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다섯 남매의 분투기 - 그림책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소연정 작가 인터뷰
제 책 속 다섯 남매는 오랫동안 답답한 책장 속에 머물면서 맘껏 놀지 못했어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많이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또,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저마다 다섯 남매 중 한 명에게 마음을 주어도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2023.02.27)
엄마 없이 집을 보게 된 날, 선반 위에 놓인 상자를 발견한 다섯 남매는 온통 이 생각뿐이다.
'저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소연정 작가는 상자 하나에서 시작된 호기심, 호기심에서 이어진 상상력, 상상력에서 비롯된 간절함, 그리고 행복한 긴장감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천진하게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주목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기도, 어린이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조금만, 조금만 더』.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모든 어린이에게 보내는 지지와 응원, 유쾌한 상상력이 이 책에 가득하다.
『조금만, 조금만 더』에는 요즘 보기 드문 '다섯 남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네 남매 가운데 막내예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요. 외동인 아이, 형제가 단 둘인 아이가 도시에서 전학을 왔는데, 그게 그렇게 세련되게 느껴지는 거예요. 형제가 넷이라는 게 그땐 왜 그리 촌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던지... 어린 마음에 부모의 온 사랑을 받는 외동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도 형제가 둘이면 좋겠다, 아니 셋만 되어도 좋겠다, 하고 바랐지요. 그런데 막상 책에는 다섯 남매를 등장시켰네요. 가장 어리고 작은 아이의 역할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작은 아이가 돋보이려면 형제가 다섯은 되어야겠더라고요. 더미를 처음 만든 게 14년 전인데요. 돌이켜보니 내심 제 이야기가 아닌 척하고 싶어, 다섯 남매로 설정한 것 같기도 해요. 네 남매 사이에서 자랐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나 봐요.
작가님의 실제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니, 그렇다면 작업하시면서 다섯 남매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갔던 아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작가님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은 아이가 있다면요?
"다섯 아이가 다 좋아요!"가 정답이겠지만, 제가 막내인 동시에 네 남매 중 넷째여서일까요. 사실 전 넷째한테 마음이 가요. 첫째는 예쁘고 믿음직하고, 둘째는 잘 웃고 성격이 좋아요. 셋째는 똘똘하죠. 짐짓 의젓한 척도 하고요. 막내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그에 비하면 넷째는 조금 덜 귀엽게 그려진 것 같기도 해요. 저처럼 안경도 꼈고요. 저와 닮아서인지 작업을 하면서 계속 마음이 가더라고요. 심지어 이 아이가 자라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작은 아씨들』의 둘째처럼요. 제 책 속 다섯 남매는 오랫동안 답답한 책장 속에 머물면서 맘껏 놀지 못했어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많이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또,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저마다 다섯 남매 중 한 명에게 마음을 주어도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최소화한 배경, 과감한 먹선, 제한된 포인트 컬러 덕분에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섯 남매의 표정과 동작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재료들을 쓰셨나요? 그 재료들을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전체적인 라인은 모두 목탄으로 작업했고 손가락, 발가락, 눈처럼 디테일을 살려야 하는 부분들만 콩테 펜으로 정리했어요. 포인트 색은 파스텔 작업입니다. 아이들의 상상과 놀이, 일상의 재미로 가득 찬 배부른 하루를 보여 주고 싶어서 만화처럼 많이 비우고 가려고 했어요. 그렇다 보니 배경과 컬러를 최소화하고 흰 도화지 위에서 선의 움직임이 돋보일 수 있는 재료와 기법을 자연스럽게 택하게 됐습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는데요. 압축된 스틱 목탄을 사용했는데도 잘 번져서 휴지로 가려 가면서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또, 14년 동안 그림을 보관하다 보니 아이들이 점점 연해지더라고요. 목탄 가루가 떨어져서 그림 주변이 지저분해지기도 했고요. 디자이너 분이 지우느라 고생하셨을 거예요.
다섯 남매가 상자를 꺼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자들의 기대감과 초조함도 더불어 커지게 됩니다. '과연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하고 말이죠. 상자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더미 제목은 사실 '과자를 꺼내 줘!'였어요. 어릴 땐 자기 전에 엄마가 슈퍼마켓을 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기도 했을 만큼 과자를 좋아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야기를 구상할 때부터 상자 속에 든 것은 무조건 과자였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더미 상태로 묻어 두었던 이야기라 아무래도 다시 시작하려니 생각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과자여야 할까, 아이들이 바라는 걸 다 넣은 선물 상자여야 할까' 고민도 했고요. 상자 디자인도 고민이었죠. 다섯 남매가 궁금해하고, 꺼내 보고 싶고, 열어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그림을 간결하게 그리다 보니, 상자도 단순해져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콜라주 기법도 사용해 보고, 이런저런 패턴들도 그려 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지요. 어려운 고비마다 모든요일그림책 편집팀과 회의하면서 주고받은 의견들, 새로운 제안과 아이디어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에서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표지가 맘에 들어요. 포인트 컬러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표지가 약해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힘을 합쳐 상자를 꺼내려고 시도하고, 마침내 꺼낸 장면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이 장면은 저희 네 남매가 실제로 벌인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다섯 남매는 결국 상자를 꺼내는 데 성공했지만 저희는 실패했죠. 넷이서 차곡차곡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엄마에게 들켰거든요. 웃음보가 터진 엄마가 상자를 내려 주셨으니 따지고 보면 실패는 아니네요. 사실 처음에 제가 의도했던 것은 상자가 떨어지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책을 세로로 돌려 보게 하는 것이었는데요. 이 장면들이 실제로 책에서는 어떻게 편집이 되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조금만, 조금만 더』를 보면서 이것만큼은 느꼈으면, 이것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제 첫 번째 그림책 『여행의 시간』이 100세 그림책이다 보니 이번에는 장면마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뛰어노는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린이 독자들도 그 재미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놀아 본 아이들이 진짜 재미를 알고, 앞으로의 삶을 재미로 채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집들로 빼곡한 한 마을 이야기입니다.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들이 들어선 이 마을에서는 해가 잘 들도록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어디로든 통하고요. 이런 매력이 가득한 마을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그림으로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지만, 어서 이 그림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소연정 (글·그림) 요다, 하쿠, 진저를 고양이 별로 보내고 지금은 열아홉 살 노묘 진용이와 살고 있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한다. 하루 한 시간 독서, 한 시간 그림, 한 시간 글쓰기, 나머지 시간은 여행을 다니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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