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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걸으며 사진 속에 담아낸 소중한 순간들

『가끔은, 느린 걸음』 김병훈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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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느린 걸음』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단면을 사진으로 담고 짧은 단상으로 기록한 에세이다. (2022.07.12)


사진가 김병훈은 디지털 사진 작업이 일반화된 요즘도 기꺼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를 통해 그만의 절제된 감성을 선보이고 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카메라를 들고 도시 곳곳을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포착한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의 장면은 살아가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삶의 의미와 정서를 전해 준다.

『가끔은, 느린 걸음』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단면을 사진으로 담고 짧은 단상으로 기록한 에세이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대를 관통해 온 그의 사진에는 세상을 관찰하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드러나 있다. 많은 날 동안 주변의 많은 것을 만나며 느꼈던 것들을 나누고자 하는 작가의 따뜻한 소망처럼, 절제된 감성과 시적인 언어로 전하는 평범한 삶의 기록이 우리의 마음을 잔잔히 두드린다.



『가끔은, 느린 걸음』은 어떤 책인지 책을 소개해 주세요.     

2006년 봄, 『느린걸음』을 출간한 후로 16년 만에 만들어진 사진 에세이 책이에요. 『느린걸음』이 세상에 나온 뒤 제가 추구하는 사진 작업의 형태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좀 더 전문적인 분야의 사진을 작업하게 되면서, 촬영하는 사진 장르가 넓어지고 사진의 규모도 커져 버렸죠.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같은 물성의 사진인데, 시간도 많이 들고, 사진을 찍고 가공하는 공정도 전보다 많이 복잡해졌어요.

『느린걸음』은 사진을 배우고 처음 시작했던 표현 방법으로 촬영하고 기록한 사진들이었지만, 이후로 다른 크기와 종류의 사진을 시간 내에 완성하는 데 쫓기다 보니 일상에서 찍은 사진들은 촬영 시기와 촬영 이유까지 잊어버릴 때가 많았죠. 그 와중에 작업한 『가끔은, 느린 걸음』은 10년 분량의 일상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완성한 것이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드는 책입니다.

도시 곳곳을 걸으며 수많은 공간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 장면들을 사진에 담으셨다고요. 어떻게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1학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어요. 늘 카메라와 필름이 가방 안에 있었고, 군 복무 시절에도 관련 업무 부서에 배치되어 끊이지 않고 사진과 접할 수 있었죠. 본격적으로 의식을 갖고 카메라 파인더를 구석구석 살피며 촬영한 건 다시 미술 대학에 진학했을 때였던 것 같네요. 다른 매체를 접하고 보니 사진이라는 매체의 매력이 정확하게 보였다고 할까요. 

목표를 정하지는 않았어요. 띄엄띄엄 쓰는 일기와 같이 작은 스케치북처럼 늘 몸에 붙이고 일상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부딪치는 것들이나 상황들, 인상이나 형태가 주는 느낌을 촬영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하셨던 생각이 궁금해요. 가령, 누구를 위해서 썼다든지, 어디까지 가 닿으면 좋겠는지 등등요.

제 기억의 일면들을 조각 맞춤하는 과정이었고, 스치듯 지나는 불분명한 장면이나 감정의 형태를 구체화하는 일이었어요. 조각들을 찾아 퍼즐을 맞춰 만들어 나가는 일과 비슷해요. 작품집 형태로 출간되는 사진가의 책은 관련 종사자나 애호가의 책장에 주로 꽂히죠. 작품집이 주는 특유의 무겁고 딱딱한 느낌이 있어요. 글에도 자상함이 없고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책은 무겁지 않고 누구나 곁에 두고 들춰 보면서 손때가 묻고 책등이 닳는 그런 책이었으면 했어요. 내용도 저 자신의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으로 와 닿는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가님께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중견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사진'을 찍으라고 말씀하시나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요.

