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편집자가 그림책 작가가 됐다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 최은영 저자 인터뷰
이 책에는 그림책을 쓰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들, 창작자가 영감을 얻고 원고로 풀어내는 과정, 원고를 그림책에 잘 맞게 재구성하는 방법이 담겨 있어요. (2022.07.15)
그림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왜 그림책을 쓰려고 하는 걸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할 수 있어야지만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한 권의 그림책 안에는 총 몇 개의 장면이 들어갈까?’ 하는 그림책 쓰기 방법에 대한 궁금증, ‘내가 쓴 원고를 어떻게 출판사에 투고하면 될까?’, ‘편집자와는 어떤 소통을 해야 할까?’ 하는 출간과 관련한 기술적인 부분까지, 고민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의 저자 최은영은 15년간 여러 출판사에서 그림책을 편집해온 편집자이자 『나는 그릇이에요』, 『살아갑니다』, 『불어, 오다』, 『한숨구멍』 등 여섯 권의 그림책을 펴낸 작가이다. 편집자로 일할 때에는 창작 그림책 『마음의 집』으로 국내 최초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그림책 편집자와 그림책 작가라는 두 역할을 모두 충실히 수행해낸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그림책 쓰기에 관한 비법과 조언을 이 책에 담았다.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에는 그림책을 쓰는 사람이자 만드는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그림책 창작의 노하우가 담겨 있어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림책 강연을 해보면, 그림책과 사랑에 빠진 독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요. 그림책을 만들고 쓰는 사람으로서 매우 기쁜 일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 혹은 그림책 출판을 원하는 예비 작가들이 그림책을 볼 때, 이야기나 주제에 집중할 뿐, 그림책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은 좀 안타까웠어요. 좋은 메시지나 이야기는 사실 꼭 그림책이라는 그릇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잖아요?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일어나는 시너지가 바로 그림책의 본질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 책에는 제가 쓴 그림책 『살아갑니다』, 『불어, 오다』, 『한숨구멍』의 창작 과정이 담긴 창작 노트와 편집한 그림책 『마음의 집』, 『모두 모두 안녕하세요!』의 편집 노트가 함께 실려 있어요. 저는 그림 작가의 스케치를 받으면 그 스케치에 잘 어우러지도록 글을 수정하고, 채색 그림을 받으면 또 그에 맞게 글을 수정해요.
사실 출간 직전까지 글을 계속 매만지는 편이죠. 글과 그림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요. 이런 과정을 창작 노트와 편집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었는데, 그림책 창작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또 그림책의 독자분이 그림책을 풍성하게 즐기는 감각을 익히고, 완성도 높은 그림책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믿어요.
책을 보면, 그림책 쓰는 과정이 ‘글감을 모으고, 글을 쓰고, 장면을 구성하고, 문장을 다듬는’ 네 단계로 정리되어 있어요. 어떤 과정이 가장 즐겁다고 느끼시나요?
글감을 모으고 쓰는 단계가 가장 즐거워요. 무언가 만들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생각나는 대로 재빨리 메모해가며 글을 이어나가거든요. 하지만 즐거움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장면을 구성하는 단계부터는 스스로 글을 검토해가며 장면 장면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늘 술술 풀리는 건 아니에요. 장면 구성이 끝난 뒤 다시 읽어보니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땐 정말 괴롭지만 새 창을 열어 첫 장면부터 전부 다시 구성해봅니다. 등장인물을 추가하거나, 스토리를 바꾸기도 해요.
문장을 다듬는 단계가 되면, 책에 담고 싶은 주제를 기억하면서 허투루 쓰인 문장이나 단어가 없는지 들여다봐요. 그림책은 글이 짧기 때문에, 몇 개의 단어나 표현만 바꾸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래서 제가 가장 고심하고 집중하는 단계입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쓸데없는 표현이나 문장이 꽤 많거든요. 필요 없는 문장은 덜어내고, 명사나 형용사를 주제와 잘 연결되는 맞춤한 단어들도 바꾸고 나면 초고가 완성됩니다.
편집자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책 작가의 고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편집자는 늘 마감에 쫓기기 때문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해요. 저도 그랬고요. 보통 다섯 권에서 많게는 열 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 여러 작업이 동시에 돌아가도록 하죠. 그런데 작가의 일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요. 얼마나 비효율적이냐면, 저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한 문단의 글도 못 끝내는 때가 많아요. 그 비효율이 저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을 안겨 주곤 했어요. 너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불과 작년에야 깨달았어요. 그렇게 비효율적인 시간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라는 것을요. 제가 작가이자 편집자이다 보니, 제가 쓴 그림책을 제 손으로 편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한 그림책의 작가이자 편집자가 되는 거죠. 그럴 때면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저에게는 제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편집자로만 일할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그림책 작가에게 편집자는 의지가 되고 든든한 존재예요. 특히, 원고를 수정해야 할 때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거든요.
