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옥혜숙 “이것도 우리가 걱정했던 질문입니다”
에세이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사실 나는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배운 게 더 많다”는 아내 프로필의 마지막 문장인데, 저는 이게 책을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 순서가 아내 그리고 저인데, 프로필 순서는 아내가 뒤로 밀려 있습니다. (2022.05.30)
프랑스 시골 마을에 사는 옥혜숙, 이상헌 부부가 결혼 30주년을 맞아 에세이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를 썼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사소했다. 작년 10월 말, 이상헌은 최백호의 노래 ‘부산에 가면’을 듣다가 문득 아내와 어릴 적부터 지나왔던 길과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더 잊히기 전에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글을 쓴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랜 기간 제네바에 거주하며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하며 2015년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를 썼던 이상헌은 생각의힘 출판사 대표에게 자비 출판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비자금을 총동원해 몇 부만 찍을 작정이었다. 대표는 일단 원고를 쓴 다음에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고 이상헌은 아내 옥혜숙을 설득해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자비 출판이 아닌 정식 출판을 하자는 대표의 제안. 마침내 설득 당한 이상헌, 옥혜숙 부부는 노란 빛깔의 에세이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를 탄생시켰다.
집필 동기가 재밌습니다. 연재를 한 것도 제안을 받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상헌 : 비 오는 쓸쓸한 이른 아침이었을 거예요. ‘부산에 가면’을 듣는데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으니, 같이 쓰면 좋겠다. 저 바다의 끝은 어차피 삶의 바깥이니 우리도 알 수 없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쪽의 삶에서 나란히 써두는 것뿐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내 분을 오래 설득하셨다고요.
이상헌 : 글을 쓰자고 하니 펄쩍 뛰더군요. 같이 쓰고 주고 받는 식으로 쓰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그래도 안된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몇 줄 썼어요. 이어서 쓰기로 했으니, 아내가 진도를 내지 못하면 나도 못 쓰게 된다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제가 힘든 것은 별일 없다는 듯이 잘 견디지만 남이 힘든 것은 두고 못 보는 아내의 약점을 ‘악의적으로’ 파고 들었죠. 그랬더니 아내는 금세 저를 불쌍히 여기고 컴퓨터 앞에 앉아 또닥또닥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쓰기 시작하자, 아내와 저는 글쓰기 '경쟁'에 돌입했지요. 얼마나 서로 몰아붙이면서 썼든지, 한 달 반 만에 초고를 마쳤습니다. 11월 초 늦은 가을비를 보면서 시작했는데, 12월말 폭설을 보며 탈고 했습니다.
옥혜숙 : 작년 10월 제 생일날 카드를 주면서 또 다른 서류 뭉치를 하나 주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선물인가 했는데 우리 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는 겁니다. 게다가 그걸 책으로 만들자며. 저는 단박에 쓸데없는 짓 한다며 뭐라고 했죠. 이걸 누가 사서 보냐고요. 그랬더니 자비로 만들어서 식구들만 돌려보면 된대요. 자기가 처음을 썼으니 읽어보고 생각 좀 해보라고 던져 놓더라고요. 제가 마음이 많이 열려있는 사람이라 포용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게 다르게 말하면 귀가 얇아서 무슨 말이던지 훅 넘어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웃음) 아무래도 이번엔 후자가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또 홀랑 넘어가서 어느새 아침에 일어나면 잠옷 바람으로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이게 출판물이 되었습니다.
이상헌 : 아내를 설득해 원고를 완성했더니 저희처럼 "대책 없는" 출판사 대표와 “젊었지만 대책 없긴 마찬가지인” 편집자님이 선뜻 정식으로 책을 출판하자고 했어요. 아내는 다시 펄쩍 뛰면서, 출판사 망하게 할 일 있냐며 손사래를 쳤죠. 사실, 저도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김병준 대표는 자신도 장사하는 사람이고 정혜지 편집자의 전문가적 소견도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우리 부부는 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옥혜숙 :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대판 싸울 뻔 했어요. 우리만 망하면 되지 왜 남까지 끌어들이냐며. 근데 출판사 대표님이랑 쑥덕쑥덕 몇 번 얘기가 오고 가더니 30대 편집자님도 찬성하셨다며 한 번 내보자고 계속 설득하길래 이젠 그냥 될 대로 되라 하고 맡겨버렸어요. 안 팔리면 우리가 다 재고를 떠 안자고 하면서요. 그게 결국 이렇게 까지 와 버렸습니다.
장정이 너무 멋진 책입니다.
이상헌 :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예쁜 책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시골에 사는 부부가 서울의 비싼 샵에 가서 매끈하게 메이크업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느낌 있죠? 좋으면서도 어색한. 우리 이름이 적혀있지만, 우리와는 상관 없는 것 같은. (웃음)
책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이상헌 : 사실 글을 적기 전에 제목부터 떠올랐어요.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돌아보는 프로젝트를 해 보자고 하니, 그럼 우리가 열한 살이었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그래서 프로젝트의 가제를 “우리는 열한 살에 만났다”로 하고, 구글 문서 공유해서 동시에 같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초고를 읽어본 지인이 리듬감을 위해서 “우리는”을 “우린”으로 바꾸자고 제안해서 단박에 오케이 했지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글의 리듬감을 중시합니다. 아내의 글이 특히 박자와 리듬이 좋습니다.
