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것들에 관하여
『사랑이 지금이라고 말한다』 한범수 교수 인터뷰
책을 읽는 독자 중 한 분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아마, 그 울림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2.09.02)
한국관광학회 회장을 역임한 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한범수 교수의 『사랑이 지금이라고 말한다』 는 기득권층이 추구하고 향유하는 물질의 삶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저자는 틈날 때마다 시와 붓글씨를 쓰고, 카메라를 메고 여행을 떠난다. 음악을 감상하다가 작곡에 빠져들고, 악기를 연주하고, 고전 소설 읽기 모임을 운영한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과 감응하고, 삶의 환희와 경이를 발견하기 위한 감성이 녹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열정과 낙관적인 태도, 꾸준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들어가 본다.
책 제목과 표지가 시집 같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사랑이 지금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를 담은 제목인지요?
이 책은 마흔 살 무렵부터 이 십여 년간 썼던 3,500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56편의 글을 골라 묶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화두로 안고 살았습니다. 뜰채로 담듯이 떠오르는 시상을 즉흥적으로 시와 에세이로 썼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사물의 움직임, 가족, 학교, 사회,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가 세월에 자연스레 녹아들었습니다. 글 전체에 흐르는 맥락은 삶이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때그때의 순간, 즉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표지 그림은 도예가이자 화가인 아내가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편집장이 선택했습니다.
사랑이 메마른 시대, 사랑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시대. 그럼에도 왜 사랑일까요? 작가님께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고, 사랑과 삶은 어떤 관계인가요?
'사랑', 가장 흔하게 쓰면서도 잘 모르는 게 사랑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입니다. 산다는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온기를 품고 살고 싶었습니다. 사노라면 잠시 메마를 수도 있고, 잠시 사치처럼 여겨지는 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가슴에 품어야 할 말. 사랑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보듬고 가야 할 온기입니다.
프롤로그에서 '틈마다 사랑을 담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틈새 사랑법'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굳이 의식하고 쓴 말은 아니지만, 평소의 생각이 자연스레 표현된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글 쓰는 시간을 정해놓고 썼던 글이 아닙니다. 눈을 뜨면서 창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썼고, 길을 가며 눈에 보이는 세상, 어둠이 깔린 시간 가슴으로 스며드는 마음을 적었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한 손가락으로 써 내려간, 말 그대로 '틈새'의 글이었습니다. 삶을, 사랑을 틈새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쓰다 보니,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되어 한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책으로 남았습니다.
삶을 사랑과 온기로 채워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과 자세가 필요할까요?
사람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리고는 없습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무엇인가 끄적거렸습니다. 이십 대에도 글 쓰는 습관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그게 시인 줄 몰랐습니다, 젊었을 때는 끼를 부리듯 어려운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읊조리듯 편안한 글로 바뀌었습니다.
굳이 누구에게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과 대화하듯 내면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소소한 일상,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상, 그 일상에서 마주하는 세상을 연결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사랑이라는 온기를 세상과 함께하며 사노라면, 내면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고 세상도 밝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과 관련해서 서른여덟 살이 가장 치열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작가님에게 가장 빛이 났던 인생의 시점은 언제였나요?
소위 '리즈 시대'라고 하면, 가장 뜨겁게 살았던 서른여덟 살 때가 떠오릅니다. 정부의 조직 개편으로 한국관광연구원(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설립하는 실무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늘 밤샘을 했고, 거북목이 되어 뜸과 침이 없으면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같은 해에 박사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하루는 새벽 4시까지 논문을 쓰고, 그다음 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논문을 썼습니다. '카지노 정책 연구', '설악산 관광특구 종합발전계획', '제주도 컨벤션 센터 건립 연구' 등 숨 가쁠 정도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고, 세상에도 흔적을 남긴 시기였습니다.
등단한 시인, 시조 시인으로서 여러 작품을 써오셨지만, 일반 대중을 만나는 첫 에세이 작업이다 보니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시집을 내고, 동인지 등 여러 곳에 시를 발표했고, 틈틈이 언론 매체에 칼럼을 쓰곤 했습니다. 그러나 에세이로 썼던 글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꽁꽁 감춰두었던 곰삭은 글이 책이 되어 세상을 만나려니,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맥락에 따라 글이 재배열되었습니다. 글을 다시 읽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렸던 흔적을 다시 찾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교열을 보면서 부족함도 많이 느꼈습니다.
세 분의 편집자가 객관적인 눈으로 본 글의 느낌, 오탈자 등을 보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작업은 희열이었습니다. 인쇄소에서 표지와 내지가 나오는 순간, 완성된 책을 받아 드는 순간, '이게 지나온 삶이구나' 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습니다.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는 독자 중 한 분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아마, 그 울림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고전을 읽으면서 썼던 서평의 분량이 제법 됩니다. 가제 『책이 힘이다』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배동진 교수,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방성호 지휘자와 함께 음악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썼던 3,500페이지의 글 중 이번에 『사랑이 지금이라고 말한다』에 발표하는 글은 극히 일부입니다. 이 글에 생명을 불어넣어 세상과 마주하는 작업을 틈나는 대로 계속하고 싶습니다. 물론 새로 쓰는 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틈새의 순간마다 계속 시와 에세이를 쓰며, 세상을 여행하면서, 독자들과 책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한범수 1959년 서울 왕십리 출생. 경기대학교 초대 관광문화대학 학장, (사)한국관광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관광개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 순수문학에 시, 문학공간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현대 시인협회 회원, 웨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자 방성호) 명예단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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