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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은 "소설 쓰기는 나의 뿌리를 찾는 일"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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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이 된 이후 모국의 역사를 접한 사람이다. 그래서 역사 소설을 쓰기 두려웠지만, 그만큼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22.12.28)

(통역 : 신민송)

1426년, 제주의 한 마을에서 열세 명의 소녀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뒤이어 이를 수사하던 수사관 민제우까지 실종되며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진다. 이후 수사관 민제우의 큰딸 '민환이'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홀로 제주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친동생 매월을 만나 수사를 시작하며 숨겨진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두 자매는 무사히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허주은 작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우리 역사의 슬픈 조각인 '공녀 제도'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캐나다에서 성장한 허주은 작가는 미국에서 3권의 작품을 발표하고, 애드거 앨런 포 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에서 먼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소설은 모두 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게 특징. 『사라진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은 그의 두 번째 소설로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공부하고 싶은 역사를 소설로 쓴다 

미국에서는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한국을 찾은 소감이 어떤가? 

부모님이 한국에 계셔서 매년 왔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3년만의 귀국이다. 도착하자마자 '역시 우리집이다'라고 느꼈다.(웃음) 한국 독자들에게 소설을 선보일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한편, 내 소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긴장되기도 한다.

한국에 머문지 열흘 남짓 되었는데, 어떤 시간을 보냈나.  

남편, 아이들과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친정 가족과 함께 보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의 공녀 제도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미국에서 첫 작품 『뼈의 침묵(The Silence of Bones)』을 쓰면서 여러 자료를 찾던 중, 고려 및 조선 시대 학자들의 서한 등을 모아 한국계 미국인 학자들이 번역한 책 『에피스톨러리 코리아(Epistolary Korea)』를 읽게 됐다. 거기서 고려 시대 학자 이곡이 쓴 공녀 제도 폐지 상소문을 읽고 난생 처음 이 끔찍한 제도에 대해 알게 됐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어린 딸을 하루아침에 공녀로 끌려보내야 했던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곡의 상소문이 내내 마음에 맴돌아 첫 작품을 마치자마자 공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게 소설이 됐다. 나는 한국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그 내용을 파고들다가 자연스럽게 소설을 구상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옮긴 유혜인 번역가는 '삶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저자가 다른 언어로 수백 년 전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구현할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막연한 기우는 첫 장면을 읽는 순간 사라졌다(429쪽)'고 썼다.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생생한 스토리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정말 어려웠다.(웃음) 특히, 소설의 배경인 제주도에 관한 정보를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 영어로 된 양질의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한국어로 된 자료를 영어로 번역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제주로 답사를 다녀온 경험이 소설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양의 모습은 자료로 많이 남아있었지만, 조선 시대의 제주는 상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박물관과 민속마을 등을 방문하면서 소설의 마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이 제주였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고 자란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도 귀한 자료가 되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책에 이 대사를 넣지는 못했지만 "제주에서는 어디를 가든 바다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고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제주라는 배경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이의 매월이 수사의 주체가 되듯, 제주는 예로부터 여성들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던 지역이다.  

처음 제주를 소설의 배경으로 떠올렸을 때는 단순히 '아버지의 고향이니까'라는 가벼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이보다 더 좋은 배경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전개상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 장소가 필요했는데, 제주의 깊은 숲은 그 분위기를 내기에 제격이었다. 또, 환이와 매월은 당차고 질문이 많은 여성 캐릭터다. 궁궐이 있고, 유교 사상이 강한 한양에서 이들이 수사를 벌였다면 지나친 판타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제주가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환이와 매월에 투영된 자매애 

주인공 '환이'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혼자 제주로 떠날 만큼 용감하고 주체적이다. 동시에 수사를 마치면 혼인해서 아기를 낳아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꿈을 꾸는 순종적인 모습도 보인다. 현대와 과거 여성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환이라는 인물을 구상하게 된 건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살며 느꼈던 그리움을 환이에게 최대한 투영하려고 했다. 주체적이면서도 순종적인 모습 또한 나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이고 나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한편,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적인 가치관을 많이 배우며 자라기도 했다. 이 양면적인 모습을 환이 안에 잘 녹여내고 싶었다.

