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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달리는 부석순 : 부석순 1st Single Album
꿈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좀 봐
성에 차지 않는 현실을 견디고 끝내 살아가게 하는 힘의 뿌리는 분명 알 수 없는 꿈과 희망이다. 그것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다 보면 그렇게라도 그 믿음이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 (2023.02.15)
꿈과 희망은 케이팝과 자주 짝을 이룬다. 자본과 상업주의의 최전선에서 화려하게 선 음악치고는 꽤 순진해 보이는 짝이다. 케이팝과 꿈과 희망이 만나 만드는 화학 작용은 그를 말하는 사람이 백이면 백 개의 다른 빛과 맛을 낸다. 수천수만 개의 반짝이는 눈앞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꿈, 열심히 노력해 많은 사람의 힘이 되고 싶다는 희망, 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빛나는 누군가의 꿈을 바라보며 느끼는 대리 만족, 좋아하는 이들의 멋진 무대를 보며 다짐하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한 희망. 비록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끝내 악몽과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마음과 함께 걸어가는 순간만큼은, 케이팝은 꿈과 희망 그 자체다.
부석순의 <SECOND WIND>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별세계가 아닌 이 땅, 한반도에 발 붙이고 선 사람들의 현실 그 자체다. 사람들이 막연히 선망하는 케이팝의 꿈과 희망이 아닌 그걸 가리키는 분명한 손가락이다. 부석순은 남성 그룹 세븐틴의 유닛이자 세븐틴이라는 그룹이 데뷔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그룹이다. 정식 데뷔 전,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인터넷 방송 서비스 '유스트림'에서 스트리밍으로 방송되던 '세븐틴TV'를 통해 탄생한 이들은, 보통의 케이팝 유닛처럼 소속사의 의지로 결성된 그룹이 아니었다. 부석순을 낳은 '세븐틴TV'는 최근 공개되는 각 소속사 자체 제작 콘텐츠와 비교하면 거의 날 것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 월말 평가를 앞둔 연습실의 긴장된 공기에서 연습생들의 진실 게임까지, 지하 연습실 카메라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이 온통 '리얼'이었다.
부석순은 그런 '야생'에서 태어났다. 누가 봐도 노렸다고는 하기 힘든 촌스러운 이름도 그저 멤버들의 본명(부승관, 이석민, 권순영)에서 한 글자씩 따왔을 뿐이다. 억지 기획이나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던 이들은 활동 역시도 시간과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랐다. 에너지와 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이들의 유닛 데뷔를 그룹 멤버들이 앞장서 지지했고, 그룹 활동이 안정 궤도에 오른 2018년 데뷔곡 '거침없이'가 발표되었다. '거침없이'는 발매 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케이팝을 대표하는 좌충우돌 혈기왕성 테마송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다. 잔머리도 요령도 없이 뒤돌아보지 않는 힘 하나를 무기로 밀고 나가는 청춘을 무대 위에 한바탕 늘어놓고 싶을 때, 사람들은 주저 없이 '거침없이'를 찾았다.
그런 이들의 새 싱글 <SECOND WIND>은 그동안 몸도 머리도 성장한 열혈 청춘의 현재, 그 하루를 담는다. 세 사람이 함께 부석순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가 10대 중반에서 후반, 첫 싱글 '거침없이'를 발표한 게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무렵이었다. 이들은 어느새 현대인의 24시간을 음악으로 능숙하게 풀어낼 줄 아는 20대 중반이 되었다. 1년 365일 사계절 내내 아침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숭늉처럼 들이키며 수면 부족과 울화를 다스리는 한국인,('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 오전 내내 이어진 혹사에 점심이고 뭐고 '아아'나 한 잔 더 주입하거나 어디 조용한 곳에 박혀 쪽잠이나 자고 싶은 당신에게 배달된 상큼한 음악 점심('LUNCH'), 긴 하루 끝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멍하니 몸을 실은 지하철 순환선 창밖에서 우연히 만난 가슴 뭉클하도록 아름다운 노을.('7시에 들어줘' (Feat. Peder Elias)) 놀랍게도 이 모든 게 앨범 <SECOND WIND>에 들어 있다. 그것도 마치 모두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했다는 듯 깔끔하고 정돈된 포장으로.
성에 차지 않는 현실을 견디고 끝내 살아가게 하는 힘의 뿌리는 분명 알 수 없는 꿈과 희망이다. 그것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살다 보면 그렇게라도 그 믿음이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는 동아줄을 겨우 붙잡고 입 밖으로 저절로 '어떡해'가 튀어나오는 순간, 요동을 버틸 체력만큼 네가 잡고 있는 그 줄이 맞다고 힘을 보태줄 누군가의 한마디나 손길이 절실해진다. 부석순의 앨범에서 그런 믿음직함을 느꼈다. '어떡해' 이후 짧게 이어진 침묵 뒤로 버릇처럼 '어떡하긴, 해야지'를 습관처럼 되뇌는 우리 곁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부석순이 주먹을 쥐며 노래한다. '파이팅, 해야지!'. '해라', '하자'도 아닌 '해야지'. 응원 같기도, 자조 같기도 한 이 말에 다시 한번 무릎에 힘을 준다. 일어선다. 꿈과 희망을 가리킨 똑바른 손가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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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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