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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의 오늘 밤도 정주행] 우아한 공포 - <매드맨>

<월간 채널예스>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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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혹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될까 봐 공포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끝내 자기 자신을 끝도 없이 상처 입힌다. (2022.08.08)

일러스트_김지희 

돈 드레이퍼는 〈매드맨〉의 시즌1 1화에서 광고주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광고의 기본은 하나죠. 행복입니다. 행복이 뭔지 아십니까? 행복은 새 차의 냄새죠.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도로 옆에 있는 표지판입니다. 계속 그렇게 가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는 표지판이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는 거요.” 

‘매드맨(madman)’은 1950년대 뉴욕 매디슨가의 광고 중역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만든 은어이다. 그만큼 광고를 만드는 것에 미쳤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미치지 않고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돈 드레이퍼는 그러한 뉴욕 광고 회사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다. 물론, 이미 아름다운 아내와 딸과 아들도 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실력, 지나친 겸양과 지나친 자신감, 매력적인 언변과 종잡을 수 없는 침묵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작동한다.

돈 드레이퍼가 열거하는 것들은 그가 추구하는 게 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차가 지칭하는) 부유함은 돈 드레이퍼가 이미 쟁취했기도 하거니와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할 만하다고 느껴지지만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계속 그렇게 가도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표지판’을 언급할 때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운을 풍긴다. 그는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그토록 거칠 것 없도록 행동하면서? 그는 자신을 안심시켜 줄 만한 보증을 필요로 하는가? 운명의 여신은 그의 편인 것 같은데, 도대체 왜? ‘표지판’을 언급할 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상념에 잠긴 듯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일곱 개의 시즌, 9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다 본 후에야 나는 돈 드레이퍼가 그때 지었던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이다. 그의 삶은 매 순간 공포로 이루어져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어쩌면, 공포와 불안함을 벗어나기 위한 돈 드레이퍼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된 선택,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이 있었기에 ‘돈 드레이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 이 남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혹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될까 봐 공포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그게 아내를 수도 없이 속이거나, 계속해서 이상한 선택을 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끝내 자기 자신을 끝도 없이 상처 입힌다.(이러한 부분을 탁월하게 담아낸 〈매드맨〉의 오프닝은 아주 유명해서 〈심슨가족〉에서 패러디했을 정도이다)

돈 드레이퍼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중 하나는, 시즌4에서 메건에게 청혼하는 것이다. 돈은 갑작스럽게 ‘엄청나게 아름다운’ 25세의 비서 메건에게 청혼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에피소드에 대한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청혼 과정이 너무 비약적이라는 것이다. 맞다, 비약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비약’이 아니라 ‘도약’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을 삭제하지 않는 것,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물로 시선을 옮기는 것, 그래서 사람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것, 감각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 내가 본 미드 중에 '우아하다'라는 표현이 이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드라마는 〈매드맨〉 말고는 없다.

〈매드맨〉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모두 돈 드레이퍼의 첫 번째 아내인 베티와 관련이 되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이런 것이다. 시즌1 13화, 겨울, 자동차 안에 혼자 앉아 있는 이웃집 남자애가 창밖으로 내민 (장갑 낀) 손을 잡은 베티(베티 역시 장갑을 끼고 있다)는 제발 자신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 달라며 울먹인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게 분명한 남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내면적 억압 사이의 갈등이다. 열정과 좌절의 격렬한 파고 안에서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공포, 불안감이 이보다 더 우아하게 그려지기는 힘드리라.

〈매드맨〉이 미국에서 방영된 후, ‘베티’라는 캐릭터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베티’라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증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베티’ 캐릭터는 〈매드맨〉이 사회에 끼친 나쁜 영향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적극적인 여성상인 페기보다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베티가 더 인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때때로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으로 삶을 일구어나갔다. 나중에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살면서 많은 것을 위해 싸웠어. 그래서 끝이라는 걸 아는 거지. 나약해서가 아니야. 나한텐 선물이었어.” 

돌이켜보면 〈매드맨〉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나약하지 않았다.(반박의 여지가 없이 돈 드레이퍼는 너무나 나약했다) 돈 드레이퍼가 근무하던 광고 회사의 비서장이었던 조앤은 타고난 몸매 때문에 남성들에게 노골적인 성적 시선을 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극복하면서 결국은 한 명의 사업가로 거듭난다. 시골 출신의 비서 페기 올슨은 온갖 차별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싸워가며 유능한 카피라이터로 성장한다.

나는 앞서 베티에 대해 인격적으로 미성숙했다고 썼지만, 이 드라마 속 거의 모든 인물이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약간은 잘못된 선택과 자기 기만을 한다. 상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포용력을 보이다가도 어떤 순간이 되면 모멸적인 웃음을 내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하찮은 선택을 하고 밑바닥을 내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매드맨〉을 보면서 이렇게 메모했다. 

‘어떤 완결된 세계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세계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Person to person’이라는 제목의 파이널 에피소드(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사랑스럽고, 동시에 가장 나이브한)까지 다 보고 나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 그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파이널 에피소드의 거의 마지막에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던 돈 드레이퍼는 이렇게 말하며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를 껴안고 오열한다.

“제가 냉장고 선반에 놓인 꿈을 꾼 적이 있어요. 누가 문을 닫자 불은 꺼져버리고 밖에선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죠. 다시 누군가 문을 열면 모두 미소 짓고 있고, 절 보고 기뻐하지만 똑바로 봐주진 않죠. 절 택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문이 다시 닫히고 불이 꺼져요.”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Person to person’. 나를 이해시키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 번번이 실패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내 삶과 당신 삶의 완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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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보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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