사진가에게 '사진'에 대한 질문은 매우 고전적인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사라져 버릴 인간의 기억이나 상상, 지나가 버린 인상이기도 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적거나 그리거나 단서들을 만드는 도구 같은 것입니다. 사진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공간과 시간, 느낌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다른 매체들보다 감성적인 표현이 부족하죠. 그래서 저는 여러 매체에서 배운 방법을 사진에 맞게 변형시켜 함께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예전엔 후배들에게 이상적인 방향의 사진을 강요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저도 사진 매체 장르의 독보적인 장점과 성질에 매료되어 있을 때이니까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많은 일에 경험이 쌓이고 나니 자연스레 사진 이외의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관점에 관심을 두고 여러 표현 방법을 습득하는 것에 눈을 뜨게 되더군요. 이제는 후배들에게도 그 생각을 권유하게 되었어요. 제게 사진이란 '나의 생각, 나의 시간, 나의 생활'입니다.



'슬그머니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크고 작은 단상을 기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습관'으로 기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어요.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진과 카메라를 좋아하게 된 이상 기록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간은 기억과 추억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기억과 추억을 조금 쉽게 재생해 내고자 핸드폰에 내장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간혹 어느 시점에는 게시물과 사진을 찾아 읽거나 회상합니다. 

필름으로 촬영한 이미지들은 빠른 시간 안에 모두 세어 가며 재생해 낼 수 없기에 저는 자주 반복해서 필름을 빛에 비춰 들여다봅니다. 필름의 내용보다 일기장의 글귀보다 핸드폰의 사진을 보는 것보다 그것들을 만들고 촬영하고 쓰는 과정이 저에게 위안을 주고, 다가올 시간을 예측하고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해 주는 것 같아요.

표지의 민트 색상과 물속에 서 있는 아이 사진이 눈에 띄어요. 여름 느낌이 물씬 나고요. 표지 사진은 정말 많은 후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최종적으로 이 사진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 사진들은 서울 안의 모습들이 많아 장소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어요. 장소에 대한 단서들은 주 피사체로 등장하는 사람, 동물 그리고 사물들을 돋보이게 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최근 제 관심사가 표상적 풍경이나 담백한 감정만을 표현하는 것이라, 이번 책 표지도 무더운 날 신나게 물보라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단상이 촬영된 사진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순간에 여러 형태로 변모하는 물방울이 아이들 몸에 닿아 새로운 모양으로 부서지고 쏟아지는 태양 빛을 머금고 터지는 모습이 좋아서 결정하게 되었죠. 어떤 공간에 서로 다른 물성들이 들어와 닿고 충돌하여 만들어지는 화상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작가님의 다음 행보도 궁금합니다.

기존에 우리나라 풍경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과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어요. 이제껏 주변으로부터 제게 닿은 자극을 표현하였는데요. 앞으로는 당분간 저에 대해 관찰하고 싶어요. 제 안의 성향, 취향 등을 좀 더 정확하게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랜 후의 일이겠지만 그렇게 작업한 사진들로 제 생애 마지막 전시를 준비해 보려고요. 

장기간 정리하고 고른 극히 제한된 수량의 사진으로 전시를 구성하리라 마음먹었어요. 그때는 전시도 제가 아닌 타인에게 부탁해 보려고 합니다. 보통 이런 과제는 황혼에 접어든 시기에 구상하기 마련인데, 막상 구상해 보니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조금 이른 시절부터 계획해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전시에 쓰일 음악들도 고르고 있습니다.



*김병훈

1998년 사진작가로 데뷔한 김병훈은 지오코리아, 안그라픽스, 대한항공의 객원 사진작가로 활동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하퍼스바자코리아 등 여러 매체와 기업과 협업하였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 전시를 열었다. 2001년 개인전 ‘내겐 슬픈 것들’을 열었고, 가나아트 신진작가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2008년 ‘신목’전, 2009년 ‘초록’전, 2011년 ‘달력사진’전을 개최하면서 전통적인 흑백사진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2015년 후속 전시인 ‘유진’전을 통해 사진과 전통적인 진경산수를 결합한 새로운 시각 방식을 표현하여 주목받았다. 현재는 여러 국내외 기업과 협업하여 다양한 프로젝트와 이미지 작업에 몰두 중이며,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며 또 다른 새로운 주제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가끔은, 느린 걸음
가끔은, 느린 걸음
김병훈 저
진선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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