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최재천 "나는 평생 논 사람이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7월호 - 『최재천의 공부』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2022.07.01)
『최재천의 공부』. 오래전부터 꼭 쓰고 싶은 책이었다. 엄두가 안 나 시작을 못 했지만, 출판사로부터 안희경 작가와의 대담을 제안받았다. 최재천은 이미 안희경 작가가 세계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했던 책들을 읽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021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최재천과 안희경은 일곱 차례 만나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를 주제로 공부 책을 완성했다. 최재천은 인터뷰 내내 “나는 공부를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왜 스스로 공부를 못했다고 고백할까? 최재천이 생각하는 진짜 공부를 물었다.
언젠가는 꼭 쓰고 싶은 책이었다고요.
교육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꽤 됐어요. 엄두가 안 나서 쩔쩔매고 있었죠. 편집자 선생님이 안희경 작가님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책이 있었거든요. 저도 섭외하지 못한 분들을 만나 인터뷰집을 내셨던 분이라 제가 덜컥 붙들렸습니다.
대화는 어떠셨나요?
안 작가님이 술술 이야기하게끔 만드셨어요. 독특한 재주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할 이야기, 못 할 이야기를 다 해버렸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끌어내시고 정갈하고 매끄럽게 정리해 주셔서 되게 고마웠습니다.
평소 대한민국 교육에 관한 강연도 많이 하시고 칼럼도 쓰셨지요. 이 문제만큼은 꼭 다루고 싶다는 게 있었나요?
원래 제가 생각했던 제목이 있었어요. ‘교육으로 흥한 나라, 교육으로 망하다.’ 우리나라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가 되기까지, 그 바탕이 공부잖아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나라를 이만큼 성장시켰는데요. 이 공부는 적어도 20년, 3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 강단에 선 지가 30년이 넘었어요. 교육자로서 대한민국 교육계를 보면 희망이 안 보여요. 20년, 30년 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면 교육의 관점에서는 전혀 희망적이지 않거든요.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우리 세대보다 더 나아질까? 그런 확신이 안 서요. 국영수를 열심히 배우다가 바이러스에 걸려서 죽는 세상이 됐어요. 그동안 환경 교육의 중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했는데 정부가 듣지 않았죠. 이제는 코로나19 사태를 마주했으니 환경 교육을 다시 논의해야 해요. 환경 교사를 복원해야죠. ‘도서관 만들기 운동’ 덕에 웬만한 학교에 사서들이 생긴 것처럼 모든 학교에 환경 교사를 둬야 해요. 아이들이 꼭 받아야 할 교육이니까요.
『최재천의 공부』가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5만 부가 팔렸습니다. 리뷰를 찾아보니 젊은 독자들이 꽤 많더라고요. 책을 기획할 때 염두에 둔 독자가 있었나요?
엄마, 아빠, 학부모들을 생각했어요. 교육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결론은 항상 뻔하더라고요. 부모가 변해야 한다. 지금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사고가 바뀌어야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요. 그다음에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죠. 두 세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자녀 교육에 도움을 받고자 책을 읽었는데, 끝까지 읽어보니 나야말로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떤 분이 절묘한 이야기를 하나 하더라고요. 『최재천의 공부』를 읽었더니 절반은 아이들에게 잘해 주자는 이야기고, 절반은 독서를 ‘빡세게’ 하라는 말이라고. 그런데 걱정하시더라고요.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절반만 읽으면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게 하라는 이야기라서 큰일났다고요(웃음).
학교에서 강연 제안이 오면 부모님도 초대하는 조건으로 수락하신다고요.
네, 부모님들이 많이 오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강연이 끝날 때 이 이야기를 꼭 해요. 이 세상에서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가 뭐냐? 그건 바로 부모님 말씀이다. 부모님 말씀을 절대로 들으면 안 된다. 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들은 당황하시고 애들은 빵 터져요. 그러면 제가 묻죠. 자기 아이보다 키가 더 큰 부모님은 손을 들어 보시라고. 거의 전멸이에요. 아이들보다 키도 작으면서 왜 자꾸 아이들한테 강요하시냐, 그건 소용이 없다고 말씀드려요.
