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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인문 PD 손민규 추천] 대세 하락, 물린 개미를 위로하는 역사책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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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군자를 목표로 했던 전근대 사회나, 부자를 목표로 하는 근현대 사회나 돈 벌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제어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인 듯하다.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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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늘어난 유동성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올려놨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자유', 'FIRE'를 외치며 투자에 투신했다. 세계 증시는 코로나 종식과 함께 안도 랠리를 이어갈 것 같았지만, 현재 자산 시장에는 악재만이 가득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살인적인 물가 상승 및 연준의 금리 인상 등등. 투자자의 환희가 탄식으로 바뀌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코스피는 고점 대비 30퍼센트 하락하기까지 1년이면 충분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돈을 번 사람이 있을 테다. 날린 사람은 더 많을 것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돈을 향한 열정은 전근대에도 비슷했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에 수록된 다양한 풍경은 조선 시대에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보편적이었다고 증언한다. 조선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유교적 이상주의로 출발했고, 성리학적 가치를 500년 동안 사회 전반에 심기 위해 애썼던 왕조다. 성리학은 성인이 되는 길을 제시한 학문이다. 부자가 아니라 도덕성과 학문적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긴 세계관이다. 조선 지배층인 양반에게는 성리학적 소양을 얼마나 갖췄느냐가 중요했는데, 특히 과거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희의 길을 좇아야 했다. 유학의 옛 성인들은 말했다. 부자가 아니라 군자가 되라고.

흥미로운 사실은 군자가 되는 길은 서울로 향했다는 점이다. 서울 부동산 불패 신화는 조선에서 시작한다. 양반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급제라는 자격을 얻어야 한다. 중국 명·청의 과거 제도에 비교했을 때, 조선 과거의 독특한 점은 정규 시험 외에도 왕족의 경사 등 다양한 이유로 비정기적인 시험이 자주 실시되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유리할까? 이런 소식을 빨리 얻을 수 있고, 시험장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서울 양반이 유리했다. 과거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기회 균등과 능력주의를 지향했지만, 사실상 한양 거주 양반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했다. 조선 시대 한양 인구는 20만 명 정도였고,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이 심하지 않았는데, 과거 합격자는 한양 양반이 휩쓸었으니, 정약용이 자손들에게 절대 한성으로부터 멀어지지 말라고 당부한 게 이해가 간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책에서 추정하기로 16세기 한양 기와집 한 채가 지금 시세로 1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나 대한민국에서나 서울에 집 장만하기란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자가로 살 수 없는 사람은 세 들어 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용하여 임대 소득으로 돈을 번 사람이 윤태연이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시세보다 싸게 10칸 집을 산 다음, 30칸까지 늘렸다. 세를 놓고 돈을 번 뒤, 집을 되팔면서 임대 소득과 시세 차익을 동시에 누렸다. 전세 사기, 재개발, 부동산 정책의 실패 등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벌어진 일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어나는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렇듯 '이한'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아니라, 먹고사니즘과 투자의 나라 조선이다. 그렇다 보니 조선 성리학의 대가 이황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다. 저자는 "한마디로 성리학을 논하는 이황도, 자산을 잘 굴리는 이황도 동일한 사람이다."(121쪽)라고 말한다. 흔히 '양반' 하면, 책상머리에서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미야지마 히로시 저 / 노영구 역 | 너머북스)의 내용을 인용해보자.



"지금까지는 양반을 지주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다시 말하면 양반이란 자기의 소유지를 전호에게 임대해주고 그 지대를 얻었을 뿐 생산 활동에서는 완전히 유리된 기생적 존재였다고 보아왔다. 이러한 양반의 이미지는 훨씬 후대에야 성립되었고, 16세기 단계의 재지양반층은 노비를 이용하여 직영지를 널리 경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농업 기술의 발전과 농지 개발에도 큰 관심을 두었다."  _『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너머북스, 2014, 93쪽

이황도 마찬가지였다. 이황은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목화 농사와 이앙법 등을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검소했다.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는 소득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이황이 평생 실천했다. 그리하여 모은 이황의 재산은? 이 책이 추정하기로 이황의 수익률은 200퍼센트! 자본주의를 위기로부터 구했으면서, 본인도 주식 투자에 능했던 케인즈.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적 사유의 길을 열며, 한편으로는 올리브 착유기를 선점해 막대한 돈을 번 탈레스. 이황도 케인스와 탈레스처럼 진리와 물질적 부를 동시에 성취한 사람이었다.

투자에 실패한 사람도 물론 많다. 빚지고 산 한양의 기와집을 1년 만에 헐값에 매도해야 했던 유만주. 벼슬을 잃고 급전이 필요해서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레버리지는 마음을 조급하게 하니, 레버리지를 쓸 때는 신중해야 할지어다. 이앙법으로 유망해진 보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잘못된 입지 선정으로 전 재산을 날려야 했던 안명관. 주도 업종이라고 다 오르는 게 아니다. 개별 종목 선정에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도 실패할 수 있다. 재무제표가 좋아 투자했건만, 임직원의 횡령으로 주가가 나락간 종목이 한두 개인가.

투기에 관한 역사적 사건으로는 주로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이 거론된다. 튤립 한 송이의 가격이 수천 배 오갔던 그 사건.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를 읽으면 조선 시대 역시 금전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3자의 입장이겠고, 당사자라면 하루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긴장의 연속일 터. 

투자 실패로 삶을 비극으로 마감한 인물을 보면, 성인군자를 목표로 했던 전근대 사회나, 부자를 목표로 하는 근현대 사회나 돈 벌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제어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인 듯하다. 대세 하락의 시기, 주식 앱은 잠시 끄고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에서 위안을 찾으면 어떨까. '나만 물린 게 아니었구나, 우리 조상도 그랬구나...' 묘하게 위안이 된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이한 저
위즈덤하우스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저 | 노영구 역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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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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