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우리 엄마가 SNS 인플루언서라면? (G. 정이현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99회) 『하트의 탄생』
"독자의 힘을 믿는 사람", 소설 『하트의 탄생』을 출간하신 정이현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10.13)
삭제를 결심하고 주춤주춤 앞으로 나아가던 손가락이 힘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처음. 처음이었다. 이런 위로와 다독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따뜻하게 건네준 마음들을, 잡아 준 손들을, 차마 내 멋대로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없던 걸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정이현 작가님의 소설 『하트의 탄생』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주인공 '주민'은 열다섯 살, 중학생입니다. 주민의 친구 '은결'은 블랙핑크의 제니를 닮았고요. 또 다른 친구 '조이'는 부자 부모님 덕분에 마음껏 카드를 씁니다. 주민의 엄마는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요. 이들 사이에서 주민은 생각하죠. '나는 왜 하필 나로 태어났을까?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었는데' 하고요.
정이현 작가님은 『하트의 탄생』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가 한 알갱이의 우주 먼지 입자인 것 같은데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것도 같았"던 열다섯 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소설 『하트의 탄생』을 출간하신 정이현 작가님을 모시고 가장 지금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내는 일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오은 : 먼저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소설가.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은 비구름이 몰려간 직후의 하늘, 해 있는 오후에 마시는 맥주의 첫 모금. 대개의 첫 시집. 싫어하는 것은 상처 주기를 목적으로 던져지는 질문, 가지로 만든 요리. 안경. 두려워하는 것은 속수무책의 순간. 혼자서 밥을 잘 먹는 사람이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중편 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장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산문집 『풍선』, 『작별』 등을 펴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8월에 『하트의 탄생』이 출간됐죠. 이 책의 작가 소개글을 보면 '소설을 읽고 쓰고 말하는 사람입니다'가 첫 번째 문장이에요. 읽기와 쓰기 그리고 말하기, 각각의 일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요.
정이현 :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읽는 것이고요. 가장 어려운 것은 쓰는 것이죠. 말하는 것이라면, 소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했던 건 분명해요. 그래서 소설 전문 팟캐스트의 진행도 했던 거고요. 제 소설뿐 아니라 다른 소설을 말할 자리가 있으면 가고 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많이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말은 공중에 흩어지잖아요. 흩어져 버리고 모두가 잊으면 상관이 없는데 지금은 유튜브, 팟캐스트, SNS 등으로 말한 지 한참 지나서도 내가 했나,라고 의심할 정도의 말을 다시 듣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이런 자리에도 확실히 덜 나오게 됐어요. 말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더 많이 읽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오은 : 작가님께서 직접 『하트의 탄생』이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정이현 : 외적인 소개와 내적인 소개로 나누어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외적으로는 창비 출판사의 '소설의 첫 만남'이라는 시리즈 25번째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2017년부터 1년에 한 번,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단편 세 편을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예요. 기획 의도가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 더 깊은 독서를 위한 마중물'이거든요.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평소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던 독자 분들에게 한국 소설과의 첫 만남을 주선해 주는 시리즈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내적인 소개를 드리자면, 『하트의 탄생』은 중학교 2학년인 주민이가 1인칭 화자인데요. 인플루언서인, 그래서 SNS로 물건을 파는 부모님을 두었어요. 그렇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는 학생이죠. 어느 날 엄마에게 혼이 나면서 어떤 작은 선택을 하게 되고요.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SNS 세계에 화제가 되면서 일어나는 서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이가 내가 누구인지, 나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요. 읽는 동안 그런 내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은 : 저는 이 소설에서 처음 접한 말도 있어요. '무영공', '소시액' 같은 말인데요. 이런 장면들을 포착하고, 소설이 되겠다고 느끼신 데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건가요?
정이현 : 지금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인스타그램이라는 의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잡지를 넘겨보듯이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 같아요. 또, 인플루언서도 나와 괴리된 직업을 가진 분이 아니라 훨씬 가까운 존재로 여기죠. 뭐가 떨어져서 사야 했는데 마침 여기서 공구를 하고 있네(웃음) 그러면 사볼까,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2022년의 현대 한국인들의 삶을 이루는 요소에서 이런 환경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10대들과 함께 살다 보니 알게 되는 것들도 있죠. 본인의 이야기들을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더라고요. 마치 예전에 싸이월드에 다이어리를 쓰듯이 말이에요.(웃음) 보면 일방적인 수용자인 것도 아니고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창작자가 돼요. 유튜버가 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요즘 아이들의 또래 문화의 장이고 새로운 놀이터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것들이 소설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를 끄는 거죠.
오은 : 플랫폼이 변할 뿐 거기서 10대들이 소통하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이현 : 제가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웃음) 저도 PC통신 시절부터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에요. 그때도 '왜 나는 밤을 새워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거든요. 생각해보면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현실은 되게 외로운데 마음 붙일 곳은 없고,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사이버 세상 안에서 마음을 붙이는 거죠. 제 소설적 근원은 그때 그 PC통신 모니터 앞에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뒷모습이라고 항상 생각해요. 지금의 아이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오은 : '불꽂문' 코너로 가져온 문장입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작가의 말'에서 골라왔습니다. '동시대인의 보폭으로 걷겠다는 마음만은 변한 적이 없다. 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인 것만 같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세대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사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에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소설은 시점이 늘 지금이에요. 이번 『하트의 탄생』도 마찬가지고요. 세련되게 행해지는 폭력, 그리고 도처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모멸감이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요. 동시대의 감각, 동시대성이 작가님께는 어떤 중요함을 갖는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이현 : 제가 항상 현재밖에 잘 모르는 동시대의 인간이라서 그럴 거예요. 불안전하고, 흔들리고, 실수하고, 10분 후에 후회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동시대라고 할 때, '시대'라는 건 고정불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너무나 빨리,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계속 바뀌는 게 시대 같아요. 저는 시대가 유기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떤 한때의 시각으로, '이것이 동시대성이야'라고 규정하는 건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동시대성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지금 계속 변화하고 있는 이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계속 걷고 있는 행인들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나 이 시대에 민감하게, 촉수를 내리고 감지하려는 노력에 방점을 찍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정이현 : 현재 독서 모임 사이트 '그믐'에서 함께 읽는 책이 있어요. 같이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그렇지만 매일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책을 골라서 질문을 드리고 있어요. 그 책이 아고다 크리스토프의 『문맹』이라는 책이에요.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께도 그 책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현재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은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예요. 많은 작법서가 있고, 소설가가 쓴 소설에 대한 책도 많이 있는데요. 동시대에, 같은 필드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읽었던 어떤 작법서보다 피부 안까지 와 닿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동질감을 느끼고 있어서요. 그 책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정이현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성신여대 정외과 졸업, 동대학원 여성학과 수료,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 『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풍선』, 『작별』, 『말하자면 좋은 사람』, 『상냥한 폭력의 시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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