우리 세대랑 지금은 너무 많이 다르거든요.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 인기가 많았던 학과는 지금 아이들이 없어서 난리예요. 아이들은 20년, 30년을 내다보고 있는데 부모들이 30년 전 이야기를 하니 누가 부모 말을 듣겠어요. 절대적으로 아이들이 부모들보다 탁월해요. 묻지 마 투자, 그냥 도와주시는 게 정답이에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일단 방황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자주 하는 강연 제목이 ‘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이에요. 젊었을 때 방황은 특권이에요. 부모 품에 있을 때 방황하고 설득해야 해요.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설득하면 반드시 넘어오게 돼 있어요. 계속 찍으면 넘어옵니다. 한두 번 찍으면 자존심 때문에 안 넘어와요. 그런데 세 번 찍으면 벌써 방에 들어가서 아이에게 뭘 해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부모예요. 부모는 아이에게 긴 목줄을 걸어놓아야 해요. 긴 줄로 묶어놓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다가 아주 위험할 때는 낚아채야 해요. 곁눈으로 계속 살피다가 진짜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뛰어들어야 해요. 그 전까지는 꾹 참아야 해요.
아버지로서 최재천은 어떤 부모였나요?
저희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었는데 굉장히 엄하셨어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컸기 때문에 그게 참 싫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 결심했죠. 나는 물렁 팥죽 아빠가 되리라. 아이가 어릴 때 아내가 “애비가 돼서 좀 바로잡아주지,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자주 그랬어요. 그래도 안 했어요. 왜냐면 아들이 저보다 나아요. 그런데 제가 왜 충고를 해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죠. 제자들에게도 이래라저래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책을 다 읽은 독자가 “선생님, 그럼 제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면 됩니까? 학원을 그만 다니게 하고 생태 체험이나 자율 학습으로 돌릴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해주실까요?
길은 스스로가 찾아야 해요. 제가 어떤 길로 가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각자에게 맞는 길은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고 공부해야죠.
교수님의 삶을 쭉 짚어보면, 차선으로 선택했지만 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경험이 많습니다. 의예과를 지망했지만 재수를 하고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입학,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당시 생물학으로 최고였던 미시간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셨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을 당한 것 같아요. 딱 원했던 방향이 아니거나 전혀 원하지 않았거나, 또는 원한 것에 못 미치거나. 그랬던 게 많았어요. 그런데 선택을 당하면 그래도 되게 노력했어요. 제가 시를 좋아했고 미술을 좋아했고 문과 체질이잖아요. 그런데 영어를 좀 하니까 유학을 갈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영어를 굉장히 잘한 건 아니었거든요.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 갔을 때 한국 학생이 대학원에 서른 명쯤 있었어요. 공대니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영어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친한 친구한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리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에 큰 소리로 연습했어요. 밤이 되면 학생들이 없으니까 미친 놈처럼 영어로 떠들어댔죠. 그리고 바(bar)에 자주 갔어요. 미국 사람 한 명을 붙잡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로 다 하는 거예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랬더니 영어가 확 늘었어요.
일단 정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네요.
되게 노력했죠. 어떤 환경이 주어지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 생각해 보는 거예요. 아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당신은 적응력 하나는 끝내준다.”예요.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차선이라도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솔직한 고백도 있더라고요. 스스로 “나는 학력 세탁을 한 사람”이라고 말하셨어요.
솔직한 게 아니고 그게 저예요.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사회가 저를 너무 올려놓았어요. 저를 퍽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해 주셔서 그렇지 실제 제 모습은 별 볼 일 없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에게 너무 겸손하다고들 말하는데, 겸손한 게 아니라 제가 정말 그런 거죠. 빈말이 아니라 저는 대학생 때 공부를 안 했어요. 미국에 가서야 공부를 시작했는데 미국에서 한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어요.
공부가 아니었다고요?
너무 재밌어서, 너무 좋아서 한 거니까요. 그건 공부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당당하게 말해요. 나는 공부를 잘해 본 적이 없다, 신나게 놀았을 뿐이다. 저는 평생 논 사람이에요. 친구들이 공부할 때 학교를 빼먹고 벽제, 송추를 돌면서 계곡에 발 담그고 시 쓰고 물고기 잡으면서 놀았어요. 그러다 생태를 알고 동물이 궁금해져 신나게 놀면서 공부했어요.
