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윤경희, 아름다움을 잇고 엮는 마음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 『그림자와 새벽』
'나는 이것에 왜 이끌리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이 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끌림의 본질은 사랑일 수도 있고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2023.02.06)
『분더카머』부터 신작 『그림자와 새벽』까지 윤경희의 책에는 시간의 지층이 읽힌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주석을 보면, 작가가 오래 쌓아온 글들이 새로운 산문으로 탄생한 흔적을 알 수 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겨졌다 빛을 보게 된 글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또 다른 작품으로 확장된다. 외국 문학 연구자로 살며 사랑하게 된 이국의 단어들과 작은 조약돌, 작자 미상의 이야기들. 깊이 매혹된 아름다움을 글로 옮기는 윤경희 문학 평론가를 만났다.
『분더카머』에 이어 두 번째 산문집입니다. 첫 번째 책을 내고 '매듭'이라는 말을 되새기셨다면, 이번 책은 '약속'을 떠올리셨다고요.
첫 번째 책은 2011년과 2012년 사이 1년 동안 웹진문지에 연재한 결과물을 묶어서 출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요. 쓸 당시에는 온 정성을 기울였지만, 그 과정에서 이 말들은 책이라는 공적 사물이 되기에는 아직 형식적 완성도가 낮다는 자각이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에 떠나보내기에는 제 마음과의 거리감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계약에 따른 출간 기간을 어기면서까지 10년 동안 책에 적합한 글쓰기의 형식에 대해서 고심했습니다. 이제는 멀리 보낼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확연해졌을 때 집중적으로 고쳐 썼고, 오랜 한 시절을 매듭지었다는 후련한 감정이 들었어요.
이번 『그림자와 새벽』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책보다는 쓰고 고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기도 하고 얇고 가볍기에 글쓴이로서 첫 책의 어린 동생처럼 처연하고 애틋한 감정이 들었어요. 언젠가 첫 책 못지않게 더 두껍고 묵직하게 자라게 하고 싶은 책임감도 생겼고요. 그 마음을 실행할 날을 잊지 않으려고 약속이라는 말을 떠올린 것 같아요.
'그림자'라는 키워드를 받아 '새벽'이라는 단어를 택하셨어요. 어떻게 고르게 되셨나요?
시간의흐름 최선혜 대표님이 짐 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에서 출발하여 끝말잇기처럼 서로 어울리는 단어 두 개씩을 선택해서 말들의흐름 에세이 시리즈 10권의 제목을 미리 정하셨고요. 저와 계약할 당시에 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제목들 중에서 한 권을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남은 제목들 중에서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을 골랐는데 그게 '그림자와 새벽'이었어요.
7편의 산문은 작가님이 수집한 문장들과 이야기들을 잇고 엮은 글들처럼 느껴집니다. 방대한 아카이브의 근원을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반짝이는 구석이 느껴지는 것들이라면 아무거나 일단 주워 담고 보는데요. 거주하는 집이 작다 보니 공간의 제약상 실물은 거의 모으지 않고, 그 대신 주로 온라인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이 끌리는 잡다한 것들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아두는 편입니다. 그러다 특정 주제에 호기심이 생겨나면, 온갖 외국어 검색어를 동원해 연관 이미지들을 찾아내서 그제야 컴퓨터에 저장합니다. 전세계의 디지털 박물관과 아카이브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첫 번째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와 새벽』에서도 과거에 써둔 글을 오래 퇴고하거나, 새로운 글로 만든 흔적이 보입니다. 과거의 글을 다시 쓰며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주로 문예지에 자기가 쓰는 장르의 청탁을 받고, 그것들이 모이면 시집과 소설집을 내게 되잖아요. 저는 문학 평론, 산문, 서평, 전시 리뷰 등 청탁이 들어오는 대로 쓰는데, 어쩔 수 없이 글마다 장르와 주제가 달라져요. 게다가 당시 문학과 예술계에서 화제가 된 작업을 대상으로 쓰다 보니, 시간이 흘러 하나의 책으로 묶어 내기에는 시의성이 사라진 잡다한 글이 대부분이 됩니다. 글을 쓰는 당시에 들인 시간과 공이 그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아쉽게 느껴졌고, 각별히 애정이 있는 글들을 골라서 지나간 시간에서 건져내어 새 맥락과 형식 안에 배치해 주고 싶은 욕구가 들었어요. 제가 쓰는 것들에게 쓸 당시의 시간보다 더 오래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책은 그런 시간성의 물질적 형식이고요.
사라질 수 있었던 글들이 시간을 거쳐 새롭게 엮인 거군요.
한때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에 대해 무언가 써보고 싶어서 여러 자료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베토벤이 자필 악보에 작은 낙서를 남기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떤 곡을 쓰다가도 다른 악상이 떠오르면 귀퉁이에 그것을 적어 넣은 거죠. 그 메모들이 버려지지 않고 언젠가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확장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창작 방식이 굉장히 큰 위안이 되었어요. 지금껏 써온 자잘한 단상들이 언젠가는 새 글로 이어질 수 있겠다, 버리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그림자와 새벽』 역시 유사한 과정에서 나온 책이고, 언젠가 현재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다시 변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글은 꿈, 기억,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며 산책처럼 이어집니다. 실제로 글을 어떻게 써 나가시는지 궁금했어요.
'나는 이것에 왜 이끌리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이 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끌림의 본질은 사랑일 수도 있고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나도 모르게 왜 좋아하는가, 이것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왜 아픈가'라고 질문을 다시 해볼 수 있겠네요. 수학이나 물리학 문제가 아니고 철학적 논증도 아니므로, 질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이끄는 글 자체의 흐름에 따르게 됩니다. 글이 이끄는 방향으로 손과 마음이 따라가기 때문에 끝이 어디에 이를지는 쓰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쓰는 과정에서도 거의 모릅니다.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좋아하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것의 원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상태에 도달했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 탐색의 과정이 글이 되는 거고요.
