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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새까만 마음에도 희망은 있어요"

에세이 『마음이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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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하는 일』은 나의 내면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은 빙글빙글 이어져 있다는 걸 처음 인식한 책이에요. (2022.06.21)


에세이 『마음이 하는 일』을 펴낸 오지은 작가는 인터뷰 자리에서 '희망'을 자주 말했다. 거창한 기대가 아니라, 아주 작은 가능성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희망. 실금처럼 희미한 빛은 어둠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같은 마음을 주고받고, 사막에 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오지은이 바라보는 희망이란 이런 것이다.



진흙탕에서 추는 춤이 더욱 아름답다

<월간 채널예스> '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의 연재가 끝난 지 벌써 반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난해에는 <월간 채널예스>와 <씨네21>에 칼럼을 연재하느라 여유가 없었고요. 올해는 책 작업에 매진했던 것 같네요. 출판사 ‘위고’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연재하는 칼럼은 언제 책으로 나오냐는 질문을 받고, 아직 계획이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계약을 하자고 하셨거든요(웃음). 그때부터 정신없이 책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죠.

연재한 칼럼을 모아 책으로 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새로 쓰는 것보다는 쉽겠지’라고 생각했다가 큰코다쳤어요. <씨네21> 칼럼 ‘마음이 하는 일’에 연재한 글뿐 아니라 지난 5년간 쓴 외고를 전부 모아서 다시 봤거든요. 글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기도 했어요. 작년에 쓴 글인데도 새로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연재된 칼럼과 책의 원고를 비교해서 읽었는데, 책에 실린 글이 훨씬 더 밝고 희망찬 느낌이었어요. 

요즘 제 마음이 그런가 봐요. 아마 업다운이 있겠죠. 이제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알아요. 다운의 순간이 있다고 해서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언젠가는 업의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표지가 예뻐요. 표지 그림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하셨다고요. 

화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을 정말 좋아해요. 워낙 레전드인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소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더라고요. 문득 아그네스 마틴에게 영감을 받은 작가가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구글에 ‘inspired by Agnes Martin’이라고 검색을 했는데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모아 전시를 했더라고요. 거기에 있는 그림들을 꼼꼼히 살피다가 ‘애나벨 앤드류스(Annabel Andrews)’라는 작가를 알게 됐어요. 이분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표지에 담고 싶다고 편집부에 제안을 드렸죠. 감사하게도 작가님이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그림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만의 해석인데요.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그 안에서 희망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디폴트는 마음이 다 타들어 간 상태거든요. 그런데 새까만 마음이라고 해서 희망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에요. 희망이 귀하니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죠.

“진흙탕 속에서 추는 춤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 그 정도는 겨우 알겠다(136쪽)”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제가 그런 정서를 가진 사람인가 봐요. 망했는데,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지는 않으니까요. 

서문부터 강렬했어요. 에세이를 대하는 출판계의 태도를 꼬집으며 “에세이는 용감한 문학(10쪽)”이라고 썼죠. 

홍대 여성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의외로 노래가 좋다”는 평을 들었어요. 왜 내 음악에는 항상 ‘의외로’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고민하며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는데요. 훗날 깨달았어요. 홍대에서 기타 치며 혼자 노래하는 여자 가수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있었다는 걸요. 

출판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느껴요. 에세이의 작가와 독자 모두 여성의 비율이 높잖아요. 여자들이 주로 향유하는 문화, 즉 에세이를 대하는 거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남자 주인공이 권투에 빠져 링 위에서 죽도록 싸우다가 쓰러지는 영화는 영웅 서사로 그려지지만, 가정주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을 다룬 영화는 아주 작은 소용돌이로 그칠 때가 많은 것처럼요. “에세이를 왜 읽어?”라는 말이 예전에 제가 오가며 들었던 “나는 홍대 여자 뮤지션 음악은 안 들어”라는 말과 겹쳐 들리곤 해요. ‘작금의 정치 세태에 대한 고뇌는 가치 있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소한가? 그걸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죠.



잘 쓰려면, 잘 지내야 하더라고요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밝아진 느낌을 받았어요. 캄캄한 내면에 집중하던 시선이 이제 세상을 향하고 있더라고요. 

