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 "마사지보다 요가 같은 위로"
『서핑하는 정신』
서핑을 배우는 순간은 고되고 귀찮기도 하고 여러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의 흐름들을 복기하게 해주지 않나, 생각했던 거죠. (2022.11.29)
예상치 못한 해변의 아파트가 생겼다. 다른 가족이 없이 돌아가신 큰이모가 남긴 유산이었다. 무난한, 별 탈 없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과도 어려움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이제이'는 그렇게 제 삶에 모습을 드러낸 아파트를 핑계 삼아 급작스럽게 연말 휴가를 내고 아파트가 있는 양양으로 떠난다. 직장생활에 묘한 염증을 느끼던 차, 어쩌면 제이에게는 번아웃이 왔을 것이다. 제이는 '생각은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만다.'(15쪽) '점점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15쪽) 그래서 떠났다. 비밀스러운 양양행이었다. 그리고 그는 겨울 바다에 동동 떠 있는 검은 물체들을 본다. 놀랍게도 그것은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소설가 한은형의 『서핑하는 정신』은 주인공 이제이가 양양에서 우연한 기회로 서핑을 배우면서 겪는 변화를 그린다. 지혜로운 말을 툭툭 내뱉는 서핑 강사 '양미'와 어딘지 다들 비밀스러운 아픔이 있는 것 같은 서핑 회원들 사이에서 제이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 앞에 놓인 파도는 과연 올라탈 수 있는 것인지 점점 선명하게 가늠하게 된다. 인생은 파도처럼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온다는 점에서 닮았으므로. 이 소설이 '온화한 웃음을 닮은 소설'이기를 바랐다는 한은형 작가는 소설을 통해 지금도 부지런히 패들링 하고 있는 사람들, 테이크 오프조차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그럼에도 파도는 언제든 다시 온다고, 우리 모두 각자의 서핑을 힘껏 해보자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서핑하는 정신이란 곧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신'이다.
'작가의 말'에 '한 번쯤은 온화한 웃음을 닮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285쪽)고 하셨죠. 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져 『서핑하는 정신』이 된 걸까, 궁금했어요.
지금껏 온화한 느낌이 드는 소설을 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썼던 인물들은 대개 갈등을 겪고 있고, 불안 속에서 무척 신경이 예민하고, 정신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좀 다른 인물을 쓰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썼던 인물들은 생각해 보면 자기 주장이 강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거든요. 반면, 이번에 쓰려고 했던 사람은 외견상으로는 사람들이랑 되게 잘 지내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인기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죠. 그런데 막상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바깥으로는 잘 말할 수 없는 사람이고요. 그런 인물을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특별히 그런 인물을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 소설을 쓰게 된 어떤 여러 정황과 맥락들이 있지만 인물에 대해서 말하자면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계기였어요. 그 친구가 사람들과 정말 잘 지내요. 친구를 남자애들도, 여자애들도 다 좋아하고요. 선생님들도 좋아했어요. 공부도 잘했고요. 그런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이렇게 지내지만 속은 몹시 힘들다고요. 물론, 정확히 이 워딩은 아니에요. 그런데 보니까 친구가 엄마한테 그런 가정 교육을 받았더라고요. 바깥에서 너의 속내를 표현하지 말아라, 사람들한테 인사 잘해라, 같은 얘기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사춘기도 없었는데요. 결국 뒤늦게 터지긴 했죠. 그 친구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흔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말하잖아요. 저는 그런 건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내성적이거나 좋은 얼굴을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바깥에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예민하지 않은 척 사는 인물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지금까지 썼던 인물과 다른 인물을 써서 소설의 톤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번아웃을 느끼는 주인공 '이제이'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서핑'이죠. 서핑이라는 소재도 흥미로웠어요.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 분명하지 않아요. 같이 불려온 것 같은데요. 말씀드렸듯 인물은 그렇게 왔고요. 서핑은 실제로 몇 년 전에 양양에 갔다가 놀랐던 경험이 있었어요. 겨울에 강릉에서 양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요. 바다에 검정색 물체들이 동동 떠 있었어요. 봤더니 서퍼들이었죠. 너무 이상했거든요. 겨울이니까 바다가 춥잖아요. 무척 추울 텐데 그런 바다에서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너무나 충만해 보였고요. 그런 게 마음에 들어왔다가 앞서 말씀드린 인물과 같이 붙어서 얘기가 시작된 거예요.
새삼스럽지만, 서핑에서 이렇게나 인생의 은유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거든요.
