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화려하지 않아 독보적인 캐릭터, 메간 더 스탈리온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Traumazine>
도발적인 언어 사이에 자전적 이야기를 능숙하게 섞는 솜씨는 '메간 더 스탈리온'을 흔들림 없는 주인공으로 추켜세운다. (2022.09.14)
절대 강자의 부재 하에 영미권 2020년대 여성 래퍼 지형도에는 긴장이 가득하다. 꾸준한 생명력의 니키 미나즈와 유쾌함과 파격을 두루 갖춘 카디 비의 양강 구도 사이 도자 캣이 화려한 비주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혔다. 트렌디함을 겸비한 'Best friend'의 스위티(Saweetie), 'Fantasy'를 샘플링해 원곡자 머라이어 캐리까지 대동한 'Big energy'의 라토(Latto), 보기 힘든 듀오로 활약 중인 시티 걸스(City Girls) 등 떠오르는 신예들도 만만치 않다. 이에 반해 별다른 장치 없이 탄탄한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메간 더 스탈리온'의 캐릭터는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그만큼 독보적이다.
리드 싱글로 공개된 팝 듀엣곡 'Sweetest pie'가 맨 끝자락에 위치한 것 외에 나머지를 순도 높은 힙합 트랙으로 채운 구성은 도자 캣의 <Planet Her>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살펴보면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온갖 색채를 배제한 흑백 사진에 얼굴만이 프레임 안에 위치한 아트 워크, '트라우마적 상황에서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뜻하는 제목이 암시하듯 <Traumazine>은 개인적인 고뇌에 무게가 실려 있다.
시종일관 우울하고 무거운 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흥겨운 리듬에 중독적인 훅을 주입한 'Her', 즈네 아이코와 유연하게 어우러지는 'Consistency' 등 대중적 어필을 놓치지 않는다. 부담 없는 비트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치는 한편, 마릴린 먼로, 휘트니 휴스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유명세에 고통받은 여성들과 연대 의식을 표하는 'Anxiety'가 곧 앨범을 요약한다. 도발적인 언어 사이에 자전적 이야기를 능숙하게 섞는 솜씨는 '메간 더 스탈리온'을 흔들림 없는 주인공으로 추켜세운다.
퓨처를 비롯한 여러 게스트의 출연에도 'Flip flop' 등 솔로 트랙의 위력이 우세하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메간의 매서운 랩이 지니는 굳건한 존재감, 그리고 대체로 상대를 잡아먹는 양상으로 흘러가는 탓에, 의도한 만큼 생겨나지 않는 시너지다. 다양한 협업은 자칫 음반 단위의 청취가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보이는데, 그보다는 자가 복제 느낌으로 반복하는 플로우와 추임새에서 우선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레이블과 계약 관련한 분쟁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 기습 발매한 음반은 속 시원한 돌파구보다는 묵묵한 현상 유지에 가깝다. 한창 약진해야 할 시기에 조금은 시기상조가 아닌가도 싶지만, 최선의 공격은 방어라는 이치를 일찌감치 깨달은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다행히 곳곳에 묻어 나오는 영리함과 출중한 기본기로 보아 래퍼가 뻗어나갈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아 보인다.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이주의앨범, 메간더스탈리온, MeganTheeStallion, Traumazine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Megan Thee Stallion>33,800원(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