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친절'과 '다정'의 힘
『너만 모르는 진실』 김하연 작가 인터뷰
김하연 작가가 가진 글의 힘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우러난다. 극의 긴장감을 끌어내는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과 다정함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2022.11.01)
김하연 작가가 가진 글의 힘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우러난다. 극의 긴장감을 끌어내는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과 다정함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정하고 씁쓸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도 포기하고 싶은 오늘을 버티게 하는 건 그저 약간의 다정함이라는 희망을 목격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요즘, 『너만 모르는 진실』과 함께 작은 친절이 가진 큰 힘을 이야기 해보자.
『너만 모르는 진실』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해주세요.
작가는 주변 일들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죠. 이 소설도 그랬습니다. 일차선 도로에서 운전 중이었는데 제 차의 두 번째 앞에 택시가 서 있었어요. 남성 승객이 택시 뒷자리에서 만취한 일행을 끌어내려고 고군분투 중이었고요. 저는 답답한 마음에 경적을 울렸고, 남성 승객은 당연히 제 앞차가 경적을 울렸다고 생각하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앞차 운전자가 내리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어요. 앞차 운전자께도 죄송했고, 만약 그분이 차에서 내려서 싸움이라도 벌어졌다면 하는 불행한 상상들이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 끝에는 항상 이런 의문이 남았어요. 그 싸움으로 정말 나쁜 일이 벌어졌다면 나에게는 잘못이 없을까. 법적인 책임은 없을지라도 양심의 문제가 남으니까요. 이 미묘한 문제를 소설에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필하는 동안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시작부터 결말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어떤 형식을 취해야 그런 결과가 나올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초고에서는 '제갈윤'의 편지 네 통이 모두 등장했어요. 하지만 긴 편지들이 네 번이나 나오니까 속도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을 때 신문 장면으로만 이루어진 외국 드라마를 보게 됐어요. 사건이 직접 묘사되지 않는데도 신문실의 분위기가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더라고요. 그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어 선생님이 학생들을 차례로 신문하며 과거 사건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 판단은 독자분들의 몫이지만 초고보다는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성규와 우진, 소영과 동호, 그리고 제갈윤까지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인물을 그리면서 의도한 바가 있었나요?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죠. 하지만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숨겨진 세계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밝고 선하고 이타적인 세계를 드러내며 살아가지만,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어두운 세계에 숨어 있던 야수가 튀어나와요. 소영의 엄마가 그렇게 친했던 제갈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보여 주는 행동처럼요. 인간이 숨기려고 애쓰는 이기심, 회피, 질투 같은 감정들을 생생하게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만일 내 곁에 제갈윤처럼 기댈 곳 없이 괴로움을 혼자 삭이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요?
사실 타인의 속마음을 완전히 알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갈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듯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을 좀 더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 곁에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제갈윤이 끝내 듣지 못했던 말, "내가 같이 있을게"라고 속삭여 주고 싶네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양심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있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지금까지 양심의 목소리대로 살아왔나 돌아보게 되네요.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그렇지 못한 순간도 있었어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양심을 마음속의 삼각형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면 그 삼각형이 돌아가며 마음을 찌른다고요.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야 마음의 고통도 없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겠죠.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을 때 그 사람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자신은 알 수 있겠죠.
창작노트에서 "타인을 향한 작은 친절과 다정함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작가님이 겪어보신 작은 친절과 다정함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소소하지만 가장 최근 일이 생각나네요. 올해 제주도에서 열린 릴레이 북콘서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5월부터 12월까지 제주 시민들이 추천한 작가를 달마다 한 명씩 초대하는 행사였는데요. 저는 별생각 없이 5월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다 나중에 나온 초대 작가 리스트를 봤는데, 제 뒤로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님들이 나오시더라고요. 내 강연에는 아무도 안 오겠네, 하는 절망적인 심정이었는데 제주행 비행기에서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어요. 주눅 들지 말라고. 그분들이랑 같이 초대받았으면 너도 같은 급이라고. 그 다정한 응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친구의 따뜻한 말 덕분에 좋은 독자님들을 만나 무사히 북콘서트를 마친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만 모르는 진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잠깐 내려놓았다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집어드는 소설이 있잖아요. 저는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만 모르는 진실』이 독자분들께 이야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제갈윤의 죽음을 오래도록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도 이 세상의 또 다른 제갈윤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하연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리옹3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장편 동화를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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