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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꼬마는 춤추지 않는다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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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같은 내적 확신을 갖고 있던 꼬마는 성장과 함께 자연히 사라지는 길을 걷지 않았다. 사라지기는커녕 무당에게 공수를 주는 애기 동자처럼 내 안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 울부짖음을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 소설로 옮겼다. (2023.01.02)

그림_이희찬

초등학교 입학식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생애 첫 사회생활의 날을 맞아 부모님들이 신경 써서 잘 차려입힌 우리들이 마루 가운데 놓인 조그마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고 부모님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날 나는 조그마한 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앞줄,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지도 않으면서 앞만 보고 있었다. 사실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에 질려서 정신을 절반쯤 딴 세상에 놓아두는 나만의 유체 이탈 테크닉을 쓰는 중이었는데, 그게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새침하고 모범생처럼 보이는 모순이 있었다.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교실 모서리에 있는 작은 방문이 열리더니 낯선 여자가 달려나와 우리 앞에 섰다. 그 사람이 선생님인가 보다고 짐작했다.

"자! 여러분!"

여자는 힘차게 외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수선하던 분위기에 활기가 돌며 아이들이 모두 일어서 여자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는 신나는 동요였고, 여자의 동작은 우리가 따라 할 만한 귀여운 율동들이었으니, 모든 것이 가리키는 맥락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단호하게 얼굴을 굳히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 기세가 너무 단호했는지 내 옆자리 아이도 나를 따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앞에서 춤추던 여자가 우리 이마를 톡톡 쳐서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좋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일어서지 않았다.

"넌 눈이 안 보여? 귀가 안 들려? 다른 아이들 모두 춤추는데, 어쩌자고 너는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맹하게 앉아 있기만 한 거야?"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고 맞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이 춤추라고 하지 않았잖아!"

엄마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이 '자 여러분!'하기만 했지 '다 같이 춤추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그 사람이 그냥 자기 혼자 춤춘 거잖아! 왜 내가 따라서 춤춰야 해? 춤춘 애들이 이상한 거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선생님이 춤추면 너도 따라서 하는 거지! 그걸 꼭 말을 해야 알아?"

"그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말 안 했잖아! 나중에 했잖아! 그때까진 선생님이 아니었잖아!"

엄마는 내가 학교생활에 부적응하고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아이가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모와 삼촌들까지 동원되어 여러 가지 설득과 회유가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후로도 이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그 여자는 자기가 교사라고 알리지도 않았고 함께 춤추자고 하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일어나 춤출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오래 흘러 일곱 살 꼬마의 입학식을 다시 떠올리는 지금, 내 마음속에서는 연한 물감 같은 서글픔이 번진다. 외계인 같던 그 꼬마가 오늘 지독하게 사회에 적응한 중년 여자가 되기까지 고비가 많았던 것이다. 꼴통 같은 내적 확신을 갖고 있던 꼬마는 성장과 함께 자연히 사라지는 길을 걷지 않았다. 사라지기는커녕 무당에게 공수를 주는 애기 동자처럼 내 안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 울부짖음을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 소설로 옮겼다.



나의 첫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성장 소설이다. 40대 이후 5년이 넘는 긴 슬럼프를 간신히 이겨내고 다시 시작한 시즌2의 첫 소설 『설이』 역시 성장 소설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어린 자아는 할 말이 많다며 여섯 편의 동화를 쏟아내더니 어느 날 더 이상 한 글자도 쓰지 않겠다고 나자빠졌다. 겨우겨우 무언가 다시 써볼 엄두를 내었을 때에는 반드시 자기 이야기를, 자라나는 아이들의 숨은 상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의 일생이 그 아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쓸데없이 성질을 긁지 않으려 애쓰며 일상과 글쓰기의 보이지 않는 이인삼각을 잡음 없이 완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뒤늦게야 깨달았다. 유치원 입학식에서 춤추기를 거절한 그 아이를 이해해야 '나'라는 인간의 글쓰기와 그 이상한 흐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입학식의 이 일화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거의 벽창호 같으리만큼 고지식한 언어 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시기 나는 거의 컴퓨터 디지털 언어에 가까울 정도로 기계적인 정확을 추구했던 셈이다. 이후로 나의 언어 세계는 다행스럽게도 저것보다는 좋은 쪽으로 많이 성숙했지만, 언제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언어적 규칙은 정확성이었다. 

문장의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작가가 글쓰기에서 어휘의 다양한 활용을 추구해야 한다는 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욕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스파르타식 언어, 언어의 미니멀리즘을 숭상하고 최소한의 평범한 단어들로 풍만한 확장과 은유를 위한 여백을 남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시적 언어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절제된 이과적 언어에서 배어나는 침착한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문장 구성 요소를 빼도 말이 된다면 빼는 것이 좋다. 공룡의 골격처럼 앙상한 문장의 뼈대에 수식어를 인색하게 입혀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조사의 변화나 어미의 활용, 구절 배치의 변화 등으로 문장에 담담하고 미세한 리듬감이 생기도록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문장'의 방향이다.

두 번째로, 나의 언어는 나의 내면적 역동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사회적 관념으로 볼 때 기괴하든 무책임하든 말이 안 되든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부모, 가족, 친척과 친구들 모두 내가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보통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문학에 있어서만은 그들의 견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기묘한 자신감과 확신에 사로잡혀, 나만의 실험적 도전과 맥락적 변이에 탐닉했고, 그것이 때로 괴상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작가라는 낯선 직업에 도전하고 지난 20년간 그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에는 언어를 다루는 데에 뛰어난 감각이나 능력이 있었다기보다 문학이 오로지 나의 세계에 관한 일이라는 강력한 내적 확신이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평가라는 미사일에 매우 강한 방어막을 갖고 있는데, '내 생각을 내 마음에 들게 표현했다면, 그것이 누구의 마음에 들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하는 식이다. 문학적 비평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른의 성숙한 강인함이 아니라 꼬마의 '내 알 바 아님'하는 무책임함에 가깝다.

세 번째로, 그 꼬마는 어느 날 갑자기, 슬그머니, 더 이상 범생이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버렸다. 입학식 날 나타난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밝히고, 다 같이 일어나 춤추자고 정확하게 말했다면 꼬마는 춤을 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선생님인데 다 같이 춤추자고 말해도 꼬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젠장, 내가 춤을 출지 노래를 할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끄럽도록 말이 많은 아이인데 이때는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극도의 보안 속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 아이의 그런 결심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이인삼각으로 묶인 두 존재의 한쪽이 속마음을 숨긴 채 꿍꿍이대로 움직이자 나는 스텝이 꼬이고 발목이 꺾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한 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 출판사의 송년회 자리에서 김연수 작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리 친분이 많지 않았던 그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 혹시 요새 책 잘 읽어지세요?"

"책이요? 뭐... 누워서 읽다가 졸리면 자기도 하고..."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특유의 선한 미소와 함께 얼버무리던 그의 얼굴이 기억난다. 사실 나도 그 질문이 무슨 뜻인지, 내가 무엇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지 잘 몰랐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며칠 전, 온통 정치 이야기로 뜨겁던 그 송년회에서, 나는 그때 이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혼란 속에 허우적거리며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는 중이냐고, 혹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없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10년도 더 지난 알 수 없는 어느 날에, 난독증이 시작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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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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