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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시골지청 안단테

시골검사 J의 무탈한 나날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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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상주? 지청장? 한 번도 염두에 둬본 적 없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해서 상주는 나에게 왔다. 실로 대단한 서프라이즈였다. (2023.03.22)


격주 수요일, <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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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구 9만 5천의 '중흥하는 역사 도시' 상주를 감히 시골이라 칭한 것에 대해 상주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양해를 구한다. 결코 상주를 얕잡아 보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소담하고 사랑스러운 도시를 달리 표현할 말을 알지 못하는 작자의 성급한 은유법 같은 것이라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나는 이 소담한 도시에서 검사로 일하는 자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수많은 일들 중에 범죄라는 것을 가려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하는 일을 한다.

인사 발령은 급박하게 났다. 실은 나 혼자만 급박한 것이고 조직으로서는 다 계획에 있는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인사 발표가 예정된 날 아침, 내가 인사 대상인 줄을 까맣게 몰랐으므로 인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동료에게 굿럭! 인사를 하고 외부 회의에 들어가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상하다 싶을 만큼 많은 메시지가 휴대폰에 들어왔다. 앞뒤 없이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들... 내가 모르는 사이 뭔가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예요? 설마 나, 인사 났어요?"

"몰랐어요? 상주지청장!"

갑자기? 상주? 지청장? 한 번도 염두에 둬본 적 없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해서 상주는 나에게 왔다. 실로 대단한 서프라이즈였다.

"상주가 어디 있는 곳이죠? 충청돈가?" 

"경상북도 북부!" 

"아~ 참외 많이 나는 곳?"

"아니 그건 성주고요." 

"그럼 상주는 뭐예요?"

"상주는 곶감!"

"아~~ 곶감 많이 먹겠네요."

인사 발표가 나고 짐을 싸는 일주일간, 이런 식의 대화를 숱하게 나눴다. 사람들은 나의 서프라이즈 인사 발령에 열광했지만(원래 남의 인사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정작 '상주'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듯했다. 나로서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지만, '나의 상주'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 조금 속상했다. 검사를 직업으로 시작한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임지들을 거쳐 왔고, 나는 언제나 단숨에 새로운 임지에 빠져버리는 '금사빠'이지만 어쩐지 상주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특별한 임지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척추를 타고 강하게 올라왔다.

생각해보면 상주와는 아예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 상주로 농활을 와본 적이 있다. 어릴 때 산골에서 살다가 분지형 광역시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상주의 너른 들판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트럭을 타고 달리고 달려도 너른 들판이었고, 그곳이 모두 다 상주라고 했다. 포도 솎기를 돕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귀한 포도 농사를 망치던 중에(늦었지만 농장주님께 사죄드립니다. 정말 고의는 아니었어요) 새참으로 얻어 마신 막걸리 한 잔에 녹다운되어 밭고랑에 주저앉았다.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급작스럽고 격렬한 만취였다.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고 생떼를 부리던 나는 동기들에 의해 마을 회관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마을 어머니들이 끓여주신 올갱이국 한 그릇을 마신 후 거짓말처럼 술이 확 깨서는 벌떡 일어나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다 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인생 최초의 만취와 극적 해장이라는 경험을 초고속으로 알려준 곳! 그곳이 나의 상주였다.

부임 전날 상주에 도착했다. 도시의 첫인상은 평평하고 단정했다. 마침 대보름이었고, 코로나 규제도 풀리는 분위기라 지자체는 3년 만에 강 둔치에서 대보름 시민 한마당을 열고 있었다. 아이들이 쥐불 대신 야광봉을 돌리고, 부녀회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에게 뜨끈한 떡국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쪽 부스에서는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띠에 엮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저마다 소원을 적는 시민들 사이에 슬쩍 끼어 '상주의 무사태평'이라고 적었다. 나는 원래 소원 같은 것을 비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일부터 이 지역의 범죄가 모두 내 소관이 된다고 생각하니 문득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 내가 빌어야 할 소원은 오직 하나, 아무런 사고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 이 지방의 모두가 무사하고 무탈한 것! 나는 소원지를 잘 접어 새끼줄에 묶었다. 이전에는 만나본 적 없는 낯모르는 사람들의 안녕을 간절히 비는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문득 뻐근했다. 과연 대보름이라 하기에 손색없이 큰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상주시의 평평하고 단정한 도심을 감고 흐르는 강 북천의 옆구리 지점에 대구지검 상주지청이 있다. 어쩐지 근엄한 큰아버지가 연상되는 색감의 법원 건물 옆에, 새파란 스카프를 두르고 발랄하게 멋을 낸 셋째이모가 연상되는 검찰청 건물, 그곳이 나의 일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상주지청장 2개월 차, 매일 아침 북천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출근을 한다. 지하철도 버스도 없는 곳에서 안단테, 걸어 다니는 속도로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걸어가는 동안에는 주로 오리를 본다. 청둥오리들이다. 오리를 보며 걷는 이유는 달리 볼만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리가 멋진 생물이기 때문이다. 오리들은 얼어 있다가 이제 막 몸을 푼 차가운 강물 위를 단호히 가르며 지나다닌다. 지나간 자리에는 길게 물길이 나는데, 가볍게 떠다니는 존재가 내는 물길에 나는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물 위로 엉덩이 깃들만 봉긋 솟아 올라와 있다면 그건 오리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고 노란 발목이 바둥대며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그래 너도 나도 밥 먹고 살기는 힘든 일이구나' 싶다. 오리라고 해도 잠수를 오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귀여운 엉덩이를 찍어 보려고 휴대폰을 들이대는 사이 퍼뜩 고개를 들고 물 위로 올라온다. 언제 한갓 밥벌이에 바둥거렸냐는 듯 도도히 고개를 쳐들고 다시 물길을 가른다.

그렇게 15분을 걸어 도착한 일터에서 내가 하는 일도 청둥오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개를 처박고 기록을 읽고 그중에 진실 비슷한 것이 있어 요깃거리라도 되려는가 바둥거린다. 오래 숨을 참을 수는 없어서 자주 자세를 고쳐 앉아 딴청을 피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하게 물길이나 내며 지나가고 싶은데, 그건 또 잘 되지 않아서 빈문서를 열고 글을 쓴다. 내가 온 마음으로 무탈하기를 바라게 된 소담스런 도시에 대하여, 안단테의 템포로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시골 지청에서의 시간에 대하여...

그런 이야기들을 여기에 실어보려고 하는데, 다정한 당신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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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명원(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 검사(지청장))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썼다.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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