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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정성하 "기타보다 노력에 재능이 있어요"

『드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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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치는 건데, 뭘 하든 좋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3.01.19)


2006년, 유튜브에서 정성하의 연주 영상을 처음 본 사람들은 '기타 신동'의 출현에 열광했다. 대중은 물론 프로 기타리스트들까지, 전 세계적인 관심과 애정이 쏟아졌다. 이후 17년이 흐르는 동안 정성하는 쉼 없이 달려왔고, 대표적인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제이슨 므라즈, 아이유, 지드래곤 등과 함께 무대를 만들고, 미국, 핀란드, 일본에서 투어 공연을 하고, 한국인 최초로 유튜브 1억 뷰를 달성했다. 『드리밍』은 그 시간들을 기록한다. 꿈꾸기를 선택하고 꿈을 이룬, 기타리스트 정성하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타'보다 '노력'에 재능 있어요

첫 책을 출간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책을 처음 받고 되게 신기했고요.(웃음) 이렇게 세세하게 저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좋은 기회로 책을 내게 돼서 팬분들과 독자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라고 생각하고요.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 같기는 한데, 제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주실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처음 쓴 글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프롤로그에 쓰시길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하셨어요.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제 이야기를 장황하게 써놓는 것보다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내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어쨌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오고 있고, 그것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타 신동', '기타 천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으실 것 같아요. 그에 동의하지도 않으시는 것 같고요.

네, 제가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요즘은 어린 나이에 기타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제가 기타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조금 더 부각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어린 친구들을 보면, 그때의 저보다 훨씬 잘 치는 친구들이 많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천재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기타를 계속 연습하면서도 그런 것들에 대한 한계점을 많이 느꼈었고, 끈기와 노력으로 극복한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타에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노력하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작가님을 보면서 '천재니까, 재능을 타고 났으니까'라고 말하는 게, 조금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들인 노력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고 할까요. 

제 결과만을 보고 과정은 별로 보려고 하시지 않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되게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노력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얼마나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중요하게 봤습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웃음) 유승우, 이찬혁 등 96년생 아티스트들과 친하시잖아요.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저희는 음악이 좋아서 음악 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특출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음악이 재밌으니까 하는 거예요. 만나면 그냥 자연스럽게 기타 들고, 노래 부르고, 곡을 쓰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그냥 보통 친구들이 노는 것처럼 놀아요. 특별한 대화를 하는 건 아니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너는 그런 감각이 좋아" 라든가 "너는 그걸 정말 잘해" 이런 이야기도 하지 않나요?

그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가수지만 저는 기타리스트이다 보니까, 저희들 중에는 '기타는 정성하'니까, 곡을 쓰거나 반주할 때는 당연히 제가 (연주를) 하게 되고요. 찬혁이 같은 경우에는 음악의 어떤 이론적인 것들을 모르고도 작곡을 굉장히 탁월하게 하는 케이스거든요. 예전에 찬혁이가 앨범 냈을 때 친구들끼리 "어떻게 저렇게 간단하고 쉬운 코드 진행으로 저런 곡들을 쓰지?"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는 있는 것 같아요.

많은 경우, 노력만으로 좋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한데요. 기타리스트 정성하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나요?

돌이켜 보면 거의 모든 게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빠에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기타를 치게 된 일도 그렇고요. 처음에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게 된 것도, 제가 활동하는 기타 동호회에서 어떤 분이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에 한 번 영상을 올려보라'라고 댓글을 남겨주신 게 계기가 돼서 올렸던 거거든요. 그 댓글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면 유튜브에 올리지 않았겠죠. 그런 것들도 다 저에게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러 가지 공연이라든가 행사라든가, 그런 것들도 기회와 기회가 맞물리면서 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어요. 그렇게 계속되는 기회를 저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움도 너무 필요했고요. 그런데 저는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기회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고 나태해져 있어서 기회가 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보내버리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항상 기회는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기회를 잡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요.

