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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의 짧은소설] 아무것도 돌보지 않는 사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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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는 '어쩌면 자신도 수미가 돌보는 고양이 중의 한 마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2022.09.30)


아침에 일어난 미주는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복에 찬물을 마신 뒤 짜릿한 기분을 즐겼는데, 호되게 앓은 뒤로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간단하게 씻고 나온 후에는 홍삼 진액을 마신 다음 유산균을 한 알 삼켰다. 땀 흡수가 잘되는 티셔츠를 입고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나면 출근 준비가 끝났다.

이어폰을 끼고 원룸 밖으로 나오면서 음악을 플레이시켰다. 템포가 빠른 음악과 함께 환승역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출퇴근길에 이삼십 분씩 빠르게 걷는 것도 일 년 전부터 갖게 된 습관이다. 처음에는 운동화를 따로 챙겨 다녔지만, 점차 구두에서 내려와 밑창이 두툼한 플랫 슈즈와 운동화를 즐겨 신게 되었다. 대신 사무실에 도착해서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전날보다 공기가 선선해지고 나뭇잎의 색이 변한 걸 보니 완연한 가을인 것 같았다. 출퇴근길에 피부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면 살아 있다는 것, 무사하게 살아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실감 났다. 회사에 도착하면 미주는 긴 공복을 유지하기 위해 점심시간까지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간헐적 단식을 몸에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속이 빈 것 같은 느낌을 즐기게 되었다. 몸이 가벼우니 집중력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책상 서랍의 두 번째 칸 오른쪽에는 비타민과 유산균, 홍삼, 효소를, 왼쪽에는 두통약, 소화제, 위장약, 파스를 넣어두었다. 가방 안의 파우치에도 약과 영양제를 챙겨 다녔다. 수미가 보면 어지간하다는 표정으로 웃을 것이다. 작년에 원룸에 놀러 온 수미는 싱크대 서랍 한 칸을 차지한 건강 보조 식품과 상비약을 보고 "여긴 완전히 약국이네"하며 놀랐다. 수미의 싱크대 옆 수납장에는 고양이 사료와 캔이 잔뜩 들어 있었다. 수미는 자기를 위해 종합 비타민 하나 사 먹지 않으면서 가방 안에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챙겨 다녔다. 수미가 사는 방식을 응원하지만 네 몸도 좀 챙기면서 살라고, 이제 우리는 청춘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수미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작년에 선물한 비타민과 유산균은 다 먹었을 것이다. 미주는 평소에 자주 접속하는 쇼핑몰에 들어가서 종합 비타민과 유산균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십 대 초반까지 미주의 삶에서 건강은 주목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과 독립에 전력을 다했고, 연애는 참고서나 문제집의 한 챕터가 끝나면 나오는 미로 찾기나 숨은그림찾기처럼 이따금 등장했다. 원룸을 얻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값이 싸고 양이 많은 음식을 사 먹으며 지냈고 비타민이나 영양제는 챙겨 먹지 않았다. 2년에 한 번 정도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긴 했어도 약을 먹고 푹 자면 나았다. 가진 게 별로 없는 인생이지만 건강해서 버틸 수 있었다.

작년 가을에 외근을 나갔다가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는데, 사무실로 복귀하는 동안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후에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전부 토했다. 과음이나 숙취와 상관없이 토한 게 처음이라 어리둥절했다. 약이든 물이든 먹기만 하면 토해 버려서 퇴근 시간까지 빈속으로 버텼다. 구토가 가라앉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몸에서 열이 났다.

집에 오는 길에 약을 지어 와서 먹고 바로 누웠다. 약 기운이 도는 느낌도 없고 오한이 나서 온몸이 떨렸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속이 아파 깨고 열 때문에 끙끙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입이 바싹 마르는데도 물을 마시러 가지 못했다. 푹 자면 나을 것 같은데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지워지는 죽음과도 같은 잠이었다. 눈을 뜨니 오후 1시였다. 자는 동안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먼 곳까지 갔다가 침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오후의 햇빛이 비치는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누더기 같은 몸이라도 깨어났다는 안도감이 공기 중에 내려앉았다. 무단결근에 대한 공포감은 방에 머물지 않았다.