바다와 서핑 보드와 서퍼라는 것을 통해 인생을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되게 많아요. 근데 이건 제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에요. 너무나 평범하고, 많이들 생각하는 건데요. 서핑 소설을 이왕 쓰기로 했으니까 이런 것들을 더 이야기하면 좋겠다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까 문장을 쓰면서 서핑에서 발견되는 메타포가 따라 나왔던 것 같아요.
서핑 소설을 쓰겠다 생각한 뒤에는 구할 수 있는 책과 볼 수 있는 영화를 섭렵했다고 하셨잖아요. 취재를 하시면서 특별히 느꼈던 서핑의 매력은 무엇이었어요?
너무 많은데요. 일단 서핑 용어 같은 것들부터 좋았어요. 저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는 경험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새로운 세계를 가면 새로운 단어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저는 좋아요. 가령 '테이크 오프(서프보드에서 일어나는 동작)'라는 말은 다른 상황에서도 쓰지만 서핑에서는 다르게 쓰잖아요. 그 용어를 보면서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는데요. 걸음마를 하기 전까지는 기다가, 한 발을 떼고,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다가 마침내 걷게 돼요. 그런 걸 서핑을 처음 배우면 다시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핑을 배우는 순간은 고되고 귀찮기도 하고 여러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의 흐름들을 복기하게 해주지 않나, 생각했던 거죠. 그밖에도 재미있는 게 많았지만요. 소설에 제가 아는 걸 다 쓸 수는 없었어요. 『서핑하는 정신』은 서핑 초보의 이야기잖아요. 제가 아는 것들은 초보보다는 거의 전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았으니까요.(웃음)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인물의 외로움, 고독함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나는 점점 더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15쪽)는 문장이 초반에 등장하죠. 이 감정이 지금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란 생각도 했어요.
제가 몇 년 전에 인스타그램을 익명으로 한 적이 있어요. 저를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요. 최대한 저를 특정할 수 없을 것들만 올렸거든요. 그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지금은 그냥 제 정체성을 드러내고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도 사람들의 삶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또 새로운 게 보이더라고요. 제이의 고독함은 그러한 저의 SNS 피로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궁금하기도 한 마음처럼 저의 복잡한 마음이 표현됐을 거예요.
결국, 보통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후반부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서 보통의 서핑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233쪽)는 문장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이 말이 참 좋았어요.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 서 보통의 서핑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므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보통 이상으로 애쓰고 보통 이상으로 힘들어하고 보통 이상으로 출근하기 싫어하는 보통의 사람. 보통으로 단순하고 보통으로 고뇌하고 보통으로 기뻐하고 보통 이하로 슬퍼하고 보통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는. _233쪽
일단 '보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요. 사실 보통의 삶이라는 게 너무나 모호하고도 불안정하고도 복잡한 개념이잖아요. 어쨌거나 최소한의, 의식주 이상의 것들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자극을 받을 수 있고 또 다음 날 몸을 일으켜 출근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는 것이라고 보통을 생각한다면, 이게 쉽지만은 않아요. '보통의 삶'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보통의 삶이 참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죠.
저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이름도, 사는 곳도, 직장도 모르지만 저 사람이 아침에 몸을 일으켜서 회사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많이 생각해요. 저만 해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데 바깥에 또 뭐가 있으면 복잡해서 머리가 잘 엉키거든요.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에요. 한 개인이 아등바등하면서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잖아요. 그렇게 해서 고작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걸 유지하기도 너무 쉽지 않고요. 평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문장을 쓰지 않았나 싶어요.
주인공 '이제이'가 서핑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들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죠.
이 소설이 약간 온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세한 얘기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들이 여기서는 잘 지내고 있지만 각각의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요. 갈등을 빚고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였잖아요. 그래서 잠시 평온할 수 있는 거죠. 사실 여기는 판타지 공간이에요. 그 사람들의 괄호 안에 있는 삶은 저마다 어마어마할 거고요. 그 내용이 약간 촌극처럼, 소프트하게 들어가 있는데요. 소설에 나오는 건 극히 일부분인 거죠.
사람들이 여행을 가거나 한 달 살기를 하는 이유가 그런 거잖아요. 현실에서 떠나 잠깐 다른 곳에 나를 놓아두기 위함이니까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잠깐의 여유나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런 삶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으니까요.
