다. '저자가 여성이라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민은 북한 이주민이라서 조금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하셨는데요. 차별을 이야기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내셨더라고요. 이렇게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북한 이주민 당사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쓰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차별적인 현실이 존재하는데 밝은 면만 이야기한다면 그건 거짓에 가깝겠죠. 하지만 너무 무겁고 비판적인 이야기만 넣을 수도 없었어요. 일단 그 부분은 개인의 연애, 결혼사에 관한 에세이에서 쉽게 다뤄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는 이 책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일종의 마중물로요. 북한 이주민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되기를,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북한 이주민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고 적혀 있는데요. 첫 장편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드라마화 판권까지 팔리셨다지요. 혹시 소설가로서의 경험이 이번 에세이를 쓸 때 영향을 주었는지요?
시동생의 경우 에세이를 읽고 좀 놀랐다고 해요. 북한 이주민에 관련된 책이기도 하고 형수(저)가 소설가라서 조미료를 많이 첨가할 줄 알았는데 담백하게 팩트 위주로 적었다고요. 사실 소설가로서의 경험이 에세이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역으로 에세이에 담긴 제 삶이 제가 소설을 쓰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북잘알못'에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북한 이주민으로 기억되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경계인이 되어 살고 계신데요. 현재 한국 내 북한 관련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북한 관련 콘텐츠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북한 관련 콘텐츠와 북한 이주민 관련 콘텐츠를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북한 이주민에서 북한에 방점을 찍지 않고 이주민에 방점을 찍는달까요. 그래서 북한 이주민에 관련된 국내 콘텐츠와 담론이 ‘북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습니다.
마지막장에 시부모님, 시동생, 시언니와 미니 인터뷰가 인상적입니다. 이주민 1세대와 1.5세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니 인터뷰를 기획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본문에 밝히기도 했는데요. 에세이에 담긴 목소리가 결국에는 제 목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에세이 후반부는 가족들에 관련된 이야기이니 가족들의 목소리를 담는 게 당연하다고도 생각했고요. 또, 구성원 특성상 1세대도 있고 1.5세대도 있고,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거든요. 북한 이주민이라고 해서 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에요. 같은 성별이나 세대여도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고요. 인터뷰를 읽는 독자도 북한 이주민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이주민 관련 책 중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운 책은 없었잖아요. 북한 이주민인 가족들이 더 쉽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안 서열 1위인 딸아이를 양육하면서 이주민 2세대로 관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딸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도 하셨고요. 애플TV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도 경계인으로서 시선을 견지할 수 있었기에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경계인으로서의 자아를 기반으로 관련 경험을 살려 이야기를 계속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따로 구상하시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천착하는 소재 중 하나가 괴력난신인데요.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자불어괴력난신' 구절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공자가 논하지 않았다는 '괴력난신'을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라고 해석하거든요. 창작을 하기 전부터 천착했던 분야라 소설가가 된 뒤로는 주구장창 관련 글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인 사건이나 귀신과 요괴가 난무하는 글은 쓸 수 있어도, 북한 이주민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쓸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저와 너무 가까워서,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써주는 사람이 너무 없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 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이주민에 관련된 장편 씨앗을 두 개 열심히 키우고 있는 데요. 하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소설입니다. 전자는 십 년 전쯤 북한 이주민 사이에서 유행했던 재망명에 관한 이야기이고요. 후자는 조선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북한으로, 북한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또 다른 외국으로 이주한 한 가족의 삶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픽션이지만 저와 배우자의 가족사에서 모티브를 많이 가져오려고요. 제 외할머니가 어렸을 때 만주로 넘어가서 사시다가 해방 후 충청도로 내려오셨거든요. 배우자의 외조부모도 만주 땅에서 결혼한 뒤 해방 후 함경도로 내려가 정착하셨고요. 알고보니 세 분이 만주 내에서도 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에서 사셨더라고요. 어쩌면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잖아요.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 글을 써보려고요.
중화권 콘텐츠 덕후에서 장르 소설가로 '괴력난신의 붐은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작가님 다운 행보네요. 자주 접하지 않으면 편견이 쌓이는 법이죠. 편견에서 해방될 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괴력난신과 북한 이주민이 주체가 되는 서사라니 정말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명에게 이 책을 영업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영업하고 싶은가요?
나중에 제 딸에게 영업하고 싶습니다. 북한 이주민 2세대인 딸도 언젠가는 아빠의 고향을, 가족들의 과거를 알고 싶어할 터인데 다짜고짜 탈북 수기나 북한 이탈 주민 관련 논문, 신문 사회면을 들이밀 수는 없잖아요. 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읽더라도 딸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빠에 대해서, 북한 이주민에 대해서 곱씹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제1회 황금가지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서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로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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