30대 중반의 저는 알록달록한 풍선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나 계속 바라보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큰 공연장에 설 수 있을까, 어떤 편곡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팽창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죠. 하지만 팽창하는 풍선은 언젠가 터지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하잖아요. 전작에서는 풍선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마음, 두려움, 그 안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에 대해 썼던 것 같아요. 지금은 풍선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사람이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과거에 저를 무섭게 했던 것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죠. 물론 새로운 혼란이 올 수도 있겠지만요.

어디서 비롯된 마음의 변화일까요? 

그동안 너무 무서워해서 이제 그것도 지긋지긋해졌다고 할까요(웃음). 새까맣게 탄 마음도 하나의 온전한 마음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닌데요.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새삼스러워요. 옛날에는 공연장의 규모가 줄거나, 티켓이 매진되지 않으면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뮤지션은 그걸로 판단을 받으니까요. 지금은 내 음악을 아직까지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정신 승리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느껴요. 이제 바람이 빠진 채 나뭇가지에 걸린 안정적인 풍선이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작업물의 질이 낮아진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록 음악계에 ‘27세 클럽’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천재는 27세에 죽고, 무대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를 문화 예술계가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일상이 즐거우면 작업물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통념의 세계를 오랫동안 겪은 기분이에요. 저 또한 어린 마음에 누군가를 그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날카로운 작품을 내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깊이 생각했더니 제가 잠을 잘 자고, 잘 지내야 하더라고요. 객관적으로 봐도 저는 최근에 작업량이 정말 많아요. 두 매체에서 동시에 칼럼을 연재했던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죠. 그동안은 연재를 피하려고 했거든요. 언제 제 상태가 붕괴될 지 몰라서요. 요즘은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지내면 날카로운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단언컨대 저는 지난 어떤 시절보다 지금 가장 글을 잘 써요.



음악 작업은 ‘새벽 3시’에 가장 잘 된다고 했죠. 글은 주로 몇 시에 쓰나요? 

그 시간을 엄청나게 찾아다녔어요. 주변의 작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유명한 작가들이 작업에 대해 쓴 책을 많이 찾아 읽었는데요. 여기서 얻은 결론은 ‘눈 떠 있는 동안에는 무조건 작업을 한다’였어요. 깨어있는 동안 계속 작업을 해도 기한을 못 맞춰서 하루만 더 달라고 눈물의 메일을 보내는 마당에(웃음). 이제 영감이 오는 시간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열심히 쓸 뿐이죠.

올해가 ‘앨범 발매 15주년’이에요. 소감이 어떤가요? 

이 인터뷰가 나가면 팬들이 놀랄 텐데요. 15주년을 맞아 음악 일을 확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 시대에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앨범으로 다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다음 시대에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책으로 썼지만, 음악으로는 아직 표현하지 못했어요. 그걸 하기 위해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어요. 나와 동떨어진 시대에서,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을 했던 뮤지션들이 만든 작품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응답이 있겠죠. 다만 그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고요. 15년간 음악을 했으니까 이제 좋은 의미로 잠시 무대를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한 시간을 갖는 거죠.

지난 인터뷰에서 『익숙한 새벽 세시』는 ‘자신이 꿈꿔온 어른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사람’이,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는 ‘마음이 희미해진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 책은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그동안 저는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으며 살았는데요. 사실은 무척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벽을 아무리 뛰어넘고 싶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프레임’ 같은 것들이요. 『마음이 하는 일』은 나의 내면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은 빙글빙글 이어져 있다는 걸 처음 인식한 책이에요. ‘페미니즘’이나 ‘차별’, ‘혐오’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외로웠던 분들에게 이 책이 꼭 닿았으면 좋겠고요. 저와 동시대를 사는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동시대라고 하면 결국 모든 사람인가요(웃음)? 



*오지은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사람. 2007년 1집 앨범 <지은>을 발매, 이후 2집 <지은>, 3집 <3>을 냈다. 2010년 책 『홋카이도 보통 열차』를 냈고 이후 『익숙한 새벽 세시』,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그리고 『마음이 하는 일』을 냈다.




마음이 하는 일
마음이 하는 일
오지은 저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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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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