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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의 리걸 마인드] 미안한 마음 - 마지막 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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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未安)한 마음이란 '남에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단언하건대, 그 미안한 마음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승소와 패소를 반복하는 이 땅의 변호사들 대부분이 업보처럼 안고 있는 어떤 것이다. (2022.12.06)

일러스트_키박 

연말이 되면 과거를 돌아보고 가끔 회한에 잠긴다. 회한,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이다.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연말이 되면 가끔 생각나던 소년범이 있다. 초보 변호사 시절, 구치소에서 처음 만났던 소년범. 그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하려는 의도로 식칼을 들고 집에 찾아간 행위로 인하여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다른 범죄로는, 미성년자였던 여자 친구를 위력으로 간음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소년범은 자신의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칼을 들고 집에 찾아간 것은 맞지만, 겁만 줄 생각이었고 실제 어떤 위해에 이를 정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력 간음 혐의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무죄를 입증할 만한 강력한 증거가 다수 있었는데, 휴대폰에 있는 그들의 사진과 주고받은 문자들이 그것이었다. 소년범과 피해자는 실제로 연인 사이로 보였다.

수사 검사도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소장에 기재된 간음 범죄는 최초의 첫 번째 간음 행위만을 적어놓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귄 후에 있었던 나머지 행위들은 모두 합의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그에 앞서 있었던 최초의 간음 행위는 위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판단이다. 이게 현실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일까? 말하자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한 후에 피해자가 가해자와 연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

나는 무죄 주장을 하고 여러 가지 증거를 추가로 제시했지만, 1심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고등 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했고, 형량도 1심과 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런 판결이 났을까? 내 소견으론, 소년범인 의뢰인이 한국 국적의 청소년이었지만, 온전한 국민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판결이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고, 탈북민이었고, 외모에서 풍겨 오는 반골의 이미지도 상당했다. 이러한 나의 비합리적인 항변은 실패한 변호에 대한 변명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당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2심 판결 선고일의 장면도 떠오른다. 보통,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은 사건의 판결 선고일에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무 법인의 사무 직원이 출석하여 판결 선고 결과를 듣고 알려주는 사정도 있었지만, 나쁜 결과를 현장에서 의뢰인의 얼굴을 보며 들어야 하는 괴로움을 변호사가 피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당시 재직하던 로펌의 변호사들 대부분은 형사 판결 선고 기일에는 출석하지 않았고, 나 역시 대부분의 사건에서 선고일에는 방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사무직원의 전화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탈북민 소년범 사건에서 나는 직접 그와 함께, 그의 옆 변호사석에서 재판장의 선고를 듣고 싶었다. 법관이 '항소를 기각한다'거나 '피고인은 무죄'라는 말을 육성으로 말하는 것을 왠지 직접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결과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항소 기각이었지만.

재판이 끝나고, 나는 법정 밖으로 소년범은 구치소 호송차로 향했다.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정말이지 그 당시 나에게는 담배가 절실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불러 낮술을 마실 수도 있었겠지만, 예정된 사건 때문에 그렇게 대담한 계획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공판 검사가 법정 밖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나를 불렀던 것은 그때였다.

"변호사님, 괜찮으시면 담배 한 대 같이 하실까요?"

깜짝 놀랐다. 지금껏 사건 상대방으로 만난 어떤 검사도 재판정 밖에 나와 사담을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판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도 억울해할 만한 사건이긴 합니다. 저도 피고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마도 간음 때문이 아니라 칼을 들고 집에 찾아간 것 때문일 거예요."

나는 검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이미 판결이 끝난 마당에 그가 어떤 위로의 말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형사 항소심이 끝난 마당에 사실 관계를 다툴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해를 피하자면, 나를 위로한 공판 검사는 피고인을 직접 수사한 수사 검사와 달리 기록으로만 범죄 피의자를 상대하기 때문에 저런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 검사는 나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나중에 개업할 때 자신의 어시스턴트 변호사로 나를 고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실제로 그 검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옷을 벗었다) 어쨌든 그는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위로하고자 노력했고, 나는 검사의 말에 다소 안도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의 변론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엔 실패했지만, 적어도 상대방인 검사를 어느 정도 움직인 것으로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판 검사에게, 위로에 적당한 감사 인사를 건네고 법정을 나왔던것 같다. 그러고는 사건을 잊었다.

이 사건 판결이 있었던 늦가을 그리고 연말이 되면 그 소년범을 떠올리곤 했다. 언젠가는 교도소에 있을 그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결국 우편으로 부치지는 못했다. 회사 컴퓨터 폴더 어느 구석에 숨어 있을 그 파일에 내가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변호인이 의뢰인인 피고인에게 사과하는 일은 극히 드문데, 사과 이후에 더 심한 추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건을 잊으려 노력했다.

언젠가 '리걸 마인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지면에 쓰기도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진짜 '리걸 마인드'가 있다면 그것은 탈북민 소년범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미안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미안(未安)한 마음이란 '남에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결과(판결)에 대하여도 편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 미안한 마음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승소와 패소를 반복하는 이 땅의 변호사들 대부분이 업보처럼 안고 있는 어떤 것이다.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고 거대한 무엇이 되어버리지만, 나는 그 미안한 마음이 바른 변호사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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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지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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