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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 A의 음악 노트 : 방탄소년단 RM 'INDIGO'
선명하게 전달되는 RM의 소신
어떤 의도도, 복잡함도 없다. 같은 시대를 남들과는 조금 다른 궤적으로 살아온,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 A의 노트 맨 뒷장이 선연하다. (2022.12.07)
음악을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한 번쯤 음악을 적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라디오가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던 시절,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의 노트 뒤 페이지는 의미 모를 글자로 늘 빼곡했다. 주말마다 들을 수 있었던 '아메리칸 탑 40' 순위이기도 했고, 당시 유행하던 팝송 가사를 들리는 대로 얼기설기 받아 적은 흔적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새로운 음악이 넘쳐나고 궁금한 음악은 각종 애플리케이션의 '노래 검색' 기능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눈으로 손으로 꼭꼭 받아 적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너덜너덜한 노트 맨 뒤 장에 적혀 있던 노래 제목도, 날짜와 장소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검색 리스트도 마음만은 모두 하나다. 내 생에 문득 찾아온 어떤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첫 공식 솔로 앨범 <Indigo>를 들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음악을 오감을 다해 느끼고 적어 간직하는 마음. 앨범 발매 전 참여 리스트가 먼저 공개된 뒤 예상치 못한 라인업에 다양한 타임라인이 웅성거렸다. 케이팝이나 한국 대중 음악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를 넘어선 유명 음악가의 솔로 앨범에 걸맞은 화려함과 동시에 전혀 다른 의미를 담은 리스트였기 때문이다. 리스트가 담보한 시대와 장르 모든 면이 그랬다. RM의 첫 우상으로 유명한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나 이미 여러 차례 작업으로 서로의 호흡을 확인한 프로듀서 이이언과 혼네, 오랜 지음(知音)으로 알려진 R&B 싱어송라이터 콜드의 등장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앨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네오 소울의 전설 에리카 바두나 가수 박지윤, 2000년대를 전후한 한국 록 음악 신을 대표하는 밴드 체리 필터의 조유진이나 쉬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심상을 표현하는 데 그만한 이가 없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이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대체 RM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공식 앨범에 어떤 음악을 담고 싶었던 걸까.
뚜껑이 열린 앨범은 RM이 빼곡하게 적어 놓은 그만의 음악 노트 그 자체였다. 1994년생, 창작자이자 동시대의 음악을 듣고 아끼고 받아 적어온 '김남준'이라는 사람이 오래 간직해 온 보물 조각들이 앨범 <Indigo> 안에 펼쳐져 있었다. 형식으로만 보자면, 어쩌면 흔히 유명 음악가나 평소 작업해 보고 싶었던 이를 불러 기존의 음악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피쳐링(featuring)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앨범에 초대한 RM의 태도와 그렇게 초대된 이들이 앨범 안에 담긴 방식에서 일반적인 피쳐링과는 사뭇 다른 차이가 느껴진다. RM은 다양한 음악가를 자신의 방에 잠시 초대하는 협업이나 찬조 출연의 개념이 아닌, 그의 삶과 '함께'해 온 그들을 앨범 속 가장 밝고 돋보이는 곳에 '모신다'. 앨범에 쓰인 'with' 표기 그대로다.
앨범 <indigo>는, 그래서 RM만의 대중 음악 큐레이션이자 인생 음악을 담은 카탈로그가 된다. 흥미로운 건 RM이 현재 케이팝 신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뚜렷한 자신만의 메시지와 소신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이다. 故윤형근 화백의 육성을 사용한 첫 곡 'Yun'이나 앨범의 인터루드를 담당하는 6번 트랙 'Change pt. 2' 처럼, 그는 하고자 한다면 누구보다 진지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묵직하게 펼쳐 놓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Indigo>로 택한 건, 자기 삶에 녹아 있는 음악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의지다. RM의 솔로 앨범 수록곡이라기엔 누구라도 낯설 법한 포크 팝 '건망증'에서 김사월의 목소리가 숨처럼 자연스레 흐를 때, 조유진 특유의 목소리가 사무치는 후렴구를 위해 RM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열심히 길을 더듬어 나갈 때, 들려오는 건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 A의 음악 노트가 넘어가는 익숙한 팔랑임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RM'이라는 이름 아래 그 무엇도 가벼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페이지만큼은 어떤 의도도, 복잡함도 없다. 같은 시대를 남들과는 조금 다른 궤적으로 살아온,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 A의 노트 맨 뒷장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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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