환이의 동생 '매월'은 어린 시절의 오해로 가족을 떠나 혼자 제주에 정착해 살아간다. 겉보기에는 환이가 더 당차보이지만, 사실은 매월이 훨씬 단단한 인물이라고 느꼈다. 수사의 방향을 올바른 쪽으로 바꾸는 것도 매월의 역할이다.

매월은 나의 여동생을 닮았다. 여동생은 정말 관대하고, 내 사람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 "언니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내가 다 혼내줄게"라는 말을 자주 할 만큼 씩씩하다(웃음). 소설 속에서 환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 중 지도를 들여다보자, 매월이가 "지금 이 상황에 왜 지도만 보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동생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갔을 때 실제로 있었던 순간을 그대로 소설에 담았다. 

환이가 "막다른 길이야"라고 말하자, 매월이가 "막다른 길은 언니 머리에나 있는 거지. 찾고자 하면 언제든 다른 출구로 나갈 수 있어"라고 대답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여동생과 나의 성격이 이렇게 다르다.(웃음) 장면마다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환이는 규칙을 준수하고, 바른 길을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매월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신의 직감을 믿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작가의 말에서 "한동안 소원했지만,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여동생과의 관계를 이 책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그리고 싶었던 자매애는 어떤 모습인가?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고, 가까워도 불편할 수 있지 않나. 이런 관계의 현실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이 책을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임신을 했다. 그때 육아를 하며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여동생이 나를 찾아와서 도와주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사실,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는 '환이'라는 캐릭터만 등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동생의 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서 환이에게도 수사에 도움을 주는 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환이의 수사 실력에 탄복한 유 어사가 환이에게 궁에서 능력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환이는 단번에 거절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환이가 제주도로 떠난 것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매월이와 함께 살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안도 환이에게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또,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권력의 부정부패와 어두운 이면을 너무 많이 본 탓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궁궐은 권력의 중심지이므로 그 안에서 잘 지낼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출간, 꿈이 이루어졌다 

작가의 말에서 '한국의 역사와 나의 뿌리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지 않다가 한국에 관한 책을 읽고 나의 많은 부분이 한국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한국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어린 시절에는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한인 교회에서 노출되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게 전부였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로는 영국 문학을 쓰고 싶어서 10년간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 천주교 신자 박해 사건을 다룬 소설인 한무숙 작가의 『만남』을 읽고 한국 역사에 푹 빠져들었다. 한국에 뿌리를 둔 나의 정체성, 우리 가족의 문화가 온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건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태도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는데, 사실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한(恨)'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국계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캐시 박 홍 작가의 『마이너 필링스』 등은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흐름의 당사자로서 현재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나? 

너무 감사하고 신기할 뿐이다. 특히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계 미국 작가들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모국의 역사를 접한 사람이다. 그래서 역사 소설을 쓰기 두려웠지만, 그만큼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독자들이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새로운 관점을 반갑게 여겨주는 것 같아 고맙다. 

인천에서 태어났다고.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어땠나?

부모님을 따라 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4세 때부터 캐나다에서 살았다. 한국에서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할머니 옆에 앉아서 즐겁게 놀던 시간이 좋았다.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인지, 아니면 사진을 보고 만들어낸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현재 연산군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연산군은 수많은 궁녀를 거느렸던 왕이다. 그가 더 많은 궁녀를 거느리고 싶어서 마을의 소녀들을 빼앗아가는데, 그들 중 한 소녀의 가족이 그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곧 한국 일정이 마무리되는데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나? 

남편이 아이들을 봐줄테니 나는 다음 작품을 위한 자료 조사에 매진하라고 한다.(웃음) 아마 출국하기 전에 서울에 있는 궁궐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의 모국인 한국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다니, 꿈이 이루어진 것 같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허주은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랐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장편 소설 『뼈의 침묵(The Silence of Bones)』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붉은 궁(The Red Palace)』을 연이어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둔 작품 분위기, 탄탄한 서사 속에 치밀한 미스터리 장치를 가미한 필력으로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먼저 그 이름을 알렸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
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저 | 유혜인 역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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