그 중, 서핑 강사 '양미'는 현실에 대해 현자 같은 말들을 하는 인물인데요. 너무 멋있었어요.(웃음)
저는 양양에 가면 서핑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보다 그걸 운영하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가요. 사람들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서 좋겠다고 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성수기, 비수기라는 게 엄연히 있고요. 성수기에도 너무나 바쁘지만 돈은 많이 못 벌 테고, 비수기는 또 비수기라 힘들겠죠. 어쨌거나 자본이 투여된 거고, 또 가족과 같이 하는 거라면 더 어렵잖아요. 굉장히 복잡한 일이란 말이죠. 그런 관점에서 인물을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가서 보면 그런 게 많이 보이기도 했고요.
그곳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월세가 올라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투자한 만큼 운영이 안 되니까 빚을 지는 사람이 생기기도 해요. 저는 그분들이 얼마나 피로할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그런 이야기가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제목이 『서핑하는 정신』이잖아요. 서핑 강사 '양미'는 서핑하는 정신을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신'(223쪽)이라고 말해요.
나에게 어떤 힘든 일이 있을 때, 타인이 해주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좋겠죠. 하지만요, 결국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건 본인의 생각인 것 같아요. 우리가 몸이 힘들 때 마사지를 받잖아요. 위축된 근육과 뼈를 타인에게 맡겨서 원래 있어야 할 적합한 자리에 놓는 것이 마사지라고 생각하는데요. 마사지에 약간 중독된 사람도 있거든요.
한편, 저는 요가가 스스로 하는 마사지라고 생각해요. 요가는 자기가 자기 몸을 움직여서 마사지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마사지가 편해요. 나는 가만히 누워 있고, 타인이 해주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보다 힘들고 귀찮고 번거로워도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더구나 몸이 힘든 것은 육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정신적인 이유도 있을 텐데요. 스스로 근육을 움직이다가 원하는 것에 가깝게 됐을 때 느끼는 효능감도 있잖아요. 저는 위로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통해 받을 수도 있지만 내가 나를 안아주거나 챙기는 행위를 통해서 힘듦이 좀 줄어들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신'에서 '스스로' 쪽에 방점이 찍혀 있는 거군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너무 다르잖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좋은지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고요. 그런 후에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은지를 생각하고,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스타벅스나 공유 오피스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데요. 소비하는 방식으로 위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밖에서 주어지는 거고, 실제로 정말 위로가 되는 쪽은 내가 뭔가를 해보는 쪽이라는 말씀처럼 들려요.
저는 돈으로 하는 위로도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책에서도 말하지만 소소하게 만 원 주고 스타벅스 굿즈를 사서 내 마음의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위로 아니겠어요. 나를 위한, 셀프 위로잖아요. 그것도 정말 좋은데요. 쇼핑을 해서 기분 좋아지는 것과 뭔가를 해서 기분 좋아지는 것 중 유효기간이 더 긴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기도 해요. 물론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죠. 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게 사는 건가?'(98쪽)라는 질문이 앞부분에 두 번 나오고요. '이게 사는 거지.'(230쪽)라는 답이 뒷부분에 두 번 나와요. 답처럼 '이게 사는 거지'라고 할 때의 장면은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플로깅을 할 때였죠. 두 장면이 얽혀서 아주 의미심장하게 읽히더라고요.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이 보통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순간순간 내가 나여서 좋다,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어 좋다, 지금 이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하는 감각들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행복'이라는 말이 어렸을 때 너무 싫었어요. 그 말이 너무 피상적으로 보였거든요. 너무 가짜 같고요. 근데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떤 기쁨들의 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그러한 순간을 지나서도 다시 그때가 떠올라서 약간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영원한 행복 같은 건 없지만 순간의 행복이라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나 싶고요. 그렇게 해야 사는 걸 견딜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원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족할 사람도 많을 테고요. 영원한 만족이라는 건 없을 거니까요. 각자의 삶 속에서 그래도 좀 더 나은 쪽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노력은 좋은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써야 했다고.'(288쪽)라고 말씀하셨어요. 공유 오피스, 한달 살기 등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들을 담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애써 담으려고 했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던 것 같은데요. 평소에 했던 생각이기도 해요. 누군가한테 얘기해본 적은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요. 우선 제가 가장 많이 접하는 공간이 공유 오피스와 같은 그런 공간이다보니까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와 있는 이유가 뭘까, 하고요. 결국, 이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다들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는데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한은형 1979년생. 2012년 소설가가 되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소설가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되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마냥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지 않는, 솔직함이 한은형의 미덕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관조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자기 자신을 풍경처럼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한은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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