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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 故 강수연 배우를 추모하며

제 4화.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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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으로 이걸 하고 싶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결정은 그 당시 나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2022.11.15)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
영화감독 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일러스트_박은현 

올해 6월 말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작년에 고작 장편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이 영화제의 장편 경쟁 부분의 심사를 해버린 역사가 있다. 지나고 보니 정말 감사한 제안이었다. 

반가운 안부 전화인 줄 알았는데, 8월 말에 있는 영화제의 개막식에서 강수연 배우를 추모하는 영상을 만들 계획인데 혹시 연출을 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제안을 들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프로그래머 역시 힘든 제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그래도 내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통화로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걸 하고 싶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결정은 그 당시 나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은 올해 10월 촬영까지 계획되었던 영화가 무산되고 난 직후였다. 내 기준에서 그 프로젝트는 다소 용감한 선택이었는데, 전에 없이 비싼 외국어 과외를 하면서 1년 가까이 기다렸으나 결국 무산된 것이다. 이미 계약서도 오고 갔던 저작권자 대리인과 원작자의 마음이 돌아서서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소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내 입장에서는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과정들이 있었고, 동시에 나는 연출을 의뢰받은 사람일 뿐인 데다, 그동안 그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애썼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은 많이 상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그래서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생기고 있었다.

일단 하기로 했으니 어떤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지 생각했다.

먼저 '강수연'이라는 배우가 나온 영화를 다 보기로 했다. 이번에 처음 본 영화,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영화, 20대에 영화관에서 개봉 당시 본 영화 등등 다양하게 있었는데 우선 지금 OTT에 서비스 되고 있는 영화들의 목록과 영상 자료원의 도서관에 있는 영화의 목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검색이 되는 출연작 중에 현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영상 자료원에 있지만 프린트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어 상영을 하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보는 것이 어려웠다.

강수연이라는 배우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아역으로 시작한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강수연이라는 배우는 어떤 스타일의 감독과 어느 시절에 만나도 자신의 매력을 폭발하면서 그 안에 존재한다. 

장면마다 '헉' 소리 나게 예쁜 10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고래사냥2>은 물론이고, 2년 뒤 갓 성인이 되어 찍은 <감자>에선 억척스런 여인의 모습으로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다음 해에 나온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에서는 10대부터 40대 이후까지의 긴 시간을 거치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과 비슷한 시기 나온 영화 <그대 안의 블루> 속에는 전혀 다른 느낌의 20대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영화 <지독한 사랑>의 강수연 배우를 가장 사랑하지만, 이번에 처음 본 이두용 감독님의 <업>에서의 모습도 내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고백하건대 그 영화들 중 2022년을 살아가는,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설정이나 장면들도 있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대상화되어 있는 여성 캐릭터이지만 강수연이라는 배우가 그 모든 캐릭터나 서사의 결함을 이겨내고 존재를 빛내고 있어서 나는 홀린 듯 계속 영화를 보았다.

예를 들어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에는 오래도록 기억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그려지는 강간씬과 그 이후 주인공이 스토커이자 강간범과 함께 잘 살고 있다는 설정은 내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큰 화면으로 처음 봤을 때 놀란 마음에 급체를 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이 어린 배우는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며 연기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마구 생겼다. 그러나 이제 대답을 들을 길이 없다는 것을 실감을 하자, 그제서야 추모 영상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일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원통했다.

나는 강수연이라는 배우를 직접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다. 좀 더 부지런했다면, 더 많은 영화에 스텝으로 참여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당신의 죽음이 왜 이렇게 슬픈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추모 영상은 개막식과 여성영화인의 밤 행사에 딱 두 번 오프라인으로만 상영하는 조건으로 제작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온라인에서도 이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강수연이라는 대배우를 그리워하는 영상이고 이 장면의 주인은 누가 봐도 그 배우인데, 더 많이 보여지고 그리워할 수 있다면 좋지 않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었다. 좋은 의도로 만드는 추모 영상이라도,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고 해도 그걸 편집해서 새로운 영상을 만드는 일은, 그리고 어딘가에서 상영하는 일은 저작권자의 허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이 영화의 법적 주인을 찾아 나섰다. 결과적으로 이 작업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야 (영상 자료원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저작권자들의 소재를 파악했고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 전화로 문의한 개인 저작권자들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오히려 내가 그 작품을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면, 그 당시 일화까지 덧붙이며 강수연 배우를 기억했다.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한 경우에는 하루 꼬박 쓴 장문의 메일을 보내어 허락을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자나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였다. 

1960,70년대 영화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1980-90년대의 영화들도 회사가 망하면서 저작권을 정리하지 않았거나, 저작권자가 돌아가신 후 누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거나 아니면 그 어떤 정보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아쉽게도 그런 영화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나에게 돌아왔다.

솔직히 지금도 추모 영상을 어떻게 해야 잘 만드는지 정말 모르겠다.

추모 영상은 2분 남짓이었는데 공개하는 날 무척 떨렸다. 강수연 배우의 동생을 만나 인사를 하며 눈물이 날 뻔하고, 김지미 선생님과 내가 편집해 넣은 영화의 감독님들이 개막식에 계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서, 부디 내가 강수연이라는 배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얻은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이 개봉하고 나서, 내 영화가 나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만드는 일이 겁이 날 만큼. 어쩌면 내가 본 영화 중에 강수연 배우의 마음에 들지 않은 영화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그 당시의 배우를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강수연 배우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지나간 영화들을 잘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냥 지금 하는 작품에만 집중하느라 그렇다고 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이 되는 것. 현재의 자신을 오롯이 던져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이 남겨지는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이 이미 지나버린 것에 전전긍긍하는 겁먹은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나친 감상일 수 있겠지만, 작업을 하는 내내 강수연이라는 배우가 공들여 쓴 편지가 이미 오래전에 나에게 도착해 있었는데 이제서야 봉투를 뜯어 찬찬히 읽는 기분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너무 늦은 답장을 쓴 셈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배우이자 대선배가 남긴 그 편지가 남아있어 어리석은 후배는 마음이 힘들 때 종종 그 편지를 꺼내 읽을 것이다. 그리워하고 생각할 것이다.

더 좋은 것을 남겨야지. 

그 편지의 마음을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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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지완(영화감독)

단편 영화 <여고생이다>,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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