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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5주년 특집! 꼭 만나고 싶었던 소설가 (G. 김병운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03회)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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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삶을 말끔하게 분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소설과 삶 사이의 복잡한 긴장을 버티는 노력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첫 번째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출간하신 김병운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10.27)


나는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다는 어느 오래된 격언을 새삼스레 떠올렸고, 내가 과연 엄마를 깨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든 끝내 포기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책장 한쪽에 엄마의 몫으로 남겨 둔 책을 비스듬히 꽂아 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 할 게 분명한 그 책을 보면서, 보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동시에 보이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는 듯한 모습으로 놓여 있는 그 책을 눈에 담고 또 담으면서, 내가 쓴 책이 지금의 나와 무척이나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정말이지 나 같았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병운 작가님의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 수록된 단편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을 출간하면서 김병운 작가님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꼭 나 같은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을 꼭 닮은 소설들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정체성과 당사자성, 무지와 혐오, 그리고 용기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출간하신 김병운 작가님을 모시고 해야 하는 이야기와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 김병운 편>

오은 : <책읽아웃> 5주년 특별 방송에 출연하셨어요.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김병운 : 너무 얼떨떨해요.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그래도 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 나올 급은 됐나 보다.(웃음)' 농담입니다. 

오은 : 저희가 늦게 모셨죠.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 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와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이 있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 연례행사처럼 방콕을 찾고 있다. 사실 방콕보다는 방콕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이 올해였죠.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을 듣고 싶어요. 데뷔하고 꾸준히 소설을 써온 이후 처음으로 호명된 자리이기도 했잖아요.

김병운 : 정말 기뻤어요. 그냥 다른 생각 없이 정말 기쁘다, 생각했는데요. 저의 기쁜 마음을 전화를 주신 선생님께는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전화를 끊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좋았습니다.(웃음) 

오은 : 이제 작가님께서 직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김병운 : 퀴어 소설이고요. 저의 첫 소설집으로,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둥글게 요약을 해보자면 게이 정체성을 가진 화자 '나'가 마주하는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감정이나 생각들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오은 : 책 출간 후 서면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첫 장편 때는 '후련에 가까운 시원'이었다면, 이번 책은 '섭섭에 가까운 시원'인데, 어쩌면 저는 출간을 지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요. '섭섭에 가까운 시원'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김병운 : 첫 장편이 나왔을 때는 정말 마냥 기뻤던 것 같아요. 제가 책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출간이 이루어진 것이라 출간 자체의 어떤 스펙터클 같은 것이 저한테는 컸던 것 같아요. 출간 경험이 많은 동료들이나 선생님들이 이게 지나가면 우울할 것이다, 이 시기를 잘 지나가야 한다, 라는 말도 해주었는데요.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는 이해를 못했죠. '이렇게 좋은 일인데 왜'하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이번 책을 내고 나서 그게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공감을 하고 있어요. 출간된 것이 기쁘지만 이면에 복잡하게 요동치는 어떤 마음 같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요즘 드는 생각은 제가 이번 책의 출간이 지연되는 걸 바랐던 마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출판사의 사정이나 출간 일정 같은 게 있잖아요. 때문에 여름 책이었다가 가을 책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밀리는 과정에서 하나도 조급하지 않았어요. 더 밀려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정도로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제가 조금 더 혼자 갖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들이 좀 더 제 안에 머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에요. 책이 출간되면 온전히 제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 더 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오은 : 첫 번째 책은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라는 장편이었죠. 그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에서 비어져 나오는 빽빽한 감정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에서는 장면이 보이더라고요. 이야기라는 것이 장면과 장면이 이어져 만들어낸 부피감 같은 것이라면, 단편에서는 어떤 평면적인 장면인데 그 안에 서려 있는 감정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면서 드디어 내가 발 디딜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혼비 작가님의 추천사를 인용하자면 '그가 던진 말줄임표 사이사이를 나 스스로 채워 넣는 기분'이었습니다. 작가님도 두 책 사이에 어떤 다름이 감지될 텐데요. 어떤가요?

김병운 : 쓰는 동안도 사실 차이가 있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장편과 단편의 장르적인 차이일까, 하고 생각했는데요. 조금 더 생각해 보니까 그보다는 제가 중심을 달리했던 것 같더라고요. 장편을 쓸 때는 '어떻게 하면 읽힐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매번 그렇지만,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쓰는 저보다는 읽는 사람의 입장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단편을 쓸 때는 마감 일정 때문에 어떻게 읽힐까를 생각할 여력이 많이 없기도 했고요.(웃음) 쓰는 저의 입장만 생각하기에도 너무 촉박하니까 오히려 쓰는 저한테 집중을 더 했던 것 같아요. 

또 하나의 차이라면 제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는 방향으로 많이 나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몇 마디 할 수는 있죠. 그게 근사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계속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화자를 찾을 때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자연스럽게 느끼는 화자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단편에 더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오은 : '불꽂문' 코너로 가져온 문장입니다. 『소설 보다: 봄 2022』에서 골라왔습니다. "당사자성 문제는 입장에 따라 감정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늘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한 가지 확신하는 건 한국 문학장 안에서도 당사자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확장되는 방향으로 사유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당사자들도 자신들끼리만 쓰고 읽히는 걸 원할 리 없으니까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닿지 않으면 이건 계속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너희의 이야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겠죠." 퀴어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때문에 재현의 영역에 대해서는 작가님에게도 조심스러운 부분 같습니다. 정체성이 같더라도 그 안에서의 사정은 다를 수도 있잖아요.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다름이 김병운의 소설을 추동하는 동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작가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김병운 : 정답 같은 인터뷰를 했던 것 같은데요.(웃음) 그냥 어려워하고 있다, 실패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솔직한 답변 같아요. 머리로는 당사자성을 확장하고, 우리가 우리로서 연루되고, 거기서 더 뛰어넘어보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맞는 거라고, 그걸 잊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쓰는 일로 오면 어려워져요. 정말 잘 안 돼요. 내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 엄청난 장벽처럼 다가와요. 일단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얘기를 내가 왜 하지?'라는 생각을 계속 검열처럼 하고 있죠. 그래서 포기하는 순간이 많고요. 

또, 내가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다고 나를 증명하려고 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게 되거든요. 이건 나보다 더 중요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줘야 한다, 하는 생각들과 해내고 싶다, 잘 써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 충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어떤 순간에는 포기하고, 어떤 순간에는 그럼에도 가보고요. 이런 것들이 작업하면서 반복되는 것 같아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김병운 : 이 책은 저의 '2020년 올해의 책'이었어요. 근데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아서(웃음) 말하지 못했던 책이기도 한데요. 제 독서 기록을 보니까 이 책을 2021년에도 읽고, 심지어 올해 봄에도 읽었더라고요. 너무나 좋아하는 책입니다. 제목은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이에요. 이 책은 장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데요. 에세이 같기도, 일기 같기도, 소설 같기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 복합적인 장르의 책이에요. 남성 동성애자의 일상을 적나라한 묘사와 함께 아주 내밀하고 깊숙하게 보여주고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의 위계나 외로움,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까지 담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핵심적인 질문까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에게는 이 책이 불편할 수도 있고, 어떤 분들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고요. 읽은 사람들끼리 뜨거운 온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애정을 갖고 있는 책입니다.

 


*김병운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 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와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이 있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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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병운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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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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