현실감을 회복하니 맹렬하게 진동하는 휴대폰 소리가 들렸고 미주는 무릎으로 기어가 가방 안의 휴대폰을 꺼냈다. 5통의 부재중 전화와 그보다 많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팀장님'으로 시작하는 메시지와 '양 팀장,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이야', 위에 '미주야' 이름을 부르는 메시지가 가만히 얹혀 있었다.

미주야. 같이 점심이나 하자고 전화했어. 바쁘면 다음에 먹자.

메시지와 함께 수미의 반려묘 '룰루'와 '랄라'의 사진이 여러 장 도착했다. 수미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언가 요구하지 않고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메시지에 코끝이 찡해졌다.

두 달 뒤에 연달아 야근을 하고 나서 미주는 또 앓아누웠다. 수미와의 점심 약속도 계속 미룰 정도로 바쁜 날들이었다. 그때는 아침까지 잠들지 못한 채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수액을 보며 시간이 과거 속으로 하염없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흔 살이 넘었다는 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아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싱글 라이프는 그냥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 잘 챙기며 사는 건데, 하루하루 때우는 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회사와 원룸을 오가는 자신의 삶이 사무실 한구석에 방치된 화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갖다 놨는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는 오래된 화분. 적당한 물과 햇빛, 분갈이나 영양제가 없고 오가던 사람이 물을 왕창 부어버린 뒤 다시 방치해 둔 화분. 뿌리를 뻗어갈 수 있는 공간도 별로 없고 양분을 다 빨아들여서 토양도 척박해졌고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화분,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화분이 된 것 같았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수미에게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을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을 일찍도 보낸다.

그동안 바쁘기도 하고 좀 아팠다고 하자 수미는 주말에 죽을 끓여 왔다. 죽집에서 파는 걸 배달시킬 수 있는 시대에 직접 끓인 죽을 그릇에 담아 오는 게 진귀하게 느껴졌다. 채소죽을 먹으며 수미는 자신의 고양이 룰루와 랄라에 대해 얘기했고 미주는 병원에서 나와 주문한 홍삼 진액과 눈 영양제와 종합 비타민에 대해 얘기했다.

요즘은 해독 주스도 만들어 먹어. 

웬일이야.

수미는 놀라더니 동네에서 자신이 먹이를 주던 고양이가 죽은 것과 그 고양이의 새끼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서 울어서 구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했다. 수미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유기 동물 보호 센터에서 봉사자로 활동했다.

넌 언제 쉬냐. 네 몸도 좀 챙겨.

미주의 말에 수미는 이게 쉬는 거야, 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럼 먹는 거라도 챙겨. 우리 나이엔 이런 거 먹어야 된대.

그러면서 미주가 "종합 비타민 먹어? 눈 영양제는? 유산균은?"하고 묻자 수미는 대답 없이 눈만 끔벅거렸다. 생일 선물로 몇 개 주문할게, 잘 챙겨 먹어. 미주는 자신의 주문 내역을 보여주며 몇 가지를 열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자 수미가 그거 말고 딴 선물 줘, 하면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털이 꼬질꼬질하고 겁먹은 눈동자의 고양이. 자신이 고립과 배고픔에서 구조된 건지 인간들에게 습격을 받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너무 기진해서 삶이나 죽음에 대한 감각을 잊은 듯한 생명체가 그 안에 있었다. 수미는 자신이 데려오고 싶은데 룰루와 랄라 외에 다른 고양이도 임시 보호 중이라 어렵다고 했다.

얘 잠깐만 맡아줘. 고양이 알레르기 없지?

이번에는 미주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알레르기의 방향을 따지자면 고양이보다는 돌봄 쪽이 더 힘들었다.

수미가 이건 임시 보호라고, 입양이 결정되기 전까지만 돌봐주는 거라고 했다. 수미는 '임시'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데 미주는 '보호'에만 신경이 쓰였다.

사십 대가 되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다양한 형태의 돌봄 속으로 들어갔다. 아픈 강아지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다니고, 키우는 고양이가 소파와 의자를 망쳐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며 온도와 습도, 조도를 고려해 가구 배치도 바꾸었다.

