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문학동네』 첫 투고 선정작, 소설가 정은우 인터뷰
『국자전』 정은우 저자 인터뷰
『국자전』은 가장 특별한 능력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과 닮은 이야기이다. (2022.09.15)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정은우의 첫 장편 소설이 출간되었다. 시크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주인공 '국자'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유머와 세계를 대면하는 태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 『국자전』은 가장 특별한 능력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과 닮은 이야기이다. 『국자전』에는 따뜻한 유머뿐만 아니라 서늘한 비판 의식도 담겨 있다. 인간을 쓸모의 유무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기는 인간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회상을 아프도록 꼬집는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비인간적인 세태가 통쾌하게 풍자될 때, 다음을 향하는 길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2019년 등단하신 뒤로 첫 책을 내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신기하고 기뻐요. 역시 미래는 미지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단편으로 등단한 터라 독자분들에게 먼저 단편집으로 인사드리겠거니 짐작했는데, 덜컥 장편 소설부터 내놓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강의하면서 제 소개를 할 때마다 아직 나온 책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솔직히 쑥스러웠어요. 서로 인사하면서 명함을 주고받는 와중에, 아직 명함이 없다고 일일이 양해를 구하는 기분이랄까요?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능력의 설정이 흥미로운데요. 이 설정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우선 국자에게 사소해 보이면서도 치명적인 능력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통 초능력이라고 하면 염력이나 투시력을 떠올리지만, 그런 능력들은 눈에 띄는 만큼 들키기도 쉬워요. 되레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음식은 들키기 어려워요. 어떤 음식이든 입에 들어가기 전 한 번은 눈과 손을 거치고, 냄새나 외양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니, 결국 먹어봐야만 알 수 있죠. 실제로 음식은 사람의 기분을, 나아가 생각까지 바꿉니다. 울적할 때 뭘 먹어야 기분이 나아질지 고민하는 것부터 정상회담 만찬에 무슨 음식을 내놓을지 결정하는 것까지, 음식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셈이죠.
'국자'의 능력에 걸맞게 풍부한 요리 레시피들이 등장합니다. 절로 따라 할 수 있을 것같이 자세한데, 평소 요리 레시피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요리 레시피 읽는 걸 좋아합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재료들이 일련의 질서에 따라 한데 섞여 하나의 맛을 낸다는 게 신기해요. 그리고 같은 음식이라도 전통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리법이 다채로워지죠. 가령 어떤 요리사는 레몬 팬케이크를 만들 때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하지 않는데, 베이킹파우더에서 금속맛이 살짝 나기 때문이래요. 국가나 시대별로 조리법이 어떻게 다르게 서술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천사의 날갯짓처럼 밀가루를 곱게 체 치라거나 메주를 솔가지로 노래하듯 쓸면서 향을 더하라니, 무슨 주문 같죠. 레시피는 일상의 언어를 조합하여 전혀 다른 결과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요.
첫 책을 한 편의 거대한 서사를 지닌 장편 소설로 시작하셨습니다. 장편 소설을 쓰면서 느끼신 팁이나 노하우가 있을까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료나 플롯, 인물 설정이나 관계뿐 아니라 언제든 뒤엎고 다시 쓸 마음의 준비요. 자료가 있어도 시대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야 하고, 어떤 인물이 저도 미처 몰랐던 이면을 드러내면 또 수정해야 해요. 가령, 『국자전』에서 최훈은 일견 겉멋이 들고 유명세에 목을 매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도구로서 무력하게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거죠. 이런 면모를 낱낱이 드러내진 않더라도 그냥 훅 지나칠 수만은 없어요. 그러면 또 고쳐요. 고칠 때 한숨이 나오지만, 두려워하면 안 돼요. 회피하면 결국 완성할 수 없더라고요.
『국자전』에는 국자뿐만 아니라 글로리아와 최훈, 김숙녀와 어윤경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죠. 이들을 그리기 위해 참고하거나 영향받은 콘텐츠가 있을까요?
시대상으로는 소설이나 드라마, 가요나 잡지 등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사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어머니의 이야기였어요. 어머니가 김포공항에서 승무원으로 일하셨거든요.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김혜진 소설가의 『딸에 대하여』, 앨리슨 벡델의 『당신 엄마 맞아? : 웃기는 연극』 등 부모와 자식 간을 다룬 창작물을 읽으면서 국자와 미지의 관계가 단순히 개인적인 상황이 아니라 시대적 차원의 승계로 확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능력자라는 설정과 그로 인해 파생하는 문제들은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서 고려해볼 수 있었고요.
능력자가 아닌 입장에서 미지에 이입하게 되는데, 작가님께서 미지라는 인물을 통해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미지는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몰라요. 한때 무너져봤으니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고 합리화하는 대신, 그 문제와 마주하고 계속 곱씹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기억이나 선택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국자의 이야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직하면서 마주할 문제와 맞닿아 있으니까요. 어차피 집에서 나간다면 국자의 이야기도 안 들은 셈 칠 수도 있죠. 하지만 미지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식탁을 떠나지 않습니다. 비단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에요. 둘의 삶은 다르면서도 자신만의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채 함께 우리와 살아갑니다. 그 진실을 외면하면 더 괴로워져요. 물론 수용한다고 해서 편해지는 건 아닙니다. 불편해도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살아가겠다는 거죠. 그래서 미지는 다시 교단에 서보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국자전』을 쓰시는 동안 가장 쓰기 어려웠던 부분과 가장 즐겁게 썼던 부분을 알려주세요.
가장 쓰기 어려웠던 부분은 도입부였습니다. 어떤 글이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죠. 능청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설정도 함께 풀어내야 해요. 그래서 도입부만 여러 번을 고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보고 조언해주신 분들 덕분에 무사히 쓸 수 있었어요. 쓸 때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김포공항에서 국자가 고군분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정은우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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