각 장의 서두에는 꿈이 적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꿈들은 그 자체로 기억의 잔여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꿈을 배치하신 이유에 대해 더 듣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한 편의 글을 쓸 때,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결되고 닫힌 글처럼 읽히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끼어 들어가 있고, 틈이 많고 이지러진 구석이 있는, 그러면서도 각각의 부분들이 서로 어울리는 그런 글을 쓰려고 하는데요. 본문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상충하는 부분도 있고, 본문에 조명등 역할을 하면서 사실은 얼룩처럼 묻어 있기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는, 그런 효과를 내는 꿈들을 골라서 붙였습니다.
글쓰기와 문학 행위를 '수프 끓이기'로 비유하신 점이 재밌었습니다. 수프처럼 '문학은 인간 공동체의 언어를 다 담아내면서 매 순간 새로 형성된다'(15쪽)고 쓰셨지요. 한편으로 문학 하면 저자에게 귀속된 창작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문학을 모호한 것,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쓰기는 노동이며, 저자에게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다른 한편, 인간의 모든 생산물이 그러하듯, 글쓰기의 결과물은 저자의 작은 세계를 넘어 시공간적으로 더 멀리 오래 남아 나아가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인간 문명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됩니다. 보상과 기여의 순환이 모순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단추와 조약돌」에서 마녀가 무작정 수프를 나누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먹듯이요.
「마카판스갓의 조약돌」에서 소개되는 '매뉴포트'라는 개념이 흥미로웠어요. 인간의 손에 의해 원래의 장소로부터 멀리 옮겨졌지만 사람의 자취가 남지 않은 자연물. 이 사물에 매혹된 이유를 들려주신다면요?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조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매료되는 성향이 있어요. 마카판스갓 조약돌*을 보면 완벽하게 둥글지 않고 조금 찌그러져 있는데, 매뉴포트의 탐구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겨울 새 손님」을 읽으며 새 모이를 주는 작가님을 상상했습니다. '새 모이 주기'가 작가님의 일상에서 어떤 시간인지 궁금합니다.
집에서 일하는 방의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산이 보이는데요. 창문이 있는 벽에 책상을 놓으니, 창문을 열고 일을 하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겨울에 새에게 모이를 주는 시간은 저와 새들이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호의와 노래를 주고받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공간을 달리하는 외래어들이 자유롭게 나열되는 대목을 읽으면, 낯선 단어들로 이루어진 사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반인보다는 외국어를 더 오랜 시간 접하게 되는데요. 어떤 외국어는 그대로 한국어 안에 데려와 놓을 때 한국어를 더 풍부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 역시 일종의 매뉴포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외래의 환경에 있었던 어떤 작은 낱말을, 번역자가 인위적으로 전혀 바꾸지 않고, 음가 그대로 옮겨온다는 점에서요.
문장의 고유한 리듬이 느껴집니다.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의 배치가 인상적이었어요. 「구석의 아이」는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시적인 것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지만, 시를 쓰지는 않습니다. 「구석의 아이」는 행과 연의 구분이 있어서 시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일인용 낭독극 대본이라 생각하면서 쓴 글이에요. 구체적인 상연 목적 없이, 마음속 극장에서 한 사람이 이 문장들을 낭독하는 걸 상상하면서요.
앤 카슨의 『녹스』를 번역하신 후기도 궁금했습니다. 아코디언북이라는 물성부터 섬세한 번역까지 지난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책이었죠.
『녹스』는 2011년 즈음에 알게 된 책인데요. 책 자체가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번역서이기도 하고, 책에서 작가가 번역에 대한 상념을 풀어 놓기도 해서, 읽는 자에게도 자연스럽게 번역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봄날의책 대표님께서 저에게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물어보셨을 때 추천을 드렸지만, 성사되리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다시 몇 년이 지나, 한국에서도 인쇄와 제본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신 다음에 저에게 마침내 번역을 의뢰해주셨습니다. 『녹스』를 번역하기 위해 저 역시 고전학자인 앤 카슨처럼 고전 문헌을 공부해야 했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남았고, 옮긴이 해설과 주에서 못 다한 말들을 언젠가 더 긴 글로 써보고 싶어요.
아비 바르부르크, 조르조 아감벤의 『님프』를 번역 출간 예정이라고요.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9년에 창가의 한라봉 화분에 호랑나비가 날아와 알을 낳았길래 나비가 될 때까지 키운 적이 있는데요. 당시 알이 애벌레로, 애벌레가 번데기로,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해두었습니다. 그것을 이제 책으로 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올해에는 이 작업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워크룸 프레스에서 나올 『님프』는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아비 바르부르크와 조르조 아감벤의 님프 에세이에 저의 님프 에세이를 덧붙여 써야 하는, 번역과 에세이가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책인데요. 이 일은 아마도 다음 작업이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스스로 "독자 정체성 80%, 필자 정체성 15%, 번역자 정체성 5%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책을 읽는 사람들 간의 동료감을 확인할 때 기쁘다고요. 작가님이 꿈꾸는 독자는 어떤 존재인가요?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화씨 451>의 마지막 장면에 빗대어 말하면, 일종의 난민 집단에 속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세계에 역사와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자기의 몸과 목소리를 증거로 삼아 헤매는 사람들. 그게 제가 생각하는 독자 공동체의 모습 같아요.
*윤경희 비교 문학 연구자. 문학 평론가. 파리8대학에서 비교 문학을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업한다. 『분더카머』와 『그림자와 새벽』을 썼고, 『녹스』와 몇 권의 그림책을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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