우리는 공부를 너무 고통스럽게 하잖아요. 이 이야기를 잘못하면 욕을 먹는데 실제가 그래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제가 GRE 수학 시험을 만점 받은 게 소문나서 동양에서 수학 천재가 왔다고 했거든요. 우리 기준에서는 뛰어난 게 아닌데 생물학과에서는 그랬어요. 그때부터 인생이 쉬웠어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놀았으니까요. 우리 애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건 공부라고 생각 안 하고 밤새서 코딩하고 그러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추천사를 써달라는 제안이 많이 오죠? ‘최재천 교수님이 추천한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책을 홍보하는 문구도 많이 봤습니다.
정말 많이 와요.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죠. 솔직히 이야기하면 되게 고마워요. 그 덕에 제가 책을 읽고 살거든요. 저는 공격적으로 책을 읽는 편이에요. 내가 찾는 부분을 책에서 찾으면 책을 탁 덮어요. 이게 좋은 책 읽기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추천사를 쓰려면 무조건 그 책을 다 읽어야 해요.
번역서의 경우에는 아예 원서를 달라고 해요. 그러면 번역도 지적하게 돼서 참 힘든데 그래도 허투루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서울대학교에 있을 때는 학생들 추천서를 무지하게 많이 썼어요. 제가 쓸 수 있다고 판단할 정도로 아는 아이들만 써줬는데도요. 최근에 고백했지만 제가 20년 동안 하버드대학교 입학사정관을 몰래 했거든요. 추천서를 하도 많이 읽으니까 답이 나오더라고요. 일단 첫 문장에서 때려야 해요.
어떤 글이라도 첫 문장은 중요하죠.
제가 쓴 추천서를 하버드대학 입학사정관 회의에서 큰 소리로 낭독했던 일이 있었어요. 성남에 있는 외국인학교에 다닌 아이의 추천서였는데 제가 이렇게 썼어요. “이 아이는 등교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무슨 소리야, 싶죠? 아이가 다닌 학교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아서 교가가 없었어요. 학생들을 상대로 공모했는데 이 아이가 쓴 곡이 교가로 채택된 거죠. 자신이 만든 교가가 매일 학교에 울려 퍼지는데 어떻게 소름이 안 끼치겠어요? 이 학생은 굉장히 뛰어난 아이인데 하버드대학에서 안 뽑으면 어떡하느냐고 썼죠. 합격했습니다.
최재천의 글쓰기 철학이 유명하죠. 경제적으로 정확하고 우아하게. 앞의 두 개는 대략 감이 오는데, 우아한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요?
저도 되게 애쓰는 거예요. 대부분은 실패했을 거고 가끔은 우아한 글이 나올 때가 있겠죠. 글쓰기 스타일을 김훈 선생님과 고 이어령 선생님으로 나눈다면, 저는 이어령 선생님 쪽이에요. 이어령 선생님은 모니터를 여러 개 켜놓고 글을 쓰시잖아요. 저도 비슷해요. 이 문장 넣어봤다가 저 문장 끼워 넣고. 또 사전을 언제나 곁에 두고 써요. 똑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걸 피하고 너무 밋밋한 글인 것 같으면, 앞 문단과 뒤 문단을 통째로 바꿔봐요. 그러면 갑자기 글에 생기가 돌아요. 갑자기 글이 펄떡 튀죠. 글의 흐름이 너무 거칠게 읽히면 조금씩 다듬고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가 출간된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어요. 올해 개정 3판이 나오기도 했죠. 과학 소설을 비롯해 대중 과학서가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 서평 매거진 <시즌 SEASON>도 올해 1월부터 계간지로 발행되고 있고요.