열 살 때부터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면서 많은 무대에 올랐잖아요.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주저하거나 거절한 적이 없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놀라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만약에 잘하는 일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기회가 찾아와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기회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쨌든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까 '하지 말아야겠다'라든지 '이건 하기 싫은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치는 건데, 뭘 하든 좋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타리스트로서 자신을 소개할 때 '핑거스타일'이라는 주법에 대해 꼭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정성하'라고요. 이유가 있나요? 

'통기타'라고 하면 많은 대중분들이 스트로크하면서 반주하는 걸 상상하세요. 제가 하는 건 그것과 완전히 다른 장르인데, 설명을 해드리지 않으면 모르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통기타를 친다고 말씀드리면 '세션하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저는 프론트맨으로서 독주를 하면서 무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이고, 이런 핑거스타일의 의미를 대중분들에게 전달을 하고 싶어요. 핑거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말씀을 드림으로써, 제가 반주하는 세션이 아니라 저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라는 설명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데, 그래서 항상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아요.

제이슨 므라즈와 함께한 무대가 큰 화제가 됐었죠. 책에도 그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두 분의 만남이 쉽게 성사된 게 아니더라고요.

네, (제이슨 므라즈가) 제가 한국인인지 모르셨다고 해요. 내한 공연을 오셨을 때 어떤 계기로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셨고, 그러고 나서는 즉흥적으로 혹시 저를 만날 수 있냐고 주최 측에 말씀하신 거예요. 그때 제가 투어 중이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엄청 아쉬웠어요. 진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오래 안 돼서 또 내한 공연을 오셨어요. 그때는 미리 연락을 받고 스케줄을 비워놔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죠. 처음 저를 언급하신 건 미국의 한 라디오에서였는데 "동양의 한 꼬마가 'I’m Yours'를 연주했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서 내가 그걸 따라서 쳐봤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었어요. 그 말씀을 하셨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설마 저를 부르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당시에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이 진행됐죠? 

네, 지금까지 제가 섰던 무대 중에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관객이 많다 보니까 환호성이나 에너지가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책에 쓰시길, 작은 공연장보다 큰 공연장을 더 편하게 느낀다고 하셨어요. 

작은 공연장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 느껴지거든요. 관객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저를 쳐다보고 계시는 게 다 보여요. 그렇게 바로 앞에서 집중하고 보고 있으면 오히려 더 긴장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엄청나게 큰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연주를 할 때 그냥 지형지물로 보이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긴장을 덜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직접 그 분들의 눈을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 점에서 큰 공연장이 더 편한 것 같아요.



기타 치기 싫을 때? 그냥 놔버려요

제이슨 므라즈 외에도 함께 작업했던 아티스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특히 기타리스트 '울리 뵈게르샤우젠'과의 인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재능 있는 어린 친구를 알아보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던 울리의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울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저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베풀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울리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곡을 연주하는 걸 항상 봐주셨고, 그냥 작은 꼬마일 뿐인데 본인의 곡을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계속해서 큰 도움을 주셨거든요. 사실 제가 그분께 해드린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도움을 받기만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너무 감사드리고 있고, 코로나 이후로 찾아뵙지 못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울리가 저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저도 성장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기꺼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정성하의 뮤직카페>를 통해서 인스트루멘탈(악기 연주만 있는 음악)을 알리려고 노력하시잖아요. 그것도 일환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많이 드는 생각 중에 하나가,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놔야 후배들이 올곧은 평탄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거예요. 비단 음악 쪽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인스트루멘탈 장르를 조금 더 대중화시키고, 특히 대중의 시선을 많이 받는 사람이 기타리스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놓으면, 그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서 느끼는 답답함 같은 것도 있나요? 사람들이 작가님을 세션으로 생각하거나 '왜 밴드로 활동하지 않아요? 기타 치면서 노래도 같이 하지 그래요?' 같은 실례되는 질문을 할 때는 없나요? 

