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판권의 뒷면] 누구의 삶도 흔하지 않으니까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여러분의 명함은 어떤가요. 혹시 명함이 없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한번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2023.01.31)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 부르는 여성들의 삶을 '일'의 관점에서 기록한 책입니다. 평생 많은 일을 해왔지만 '집사람'으로 불리거나 '내조 잘한 사람'으로만 여겨진 큰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의 엄마, 아내, 누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그들이 얼마나 멋지게 일을 해왔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 책을 기획할 때 가장 많이 든 우려는 '너무 흔한 얘기 아니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집집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고생했다는 바로 그 흔한 얘기입니다.

이 흔하고 흔한 얘기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6년 전쯤입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소아과에 갔는데 할아버지 의사가 당부하듯 그랬어요.

"지금 산후 조리원에서 오는 길이죠? 그 여자들 말 듣지 마요. 거기 그 여자들 그냥 동네 아줌마야."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분들만 한 육아 전문가가 있을까. 왜 '동네 아줌마'라는 말은 비하의 표현처럼 들릴까. 혼자 목도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걷고 뛰고 말을 하고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하는 어린이로 성장해 가는 동안, 많은 여성들이 집 안과 밖에서 해온 일들이 어마어마한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록하고 싶어졌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 책은 언론에서 다루는 기사의 원칙에선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에는 유명한 사람도 없고, 당장 사회적 파급력을 일으킨 사건의 당사자도 없으니까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평범한 분들입니다.

이 흔해 보이는 얘기는 많은 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정식 출간까지 하게 됐습니다.(책은 기사에는 담을 수 없던 이야기가 추가돼, 두 배 이상의 분량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실은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부하고 게으를 뿐, 어떤 누구의 삶도 흔하다는 말로 쉽게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책을 만들면서 배웠습니다.

이 책은 '명함'을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명함은 없지만 평생 값진 노동을 해온 주인공들에게 명함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명함에 대해 여쭤보며 저희는 종종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첫 번째 출근길의 주인공 손정애 씨는 명함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뇨. 뭐하러."

다섯 번째 출근길의 이선옥 씨는 "명함에만 머무를까 봐" 명함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제가 명함이에요. 제 자신이."

책을 만들며 종종 명함을 들여다봤습니다. 형용사도 동사도 없이 명사만으로 가득 찬 가볍고 딱딱한 물체. 책 속 주인공들의 삶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분들을 담기에 명함은 너무 작고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의 처음은 이런 문장들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만난 여성들은 명함이 없다고 했다. 일을 쉰 적은 없다. 그들의 노동을 사회에서 '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책 속 주인공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름을 얻지 못한 일, 제값을 받지 못한 노동은 과거의 일이거나 특정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여러분의 명함은 어떤가요. 혹시 명함이 없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한번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회가 정해 놓은 뻔한 직책이나 직위 말고, '나다운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명함을 상상해 봅니다. 누구의 삶도 흔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저
휴머니스트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장은교

<경향신문> 젠더 데스크로 일하며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기획하고 썼다. 오래된 명함을 버리고 2023년엔 프리 워커의 길을 선택했다. 마감이 없어도 늘 무언가 쓰고 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저16,200원(10% + 5%)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명함인 6070 큰언니들 인터뷰집 일하는 나를 돌보고 자부심을 느끼는 법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창간76주년 경향대상, 텀블벅 1422% 초고속 달성 화제작!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저12,600원(0% + 5%)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명함인 6070 큰언니들 인터뷰집 일하는 나를 돌보고 자부심을 느끼는 법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창간76주년 경향대상, 텀블벅 1422% 초고속 달성 화제작!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가가 형사 시리즈’ 최신작

호화 별장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범인이 자수하면서 해결되는 것 같지만, 범행 과정에 관한 진술을 거부한다. 진상을 밝히고자 가가 형사가 나선다.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보이는 전통 미스터리 소설로 여름의 열기를 식혀 보시길.

변화의 흐름을 잡아라!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가 선정한 글로벌 경제 이슈를 담았다. 다가오는 미국 대선 이슈부터 부활하는 일본과 떠오르는 인도까지. 14가지 핵심 토픽을 정리해 세계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바라본다. 급변하는 세계의 변곡점에서 현명하게 대응하고 부의 기회를 만들어보자.

삶에 역사의 지혜를 들여오다

선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을 때 우리에겐 역사가 필요하다 더 깊어진 통찰과 풍부해진 경험으로 돌아온 최태성 저자의 신간.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넘어 삶에 역사의 지혜를 들여오는 방법을 다룬다. 역사에서 찾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단단한 가치는 여전히 역사의 쓸모를 증명한다.

성적이 오르는 아이의 비밀은 어휘력!

초등어휘일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30만 학부모 멘토 이은경쌤이 엄선한 10대가 꼭 알아야 할 국어 교과서 문학,비문학 속 필수 어휘! 교과서 속 처음 접하는 '낯설고 생경한 어휘' 때문에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부의 기본기가 되어 줄 어휘력! 하루 10분, 하루 1장 씩 자연스럽게 익혀 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