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특집 인터뷰 - 정혜윤의 리추얼
책읽아웃 - 이혜민의 요즘산책 (274회)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좀 기분이 안 좋아도 저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제가 리추얼이라고 부르는 일들을 하거든요. (2022.07.20)
이혜민 : 오늘은 <요즘산책> 여름 특집 인터뷰 두 번째 시간인데요. 손님 한 분이 스튜디오에 와 계십니다. 어서 오세요.
정혜윤 : 안녕하세요. 저는 독립한 마케터이자 작가로 일하고 있는 정혜윤입니다.
이혜민 : 벌써 세 권의 책을 냈고, 또 독립 출판물도 몇 권 내셨죠. <요즘산책>에서 몇 번 소개하기도 했는데, 사이드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한 번 소개해 주세요.
정혜윤 : 사이드는 제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다능인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을 위한 뉴스레터 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이고요. 이름이 사이드 프로젝트여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이혜민 : 이 책은 혜윤 님이 음악을 리추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요. 음악이라는 소재를 통해 리추얼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고 유지하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리추얼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서, 이 음악이라는 자리에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자신만의 리추얼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지난 방송에서 자세히 소개를 했었어요. 혹시 아직 못 들으신 분이 있다면 꼭 듣고 와주시면 좋겠고요. 혜윤 님의 리추얼이 사실 음악만 있는게 아니죠. 제가 알고 있기로는, 모닝 루틴 한 세트가 있고 또 주기적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리추얼들을 갖고 있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혜윤 : 저는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물 마시고 이불 정리하는 것부터 하고요, 이 얘기는 제가 한 수십 번 한 것 같아요. 그다음에는 구글 홈 미니 인공 지능 스피커를 연동시켜 놓아서 제가 설정해 둔 루틴대로 음악이 나와요. 지브리를 되게 좋아해서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를 아침에 들은 지 2년이 넘었고요. 저는 ‘히사이시 조’ 음악은 진짜 잘 안 질리는 것 같아요. 노래가 흘러나오면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고요. 그 다음에 생각나는 것들을 좀 짧게 글로 써요. 그다음은 좀 선택적으로 하는데요. 요가를 할 때도 있고 아침을 만들어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근데 꼭 한 번도 빠짐없이 하는 거는 물 마시고 이불 정리하기예요. 이것만 해도 모닝 루틴을 다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혜민 : 그게 진짜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너무 큰 허들을 잡아 놓으면 매일 실패할 수밖에 없잖아요.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아지고요. 그래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걸로만 딱 정해놓고 '이것만 성공하면 난 오늘 루틴을 했다'고 생각하면 다음 날에 또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진짜 핵심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만의 루틴이 있고 리추얼이 있으면 그게 어떤 힘이 되고 어떤 도움이 될까 그런 것들이 또 궁금하실 것 같아요. 혜윤 님 같은 경우에는 리추얼의 힘을 실제로 경험한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정혜윤 : 요새 날씨가 꿉꿉해서 그런지 제 기분도 좀 꿀꿀한 거예요. 그럴 때 좀 기분이 안 좋아도 저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제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제가 리추얼이라고 부르는 일들을 하거든요. 나를 위한 꽃을 사 와서 꽃을 꽂고 음악 들으면서 글 쓰고 방 정리하고 이런 것도 전 다 리추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이 머리를 환기시켜주는 것 같아요. 너무 바쁘게 달리다가도 그 조그마한 시간들이 잠시라도 숨을 고르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리추얼을 하는 시간만큼은 제가 또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이혜민 : 많은 분들이 또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집중하고 싶을 때, 불안할 때,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도 어떤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정혜윤 : 일단 제가 만들어 둔 플레이 리스트가 꽤 여러 개 있어서 진짜 슬플 때 더 슬픈 노래 듣기도 하고요. 저는 가장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이 음악을 듣는 거예요. 멜로디가 주는 느낌도 있고 어떤 노래를 들으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가사가 주는 위로가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 몇 개를 내가 갖고 있는 것 같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제가 지브리를 너무 좋아하는데요. 사실 지브리 영화 주인공이 다 여자고 주체적이에요. 그런 것도 너무 좋은데,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희망과 씩씩하고 좀 더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 좀 위안을 받기도 하는 것 같고요.
이혜민 : 지금은 혼자서 하던 그 리추얼을 커뮤니티를 통해서 하고 있잖아요? 혼자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함께 했을 때는 무엇이 다른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정혜윤 : 저는 '밑미'라는 서비스를 만나면서 음악이 제 리추얼이었다는 걸 알게 된 케이스인데요. 제가 글을 쓸 때 음악을 틀어놓고 쓰는 습관이 있었어요. 음악을 들으면 느껴지는 감정이 글을 쓰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 음악에서 떠오르는 기억을 제가 다시 상기시키면서 쓰기도 하고, 어쩔 때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담긴 음악을 제 글에 붙이기도 하는데요. 이전 책들에 챕터마다 배경 음악을 붙여놓기도 했어요. 저한테 좋은 점이 많았다 보니까 이거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밑미'랑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 만들기'라는 리추얼을 만든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들은 음악이랑 내가 쓰는 글이 쌓이니까 개인적으로 좋아서 한 거였는데, 같이 하니까 더 좋은 게 많은 거예요. 한 달에 한 스무 명이 모여서 온라인 공간 안에서 내가 들은 음악이랑 내가 쓴 글을 공유해요. 좀 일기 같은 글이 많은데요. 음악을 들으면서 썼다 보니까 각자에게 소중한 음악이나 아니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나 괴로운 일을 쓰게 되는데 제가 태어나서 처음 해본 경험이었던 거예요. 누군가의 일기를 지속적으로 읽는 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일기를 계속 보여주진 않잖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심지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데도요. 모임의 별칭을 '융플리'라고 부르는데 '융플리' 멤버들이 한 번 들어오면 잘 안 나가요. 그 이유가 서로의 글을 읽는 게 너무 좋고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뭘 좋아하고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지금 어떤 게 고민이고 이런 걸 나누는 거예요.
일상의 조각들을 통해서 누군가를 알아가는 경험이 너무 소중한데, 또 되게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이에요. 누군가 좋은 일이 생기면 다들 댓글로 축하해 주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저도 융플리에 되게 많이 기대거든요. 융플리에는 일기를 쓰다 보니까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막 울었고 이런 이야기를 써요. 그러면 너무 따뜻한 댓글이 많이 달려요. 그래서 저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도 사실 융플리 생각이 많이 났어요. 글을 쓰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제가 이 안에서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에요.
*정혜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회사와 세계 곳곳을 유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뭔가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10년간 에이전시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 마케터로 일하다가 2020년 여름, 회사로부터 독립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마케터이자 작가로 일하며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 sideproject.co.kr를 운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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