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꾸준히 좋아하고 일하는 마음 (G. 이다혜 기자)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96회) 『퇴근길의 마음』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때 외로운 것 같아요. 나누어 지는 건 기대하지도 않고, '내가 지금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남들은 하나도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을 매일 맞부딪힌단 말이에요. (2022.10.06)
나의 커리어 목표는 단순하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래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파도가 칠 땐 파도를 타고, 파도가 없을 땐 물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다음 파도를 기다린다. 어떤 파도는 너무 거세기 때문에 타기가 어려울 테고, 어떤 파도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나를 사뿐히 들어 옮길 것이다. 그 모든 파도는 한 번 뿐이고, 결국은 모두 지나간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잔잔한 바다에서도 높은 파도에서도 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 『퇴근길의 마음』에서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제 일을 차분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요. 어떤 글에서는 질문을 얻고, 다른 글에서는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는 힌트를 얻기도 하고, 또 어떤 글에서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빌려올 수도 있었습니다. 이다혜 작가는 이 책에 앞서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출근길과 퇴근길에 주문과 마음이 필요한 이유는 일을 하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다혜 작가의 이번 에세이에도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요. 나를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일하는 법에 대하여 글을 쓴 작가를 오늘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은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 에세이스트를 모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꾸준히, 오랫동안 일하기가 목표였다"고 말하는 분이죠. 『퇴근길의 마음』을 쓴 이다혜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어서 오세요.
이다혜 : 네, 안녕하세요.
황정은 : 안녕하세요.
이다혜 : 축하드립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이) 1년 되었다고요.
황정은 : 그렇습니다. 첫 돌 방송입니다.
이다혜 : 그렇죠. 사실 오랫동안 뭘 꾸준하게 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주기가 어떻게 돌아오는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1년 채운 다음에 2년 되고 3년 되는 거여서. '1년 되었다고 얘기를 들으니까 벌써 1년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제 겨우 1년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두 가지 마음이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
황정은 : 저의 마음이 왜 거기 가 있죠? 왜 제 마음이 이다혜 작가님의 마음에 가 있죠?(웃음) 저는 그냥 계속 하고 싶어요. 그냥 계속 하고 싶습니다. 지금 좋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황정은 : 작가님 소개를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이다혜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이다혜라고 하고요. 지금 <씨네21>이라는 영화 잡지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한 게 2000년도니까 벌써 20년 좀 넘게 일을 하고 있는 셈이고. 제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은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외에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이런 일들을 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쓰기도 했는데, 크게는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들도 있고, 약간 그것들을 다 아우르는 게 제가 '일하기 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거든요.
『출근길의 주문』하고 이번에 나온 『퇴근길의 마음』이라는 책을 비롯해서, 일하기와 관련되어서 우리가 어떤 어려움들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나,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 일을 지속할 때의 마음가짐이 바뀐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우리가 다 생각하는 건 '이 일을 해보고 싶다', '하고 싶다'라는 것이잖아요. '이 자리에 가고 싶고 그 일을 할 자격을 갖고 싶다'라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일을 하다 보면 '이걸 내가 잘하고 싶다, 잘 할 수 있을까' 그 다음 단계에는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한테 사람들이 계속 이 일을 시켜줄까'라는 식으로, 일과 관련되어서 바라보는 시각들이 바뀌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황정은 : 이번에 『퇴근길의 마음』을 내셨습니다. 전작인 『출근길의 주문』을 생각나게 하는 제목인데요. 그 책이 2년 전에 출간됐죠.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고, 또 2년 동안 쌓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마음들을 이번 책에 담으신 거죠?
이다혜 : 그렇죠. 사실 그 사이에 무슨 좋은 일이 있진 않았거든요.(일동 웃음) 사실은 일하기에 대해서 쓴다는 게 엄청나게 스트레스예요. 예를 들면 제가 다른 것에 대해 쓸 때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쓸 때에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는. 근데 일에 대해서 쓸 때는, 사실은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도 평가를 받는 입장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이렇게 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사실상의 어떤 공포에 가까운 마음 같은 게 있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연차는 그냥 일을 쭉 하면 쌓이는 거지만 연차가 높아진다고 해서 일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연차가 높은 사람으로서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때도 되게 많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첫 번째 책 낼 때도 했었고. 그때 책을 낼 때는 약간 사정이 있었어요. 그 책을 그 시기에 내야 했던 사정이 좀 있어서...