지금 하셨던 말들이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일 거예요. 열에 아홉 분 정도는 노래나 밴드나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런데 저는 괜찮아요. 왜냐하면 저를 믿고 제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들이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그런 말씀을 안 하시거든요. 저는 그만큼 자신이 있어요. 기타 한 대로 꾸미는 무대가. 그리고 기타 한 대로 표현하는 음악이 엄청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사람들이 그걸 제대로 접하지 못했을 뿐, 듣고 나면 이 장르에 빠져들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저만 열심히 잘하면,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제 공연을 보러 와주시고 제 연주를 들어주신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말씀들은 안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나에게 슬럼프가 있었냐고 물어보면 난 없었다고 늘 이야기한다'고 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럼프를 겪게 되는 이유가, 계속 그 일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그때 그 순간만 놓아버리면 별 거 아니거든요. 그러면 큰 슬럼프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이 하기 싫을 때까지 억지로 붙들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럼프가 찾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단계까지 넘어가기 전에, 기타가 치기 싫은 날이면 그냥 (기타) 생각을 안 해버렸어요. 그냥 놓아 버리고 다른 일을 하거나 더 휴식을 취하거나 마음을 리프레쉬시켜서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어지게 만든 건데요. 그것도 하나의 요령이라고 생각해요.

슬럼프 예방법이라고 할까요, 그런 방법을 남들보다 일찍 알게 된 것 같아요. 일로써 음악을 일찍 시작해서 그럴까요? 

친구들보다 일찍 알게 된 것들도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 안 하고 일찍부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회생활도 조금 일찍 시작했고, 그리고 학업보다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소비했으니까요. 또래 학생들과는 살아온 환경에서 차이가 있어서, 먼저 배우거나 깨달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저처럼 이른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던 승우나 찬혁이 같은 친구들도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일찍 활동을 시작한 게 확실히 영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고등학교 진학이 아닌 음악 활동을 선택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한 번씩 생각이 나긴 해요. 그때 고등학교를 갔으면 어떤 생활을 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돼 있을까. 학창 시절이라는 게 그 나이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까 계속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시기에 제가 했던 일들이 워낙 많았고, 이루어놓은 것들도 많아서 전혀 후회되지는 않아요.

그 즈음 사춘기를 겪으셨죠. '그렇게 나는 (외부의) 밝음과 (내면의) 어둠이 공존했던 나날을 보냈다.'고 쓰기도 하셨습니다. 그 시절에 작가님을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보면 저는 아버지랑 같이 일을 한 거거든요. 아버지께서 일을 많이 도와주셨고, 저에 대한 모든 것들을 관여하고 계셨기 때문에, 좋든 싫든 충돌이 많았어요. 또, 아버지는 제 일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시고 저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계셨기 때문에 일적으로 충돌이 많았어요. 그때 뒤늦은 사춘기가 왔었죠. 당시에 저는 기댈 곳이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 수도권에 있거나 계속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만큼 아버지께서 제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계속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1년에 한 장씩 앨범도 내고 해외 투어도 계속 다녔는데, 그 시절이 가장 바쁘게 활동했던 날들이고, 가장 많은 팬분들에게 주목 받았던 시기이기도 해요. 외부에서 볼 때는 거의 전성기라고 봐도 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던 기간인데, 제 내적으로는 많이 힘들고 외로운 시기였죠.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기타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그냥 진즉에 놨을 것 같아요. 아마 (기타를) 놨으면 그때 놓지 않았을까 싶어요. 힘들어서 '이제 기타 못 치겠다, 활동 못 하겠다'라고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기댈 곳이 없는 와중에도 음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음악으로 제 마음도 치유하고, 힘든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에 위로도 받았고요. 그랬기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어요

'내 음악이 갑자기 바뀌어버리면 내 음악을 원래 들어주던 사람들이 계속 들어줄까?'를 고민하던 때도 있으셨죠.

