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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심장, 팬덤 : 지속 가능한 덕질의 도래

'사랑'이란 중추신경으로 연결된 케이팝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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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혼란 속, 단 하나의 빛만이 선명하다. 바로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나던 그 순간이다. (2022.11.23)

위버스, 버블, 유니버스 로고케이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팬덤이 자주 언급된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화는 대부분 그토록 열정적이고 충성도 높은 팬덤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끝난다. 잘 조직된 팬덤이 열 대형 광고 부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이들이 팬덤의 원조 격인 케이팝을 자꾸 기웃거리는 탓이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집단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천지만큼 차이 나는 그때와 지금의 소비 환경이다. '대중의 소멸'은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통한다. 그 사이 부지런히 해외로 뻗어나간 케이팝은 '글로벌'이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다국적 팬들을 모았고, 이들에게는 어느새 '팬덤'이라는 그럴듯한 영어 이름도 붙었다. 요즘은 팬(Fan)에 소비자(Consumer)를 합친 팬슈머(Fansumer)라는 말도 자주 눈에 띈다. 가히 격세지감이다.

슬프게도, 그렇게 팬덤을 기웃거리는 이들의 접근 루트는 온통 오류투성이다. 이들의 궁금증이 과정이 아닌 오로지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팬덤을 향해 던져진 세상의 물음표는 오직 하나, 비즈니스만을 과녁으로 삼았다. 코로나19를 전후로 버블, 위버스, 유니버스 같은 케이팝 팬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러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의문의 바이러스 공격을 받은 전 세계가 꼼짝 못 하는 사이, 케이팝 팬덤만은 쉬지 않았다. 이제는 유물 취급 받는 피지컬 앨범 판매량이 급상승했고, '1:1 소통'을 메인 콘텐츠로 내건 플랫폼들은 연이은 승전보를 전했다. 온라인 팬 이벤트와 콘서트가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곳도 케이팝 신이었다. 쉽지 않은 시기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이겨낸 이들은 엔데믹과 함께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 한 해 월드투어를 나간 케이팝 팀만 해도 중견에서 신인급까지 수십 팀에 이른다.

이렇듯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내는 집념에 가까운 열정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결국 '팬덤'이 내는 표면적 성과가 아닌, 그 속성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수다. 케이팝의 얼굴을 비롯한 외연을 담당하는 게 아티스트와 기획사라면, 팬덤은 케이팝의 심장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중추신경계가 바로 '사랑'이다. 서로를 원하는 동안은 분명 존재하는 이 진심은 종종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외부인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를 둘러싼 모든 순간이 의미가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나 퍼포먼스는 물론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무 편견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커뮤니티 역시 새롭기 그지없는 세상 그 자체다.


케이팝포플래닛 로고

문제는 그 마음과 집단의 물리적/화학적 작동 방식이 겉핥기식 분석이나 몇 마디 말로는 절대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팬덤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100% 활용할 수 없는 뇌나, 인간의 수명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우주 저 멀리에 있는 미지의 행성과도 같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같은 팬덤 안에서도 팬 이벤트 응모나 높은 앨범 판매량을 위해 앨범 수백, 수 천장을 사는 팬이 있는가 하면,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한 기후 행동을 앞세운 케이팝 팬덤 단체 '케이팝 포 플래닛'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팬도 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탈덕기로 큰 사랑을 받은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에 등장한 대부분의 출연자는 더 이상 덕질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가 채 완성되기도 전, 한 인터뷰이는 '나의 새 덕질'이라는 설명과 함께 팬 미팅 현장 사진을 전송한다. 이 모든 상황을 시원하게 설명하고 결론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단 그 행위의 주체조차도.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혼란 속, 단 하나의 빛만이 선명하다. 바로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나던 그 순간이다. 팬덤의 핵심 에너지와 진짜 가치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엇 하나 속단할 수 없지만, 그가 하나의 목표를 가진 집단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 화살표가 옳은 방향을 가리킬 때 그 힘은 분명 더 밝고 강해진다. 팬덤 속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팬덤이 궁금한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유일한 정의이자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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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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