황정은 : 어떤 사정이었죠?
이다혜 : 그때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죠. 그런데 일하기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회사에 있는 동안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이를테면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일하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훨씬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회사에 적(籍)을 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면 저도 눈치를 더 많이 볼 사람들이 있는 것이고, 그런 상황 속에서 저도 신경 쓸 것들을 신경 쓰면서 정리하고 넘어가야 되는 게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상황에 썼던 게 『출근길의 주문』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당시에, 모든 회사 생활이 그렇지만, 얘기할 수 있는 게 있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되게 거대하게 있단 말이에요. 얘기할 수 없는 부분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그 시기에는 '이 이야기를 지금 타이밍에 하고 싶다'라고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고. 그런 것들 중에 하나가, 우리가 말로는 할 수 있거든요.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그렇게 같이 성장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말로는 하지만, 실제로 살면서 부대끼다 보면 서로에 대한 적개감만 남는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봤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실제로 일을 하면서는 서로를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거대해진 나머지 좋았던 것들도 다 부숴버리면서 망치는 경우들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런 상황이었고. 이번에 『퇴근길의 마음』을 쓸 때에는 진짜로 주변 사람들이 노화로 인한 문제들을 겪기 시작하는 거예요.
황정은 : 저희 나이 때는 그렇습니다.
이다혜 : 그렇죠. 예를 들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든가 아니면 일과 관련해서 예전에 하지 않던 고민들을 하는 거죠. 예전에는 뭔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쓰고 싶은 게 있고, 말하고 싶은 게 있고, 열심히 하면 그에 맞는 기회들이 오는 게 굉장히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책임져야 되는 게 많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오면서부터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게 무엇이며 나한테 기대되는 게 무엇이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해야 되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이 있는 거예요.
이 외롭다라는 말을 하면 흔히 생각할 때는 사귀는 사람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거나 하면 외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제가 보면 그것과 관계없이,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때 외로운 것 같아요. 나누어 지는 건 기대하지도 않고, '내가 지금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남들은 하나도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을 매일 맞부딪힌단 말이에요. 중간 관리자가 되고 그 이후의 직급들이 그런 고민들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사실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제 얘기거든요 그게,(웃음) 그런 마음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치사하니까 그만두자'가 아니라 '지금 이런 마음이 들어도 계속해야 해'라고 결정하고 일을 이어가는 마음들에 대해서 꼭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황정은 : 작가님이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일'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래서 글의 형식이 짧은 글을 택하신 건가요?
이다혜 : 그런 것도 있고요. 이게 『퇴근길의 마음』이잖아요. 이 책 쓰면서 너무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경력이 쌓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제가 생각하는 방식도 마찬가지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배려하거나 고려해야 될 게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그래서 어려워'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지금 이걸 결정하기가 어려워' 여기서 그냥 묶여 있는 이런 단계가 너무 많아서.
가능하면 문제들을 이야기할 때 너무 깊고 복잡하게 풀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게 단순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접근을 하고 싶었고. 글도 접근성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예를 들면 여기에 실린 글 중에서 영화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거든요. 그런 글은 더 간단하게 쓰기보다는 더 길게 깊게 쓰는 게 재밌게 쓸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될 경우에는 그 이야기의 압박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는 거죠.
황정은 : 읽는 사람들이.
이다혜 : 그렇죠. 또 그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어려움을 느끼는 뉘앙스도 있어서, 일단은 길게 썼던 글을 꽤 잘라내기도 했고요. 길게 쓴 글을 아예 뺀 경우도 있고. 이 책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경우입니다.
황정은 : 퇴근길에 한 챕터씩, 한 꼭지씩, 읽기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이다혜 :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썼답니다.(웃음)
*이다혜 <한겨레> 공채로 입사, 현재 영화 전문지 <씨네21> 기자, 에세이스트, 북 칼럼니스트로 책과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바자>, <보그>를 비롯한 라이센스 잡지의 영어 번역 일을 몇 년간 했다. 글 읽기를 좋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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