네, 과거에는 그랬었죠. 내 음악을 들어준 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 나보다 그 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었어요. 그런데 저를 정말 사랑해주시는 분들은 제가 어떤 시도를 하든 그 자체를 반겨주시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조금 더 다양한 음악을 하게 되는 거고, 그만큼 발전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걸 알게 된 후로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주변의 시선들만 너무 신경 쓰다 보면 그것에 정착하게 돼요. 지금의 나로 정착하게 돼서 더 이상 발전도 없고,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차이가 없게 돼요. 그런 것들을 지양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던 앨범이 <L’Atelier>, <Mixtape>였죠.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보내신 시간이 두 앨범에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죠. 제가 그 전까지는 음악의 이론적인 것들에 대해서 거의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신문물을 접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연주하던 것들에 대해서 더 온전히 깊게 이해하게 되고 '이런 이론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연주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음악의 변화를 많이 꾀할 수 있게 됐어요. 많은 시도를 거치면서 제가 조금 더 하고 싶은 음악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그 음악들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셨잖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꿈을 좇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진짜 다양했어요. 예전의 저처럼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들어온 십대 친구들도 많았고, 대학에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하다가 음악이 하고 싶어서 휴학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니면 회사를 다니다가 음악을 포기하지 못해서 퇴사하고 배우러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연령대도 십대에서 오십대까지 다양했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면 언제가 후회하게 되고, 늦은 나이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나이가 든 다음에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이왕이면 일찍 그 일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해봤으면 좋겠고요.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그리고 저는 저보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이제 와서) 왜 그러냐는 식으로 말할 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저 멋있어 보였던 것 같아요.

『드리밍』을 읽으면서 '기타리스트 정성하는 참 주체적인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앨범 작업에서도 프로듀싱부터 앨범 표지, 녹음까지 직접 다 하시잖아요. 아버님께는 "이제 제 일을 직접 맡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면서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항상 아버지나 다른 분들께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공연을 잡아주시면 가서 연주하고 돌아오고, 흔히 뮤지션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들어가서 회사 기획에 맞춰서 따라가는 것처럼,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항상 그런 열망이 있었어요. 앨범도 조금 더 제가 원하는 디자인과 콘셉트에 맞춰서 제 입맛대로 만들고 싶고, 공연도 제가 하고 싶은 공연을 하고 싶고, 그런 욕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어리니까 도움을 받았다면 성인이 된 이후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여력이나 능력이 되니까, 그때는 아버지께 당당하게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주체적인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독립성이 좀 강한 것 같아요. 주도적으로 혼자서 다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매니저 없이 혼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도 같이 일하는 회사는 있겠죠?

회사 없습니다. 항상 회사 없이 해왔어요.

그럼 직접 다 연락하면서 일정을 관리하세요?  

네.

업무량이 보통 많은 게 아닐 텐데요.

회사의 필요성을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다 혼자 하고 있어요.

자율성과 독립성 때문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4~5년 전까지는 매니저분이 계셔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제가 군복무 때문에 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그만두셨어요. 이후로는 혼자 해오고 있는데요. 제가 개인이다 보니까 매니저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음악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아서 바쁘니까 힘들기는 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해볼 만한 것 같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다 저의 경험이 되고 좋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기타리스트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사람 치고 나쁘게 기억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옛날 아티스트를 생각할 때 나쁘게 기억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기억되고 싶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데, 제 음악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세상의 여러 곳에서 오랜 시간 꾸준하게 제 음악이 들려오면 좋겠고요. 사람들이 그 음악을 들으면서 제 생각도 같이 하게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저의 기타 연주가 더 많은 대중분들에게 알려지고 제가 좋은 곡을 써서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는 곡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계속 활동하고 음악적인 고민을 하면서 저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책에도 썼다시피,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는 과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인가, 혹시 이 일을 함으로써 내가 건강하지 못하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건강하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모든 걸 걸고서라도 인생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지시면 좋겠어요.




*정성하

2006년, 10세의 나이에 인터넷상에서 처음 기타 연주를 선보인 이후 17년이 지난 현재, 타고난 재능과 쉼 없는 노력으로 유튜브 조회 수 20억이라는, 연주자로서는 전례 없는 기록을 달성했다. 2023년 현재까지 총 10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으며,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수상, 한국인 최초로 유튜브 총 조회수 1억 회 돌파 등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 2023년 1월에는 유튜 브 구독자 수 700만 명을 넘어섰다.




드리밍
드리밍
정성하 저
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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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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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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