첫 호가 나왔을 때 인터뷰를 했고 두 번째 호에서는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을 하나 골라 서평을 써달라고 해서 『털 없는 원숭이』를 썼어요. 이 책은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번역서로 볼 수 있어요. 대중 과학서의 효시 같은 책이기도 하죠. 이 책을 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연구실에 있었어요. 도킨스가 “저도 책을 써보려고 하는데 쓸까요?” 하니 “너도 써봐.” 해서 나온 책이 『이기적 유전자』예요. 서평을 쓰다 보니 데즈먼드 모리스로부터 받은 영향, 제가 우리나라에서 과학서를 쓰게 된 배경이 쭉 훑어지더라고요. 1999년에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오고, 같은 해 정재승 박사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출간되고 또 몇 년 후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가 나오면서 대중 과학서가 주목을 많이 받았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과학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을 끊임없이 알려야 하는 운명이 있어요. 과학을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거든요. 국회에서는 자꾸 과학 예산을 깎는데요.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미국은 연구비를 받으면 일정 부분을 대중에게 이 연구를 알리는 비용으로 써야 해요. 0.1%인가 그랬을 거예요. 저는 미국에서 그런 교육을 받고 한국에 왔기 때문에 과학을 알릴 기회가 있어서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교수 회의에서는 TV에 나왔다고 욕을 먹었죠. 그래서 제가 하루는 얼굴을 푹 숙이고 회의에서 나왔는데 복도에서 화학과 교수님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최 교수 덕분에 자연 과학이 살고 있다”고요. 진짜 혼란스러웠죠.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논리적으로 한번 생각해 봤어요. 누군가는 과학을 대중적으로 알려야 하는데 이 일을 내가 하는 것이 맞나? 당시 대한민국 수재로 불리던 물리학 교수님과 행사에서 자주 만났어요. 그분은 초를 다투는 연구를 하고 계셨는데 자꾸만 불려 나오니까 불만을 토로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연구는 몇 달을 쉬었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아요. 지금도 까치 연구를 25년째 하고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까치를 연구하는 팀이 4개 정도밖에 없어요. 그중에서 저희가 가장 오래 한 팀이고요. 저는 그래도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맞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달라졌죠. 너도나도 하겠다는 분위기가 됐어요.
2020년에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을 시작하셨어요. 구독자가 30만 명이 넘었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하셨다고요.
사실 시작은 전혀 순수하지 않았어요. 정말 돈을 벌려고 만든 거예요. 공익 재단을 만들었는데 운영이 쉽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으니까 누가 유튜브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1년 넘게 구독자가 1만 명이 안 됐는데 최근에 갑자기 터졌어요.
교육, 책, 과학, 사회 문제까지 유튜브에서 다루는 주제가 광범위합니다.
정말 놀라웠던 게 제가 올해 봄 베니스 비엔날레에 기조 강연자로 초대를 받았어요. 초청의 글을 읽으니까 거부할 수 없더라고요.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당신이 와서 에코 백신에 관해 이야기해 주면 예술가들이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자연을 보살피게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는데 베니스에 가서 한국 사람을 15명은 만난 것 같아요. 다 예술가니까 저랑 연결 고리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거의 80% 사람들의 첫인사가 “유튜브 잘 보고 있습니다.”였어요. 정말 놀랐어요. 지금 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을 만나서 인사하잖아요? 교수를 만난 표정이 아니에요. 유튜버를 보는 표정이에요(웃음).
일찍이 학생들을 위해 서재를 공개하셨잖아요. 대출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요. 유튜브를 보니까 “책은 꼭 반납하라.”고 강조하시던데요(웃음).
빌려 놓고 안 갖다 놓는 애들이 있어요.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갔을 때도 꼭 책 반납하라고 포효했는데 편집돼서 안 나갔어요.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났더니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드는 독자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제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무슨 뜻이냐면요. 과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생물학 책을 먼저 읽는 게 좋아요. 생물학은 과학 분야에서 비교적 말랑말랑하잖아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도 물론 좋지만 어려워요. 이 책을 읽고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명 없을 거예요. 생물학 책을 읽고 좀 익숙해지면 화학, 물리 이렇게 도전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맷집을 좀 키운 다음에 도전하는 거예요.
다음 책으로 벌써 써놓은 원고가 있다고요.
가제는 ‘숙론’이에요. 2년 전에 써놓았는데 한 챕터를 못 썼어요. 그 챕터에 써야 할 게 ‘토론을 잘하려면’이거든요. 노하우를 이야기해야 하는 챕터인데 이걸 아직 못 썼어요. 써야죠(웃음).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 나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실 거예요.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최재천 평생 자연을 관찰해 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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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으로 생태계를 탐구해온 최재천 교수 삶을 위한 공부를 말하다 『최재천의 공부』는 동물과 인간을 깊이 관찰해온 최재천 교수가 10여 년 전부터 꼭 쓰고 싶었던 책으로,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공부에 관한 생각을 총망라한다. 인생 전반에 걸쳐 공부가 왜 중요하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