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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2022년 바르셀로나 도서전을 가다 (1)

김정하의 스페인 문학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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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고 번역을 시작하고 작품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에서 열리는 도서전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22.10.17)


<채널예스>에서 '김정하 번역가의 스페인 문학 여행'을 연재합니다.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5개월 남짓한 기간 지내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도서전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인해 줌 미팅도 가능했고 모든 자료를 인터넷으로 받아볼 수 있기에 새로운 작품을 찾거나 스페인 출판 관계자들과 소통을 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은 없었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수많은 출판사들이 진열해 놓은 책들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다.

스페인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고 번역을 시작하고 작품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에서 열리는 도서전에 대해 알게 되었다. 'LIBER'라는 이름의 스페인 도서전은 올해 40주년을 맞이했다. 해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번갈아가며 열린다.

서울에서 말라가까지 날아와서 짐을 푼 지 채 두 주가 지나지 않아서 다시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를 탔다. 스페인 내에서 바르셀로나로의 이동을 가볍게 생각했지만, 비행기와 호텔 등등 여행 계획은 서울에서 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비행시간은 훨씬 짧았지만...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도서전 참가를 위해 하루 일찍 4일 아침 말라가를 떠났다. 마드리드에서 열렸을 때와 바르셀로나에서 열렸을 때 모두 참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도서전에 가는 데는 별로 부담이 없었고 안내 메일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5일 아침에 스페인 광장 앞의 도서전 행사 장소에 가니 너무 한산했다. 안내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건물로 가라고 한다. 건너편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 조금 둘러보다 이상하다 싶어 첫 약속 상대인 비비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소가 바뀐 것을 이름이 비슷해서 놓쳐버린 거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4 정거장 가는 곳이라고 했다. 다행히 일찍 나와서 시간 여유는 있었다. 칠레의 기자 출신 작가이며 에이전트인 친절한 비비안이 지하철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뛰어 내려가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도착하니 비비안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의 문학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폴란드 번역가가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비비안과도 친구였다. 세상이 좁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며 함께 도서전이 열리는 Fira Barcelona로 갔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멋지게 세워진 새로운 행사장이다.

비비안은 칠레의 여러 출판사들을 대표하고 있는데, 지난여름 스페인의 Kalandraka 출판사의 저작권 업무를 맡기로 하고 여름부터 스페인에 와서 지내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출판사라 반가운 소식이었다. 예쁜 신간 그림책들을 신나게 살펴보았다. 종이로 된 책을 만져보면서 감상하는 것은 PDF로 보는 것과는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예정했던 시간을 넘기면서 책 이야기를 하고 각자 다음 미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하고서.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Anaya 출판사와의 약속이 있었다. 오랜 시간 작품을 찾아보며, 특히 마음에 끌리는 작품을 많이 만난 곳이다. 에스테르와 젬마 두 명을 함께 만나기로 했다. 에스테르는 2019년에 한번 만난 적이 있고, 젬마는 처음이다. 마드리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젬마는 사실 도서전에 올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간다고 하니 일부러 하루 출장을 나왔다고 했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고맙다고 했더니, 사무실에 하루 종일 있는 것보다 이렇게 빠져나와서 바르셀로나 여행도 하고 너무 좋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처음 저작권 팀에 와서 아직 좀 서먹한 사이였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니 편안하고 좋았다. 자기네 책을 많이 소개한 한국의 번역가를 만난 사실이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아나야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얼마 전에 수상작이 결정되어 이제 출간 준비 중인 말라가시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을 소개받았다.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좋은 일이 원하는 작품을 언제든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인데 특히 출간되기 전의 작품을 받아 볼 때는 그 기쁨이 두 배다.