혼자 외로운 긴 터널을 건너는 듯해요. 그럴 때 편집자가 옆에 있다면 제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주거나 제가 놓친 지점을 짚어줄 수 있어요. 터널을 같이 걸으며 등불을 들어주는 존재인 거죠. 그림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편집자를 만나는 건, 작가에게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편집하신 그림책 『마음의 집』이 한국 창작 그림책 최초로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있을까요?
『마음의 집』의 심사평을 보면,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은 마음 깊은 곳, 닫힌 방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고, “표현, 꿈, 기억, 인용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특별하고 독창적”이며 “‘세상에 대한 시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적혀 있어요.
『마음의 집』은 철학적인 주제를 이미지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히 독창적이고 깊이가 있어요. 그림 또한 글 안에 담긴 깊이 있는 주제와 독창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가족과 연대라는 주제를 덧붙여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요. 글과 그림 모두 제각각 뛰어나지만, 한 장면에 함께 놓여 있을 때 비로소 서로가 완전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 유기성을 심사위원들이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라가치상은 작가가 아닌 작품에 주는 상이에요. 그래서 그림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편집까지 모두 심사의 대상이죠. 이 책의 디자인과 편집이 글과 그림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고,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이 아닌가 해서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책 작가라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독자님들을 만나 제가 쓰거나 만든 그림책의 후기를 들을 때, 특히 어린이 독자들의 리뷰를 전달받을 때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림책 작가로서 행복한 이유는 그저 그림책을 사랑하기 때문일 거예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림책 작가 혹은 편집자에게 그림책은 짧으니까 쓰기 편할 것 같다, 혹은 만들기 편할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해요. 하지만 그림책을 출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지 알아요.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를 출간한 뒤, 이미 활발히 창작 그림책을 내고 있는 작가님들도 이 책을 구입하셨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작업이 갈 길을 잃을 때마다 이 책을 옆에 두고 싶다고 하시면서요. 저도 책 한 권을 완성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것 같거든요. 그 과정에 제 책이 힘이 된다니 코끝이 찡해졌어요. 그러니 결코 쉽고 재미있어서 그림책을 쓰는 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힘들지만 그림책이 너무 좋아서, 그림책을 사랑해서 만들고 씁니다. 그림책 작가들은 대부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 믿어요.
편집자로서, 또 작가로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존 버닝햄의 『알도』는 어린 시절의 저를 위로하는 그림책이에요. 소심한 주인공과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오버랩되거든요. 그림책이 어른의 마음도 충분히 위로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죠. 숀 탠의 『도착』은 그림책 창작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에요. 제가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도착』의 창작 노트이자 해설서인 『이름 없는 나라에서 온 스케치』를 보면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거든요.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글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최근 인상 깊게 읽은 두 권의 책도 소개하고 싶어요. 안녕달 작가의 『눈, 물』은 혼자 캄캄한 터널 속을 걷는 창작자들이 꼭 읽어보기를 권해요. 세상에 무용해 보이는 것, 재화의 가치가 없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내는 사람들을 위로하거든요. 이수연 작가의 『내 어깨 위 두 친구』는 불행과 행복, 트라우마와 치유를 어깨 위에 앉은 검은 친구와 작은 새라는 이미지로 구현해냈어요. 주인공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의 불행까지도 끌어안으며 나아가는 과정이 매우 감동적이고 아름다습니다. 글은 주로 주인공의 생각을 전달하고, 그림은 주로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어 뛰어난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쓰고자 하는 예비 창작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에는 그림책을 쓰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들, 창작자가 영감을 얻고 원고로 풀어내는 과정, 원고를 그림책에 잘 맞게 재구성하는 방법이 담겨 있어요. 제가 실제로 책을 쓰고 편집하면서 얻은 지식들이기 때문에, 예비 작가들이 유용하게 활용하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제가 책에 쓴 내용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책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창작의 방식을 찾아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에게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주제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를 깊이 고민할수록 좋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예술 작품이 만나 완성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조 과정을 거쳐 가격이 매겨진 상품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하더라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다 함께 흥얼거릴 수 있는, 작가의 특색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시고 도전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최은영 고려대학교에서 서양사학과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창작 모임 ‘작은 새’ 동인이며, 작가이자 번역가, 기획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두 고양이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가끔 가사를 짓고, 뮤지컬 대본도 씁니다. 주요 작품으로 『일곱 개의 방』, 『한숨 구멍』, 『나는 그릇이에요』, 『불어, 오다』등이 있고, 『아이비와 신비한 나비의 숲』, 『펭귄과 바닷새들』, 『올빼미와 부엉이』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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