미주는 잠들 때면 하루를 무사히 마감했다는 안도감과 이런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불안 속에 덩그러니 남았다. 그 불안은 양쪽에서 미주를 끌어당겼다. 왼쪽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돈 버는 일에 써버리고 저녁에 돌아와 밥을 먹고 쉬다 잠드는 규칙적이면서도 고단한 삶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공포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이 단조로운 삶마저 예고 없이 툭 끝나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버티고 있었다. 미주는 왼쪽의 공포와 오른쪽의 두려움이 줄다리기하는 걸 느끼며 잠들거나 불면으로 넘어갔다. 불면이 지속될 조짐이 느껴지면 수면 유도제를 삼켰다. 왼쪽으로 쏠리지 않기 위해 연금과 적금을 부었고, 오른쪽으로 끌려갈까 봐 부지런히 걷고 몸에 좋은 걸 챙겨 먹었다.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포함한 게 인생이라는 걸 알았다.

미주는 혼자에 집중했고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건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독거노인이 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지만 고독사는 두려웠다. 고독사가 현대인의 운명이니 피할 수는 없겠지만, 처참한 상태가 되어 발견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건강한 때 자신의 힘으로 쇠약한 육체를 어딘가에 의탁할 수 있어야 했다.

수미는 대학 시절부터 미주를 잘 챙겼다. 집에서 소포가 오면 자신의 자취방으로 초대해 밥을 차려줬다. 오늘 저녁은 내 방에 와서 먹어. 수미는 친한 친구 둘 셋을 불러 엄마가 보내준 김치, 반찬과 함께 뜨끈한 밥을 해 먹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미주는 수미의 방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밥을 얻어먹었다.

수미는 미주만 잘 챙기는 게 아니라 주변을 두루 잘 살폈다. 학교와 고향과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친구들을 챙겼고 주말에는 봉사 활동도 다녔다. 나이가 드니 사람도 좋지만 고양이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고 했다. 그래서 보호 센터에서 룰루와 랄라를 차례로 입양해서 키웠고 고양이들을 키우다 보니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애틋해진다고 했다.

수미가 보내는 룰루와 랄라의 사진이 미주와 수미 사이를 희미하게 연결했다. 그 덕분에 안부를 주고받고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겼다. 수미는 가끔 안락사를 앞둔 동물들의 사진도 보냈다. 거기에는 이름과 나이, 성별, 특징이 적혀 있었다.

혹시 키울 마음이 생기면 얘기해. 잠깐만 돌봐줘도 괜찮고.

수미는 진지하게 덧붙였다. 미주의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보내듯 사진을 전송했다. 미주는 대충 훑어보고 말았다. 어떤 마음을 갖는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수미는 밤과 노년의 시간이 두렵지 않을까. 수미는 걱정이 없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구하고 일단 도왔다. 손과 발이 여러 개인 사람처럼 일을 벌였고, 해결하려 애썼고, 안 되는 건 자기처럼 손과 발이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수미가 돌보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경이로웠다.

일주일 뒤에 미주는 생일 선물로 종합 비타민과 홍삼 진액을 건넸다. 고양이 돌봐달라는 부탁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고 하자 수미가 괜찮다며 웃었다.

인연이 따로 있더라고. 네가 인연일지도 몰라서 말해 본 거야.

수미야. 근데 너도 좀 돌보면서 살아.

고마워. 미주야. 근데 이게 나를 돌보는 거야.

수미가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낸 뒤로 길을 걷다가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거나 담장 위를 걸어가거나 지붕 위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죽는 걸까. 어린 고양이나 큰 고양이를 본 적은 있지만 죽은 고양이는 본 적이 없었다. 미주는 홍삼이나 영양제를 구입할 때마다 수미에게 사료값을 보냈다. 돈을 보낸다는 건 노동의 대가를 나누어주는 것이므로 미주에겐 진심과 연결된 행동이었다.

'곧 생일이네. 어디에서 만날까'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수미가 '얘 기억나?'하며 사진을 보냈다.

두 발을 모으고 서 있는 고양이는 표정이 늠름하고 털에 윤기가 흘렀다.

작년에 구조했던 그 고양이야. 너한테 보여줬잖아. 

돌봄과 보살핌을 받은 고양이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 같았다. 

어때. 보고 있으니까 기운이 막 솟아나지. 

'그러네'라고 답을 보내면서 미주는 '어쩌면 자신도 수미가 돌보는 고양이 중의 한 마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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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유미(소설가)

소설가.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틈』, 『홀딩, 턴』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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