반가운 만남을 뒤로 하고 행사장 안에 있는 바로 갔다. 여러 나라에서 도서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로 바도 정신없이 북적였다. 모두들 멀리 나가기보다는 행사장 안의 바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칠레 출판인 협회 대표이기도 한 비비안은 계속 칠레의 출판사 편집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한 친구가 내일 다시 만나서 작품을 주겠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간단한 식사 메뉴로 보까디요가 있다. 작은 크기의 바게트 빵 안에 하몬이나 치즈 등 여러 가지를 넣은 일종의 샌드위치다.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지만 왠지 너무 딱딱하고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오랜 시간 스페인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먹어보지 않았다. 오후 미팅도 있어서 뭔가 영양가를 생각하다 무심코 하몬 보까디요를 선택했다. 먹을 만했다. 아니 맛이 있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스페인 어디를 여행하든 걱정이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 뿌듯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미팅 몇 개를 소화하고 첫날 일정을 끝냈다. 내일을 기약하면서 행사장을 떠나 지하철을 타고 나왔다. 성가족 성당 앞으로 가서 가우디의 성당을 감상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2019년에 카탈루냐의 문학을 소개하는 라몬율 재단(Institut Ramon Llull)의 행사에 참가했을 떄 성당 내부에서 오후 내내 머물면서 저녁 미사까지 드린 적이 있다. 그날의 감동이 아직도 몸으로 느껴진다. 이번에는 입장권 예매와 긴 줄을 서서 가방 검색까지 하는 불편함을 피하고 외부를 찬찬히 감상하기로 했다. 성당이 잘 보이는 길거리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이른 저녁으로 빠에야를 주문했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음식인 빠에야는 여러 가지 해산물과 고기, 야채 등이 들어가고 샤프란으로 노란 색을 낸 쌀 요리다. 직접 요리를 해서 만든 빠에야가 가장 맛이 있다고 자부를 하지만, 그래도 스페인에 와서 몇 번은 먹어야 할 것 같은 음식이다.

성가족 성당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건축이 많이 진행되었다. 이제는 구석구석 숨겨진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은 12시에 미팅이 있었다. 아침 일찍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늦게 약속을 잡았다. 야심차게 새벽 구엘 공원의 공기를 마시기로 했다. 지난번 방문 때에 너무나도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숨도 쉬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8시 이전에 가면 무료입장에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여유 있게 산책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6시 반에 호텔을 나섰다. 늦지 않게 도착은 했지만, 슬프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규칙이 바뀌었다고 했다. 9시 반 이전에는 동네 이웃들만 들어갈 수 있고, 관광객은 표를 사더라도 9시 반 전에는 못 들어간다고 했다. 동네 주민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지라, 다음 일정에 대한 부담으로 구엘 공원 입장은 포기하고, 대신 위에 있다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바르셀로나 바다와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구엘 공원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그런데 그곳은 반려견들의 천국이었다. 사실 스페인 사람들이 키우는 반려견들은 몸집이 상당해서 애완견인지 사냥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지만 너무 순하다. 저렇게 커다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면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해본다.



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도서전장으로 향했다.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출판사인 에데베 담당자 조지아와의 만남이다. 도서전에서도 두 번 만났고, 줌으로도 여러 번 만나서 오랜 친구 같다. 오랜만의 회포를 풀고 그 사이 나온 신간들을 소개받았다.

그러고 나서 비비안이 소개해 준 칠레 편집자들과 즉석 미팅을 가졌다. 중남미는 스페인과 같이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나라별로 억양이 다르고 단어 사용도 많이 차이가 있다. 칠레의 출판사 대표가 자기의 억양을 알아 듣겠냐고 묻는다. 많이 달라서 못 알아 들을까봐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의 음악성이 더해져서 듣기 좋다고 말했다. 중남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그림의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또,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종이를 엮고 그림을 그렸다는 작품도 보았다. 그 작가의 인내심과 정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그림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PDF와 함께 작업 기법 설명서도 함께 받아보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로 치러진 바르셀로나 도서전. 주최 측 집계로 60여 개국에서 8천 5백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LIBER 홈페이지에서 이번 도서전 결산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던 중 사진 모음집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나야 부스에서 신나게 이야기를 할 때 찍혔나보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은 똑같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고 만들면서 느끼는 기쁨이 훨씬 더 큰 사람들의 모임이라 활기가 있고 생기가 넘친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나눌 수 있어서 또 다음 만남도 기대하게 된다.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멀리까지 날아가는 이 여정을 끝내고 싶지 않은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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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정하(번역가)

번역가.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인물들과 세계를 좋아했다.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어로 된 어린이책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틈이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옮긴 책으로 『도서관을 훔친 아이』,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유령 요리사』, 『빵을 굽고 싶었던 토끼』,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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