프로필은 아들이, 두 분의 일러스트는 딸이 그려줬습니다.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요?
이상헌 : 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본인 아이디어라고 하네요 (웃음). 증거가 없으니 서로 우기고 있습니다. 초고가 완성되고 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책을 낼 때도 딸이 프로필을 그려주었고, 그게 무척 좋았거든요. 게다가 이번 책은 우리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얘기이니까, 딸의 ‘흔적’도 남기고 싶었어요.
그런데 딸의 그림을 받고 보니, 아들에게도 뭘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이런 류의 글에 ‘경력’만 잔뜩 적어두는 통상적인 프로필은 전혀 안 어울릴 뿐만 아니라, 그런 통상적인 방식이 아내에게는 대단히 차별적이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엄마 아빠를 소개해 달라는 글을 써달라고 했어요. 한국말을 곧잘 하지만, 한글을 쓸 기회가 잘 없어서, 아들이 잘할 지 걱정이 되긴 했는데, 너무 잘 써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나는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배운 게 더 많다”는 아내 프로필의 마지막 문장인데, 저는 이게 책을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 순서가 아내 그리고 저인데, 프로필 순서는 아내가 뒤로 밀려 있습니다. 우리 프로필 소개의 마지막 문장은 저걸로 끝나야 된다고 해서 제가 우겨대었지요 (웃음). ‘비정상적인’ 프로필과 ‘비정상적인’ 소개 순서를 출판사가 너른 마음으로 수용해 주었습니다.
편집자님께 각별한 고마움이 있으신 거 같아요. 합이 잘 맞으셨나요?
옥혜숙 : 정혜지 편집자님은 저희와 20년 정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글에 거부감이 없으셨어요. 요즘 누가 이런 첫사랑 타령에다 80년대 학생운동이 등장하는 유물같은 스토리를 좋아하겠어요? 근데 앞부분 조금 읽으시고 어? 이거 뭐지? 하면서 책으로 내도 될 것 같다며 저희를 끊임없이 독려해 주셨어요. 게다가 책 표지는 출판사 생긴 이래로 최고로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고 해요. 이러니 자다가도 일어나서 고맙다고 절을 할 판국이랍니다. 무엇보다 말을 살갑게 하셔요.
이상헌 저자님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고 계세요. 요즘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이상헌 :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자리에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그걸 분석하고 대응책 마련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인플레이션이 겹쳐서 세계 고용이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여 초긴장 상태입니다.
타국의 생활은 어떤가요? 지금은 프랑스에 계시다고요.
옥혜숙 : 제네바에서 오래 살다가 2년 전에 프랑스 젝스 (Gex)라는 시골 마을로 이사해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국경을 넘어 제네바로 출퇴근을 하죠. 네온사인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덧 시골 생활에 적응이 되어 네온사인 대신 별을 헤며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주 1회 엠마우스라는 재활용품 판매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요. 작년에 입양한 강아지 운이와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남들이 보면 혼잣말인듯 보이지만 착한 사람한테는 다 들린다고요. (웃음)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는 열한 살에 만나 서로를 좋아했지만 고백은 못 하고, 학력고사를 보고 다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기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입니다. 각자의 글을 본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상헌 : 아내의 글은 나와 정반대입니다. 발랄하고 즉각적이지요. 차곡차곡 쌓아가는 문장이 아니라, 물총처럼 시원하게 쏟아 대는 문장입니다. 나는 글의 줄거리를 바꾸는데 대형트럭처럼 시간이 걸리지만, 아내는 총구만 돌리면 되지요. 그래서 천상 어쩔 수 없는 낙관이 배어 있습니다. 대신, 방심하면 안됩니다. 예측불허의 반전이 숨어있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내의 문장은, 그래서 “우야든동 여기서 한번 살아보자!”입니다.
옥혜숙 :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유머나 위트가 있다는 말은 종종 듣기는 했지만 전부 구어체에 비문이 많고 사투리도 자주 섞는 편이라 SNS용 짧은 글은 몰라도 장문의 책을 쓰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게다가 남편과 함께 쓰면 또 얼마나 비교가 되겠어요. 그것도 짜증나고. (웃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남편이 쓴 글을 보면서 웃었던 지점이 있어요. 신혼 살림을 막 시작하고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제가 무슨 대단한 여유와 인내심을 가지고 비주류 경제학인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처럼 썼던데 사실 진짜로 그게 뭔지 잘 몰라서 맹 하니 있었던 거거든요. 아마 지금 같으면 돈 안되는 공부한다고 등짝을 한 대 때렸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마음속 어딘가에 깊은 우물 하나가 있어, 나는 몰래 거길 찾아가 안식의 물을 퍼올 릴 수 있었다. 덥고 숨 가쁜 날이 많았지만, 목마른 날은 없었다.” 라는 이 구절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로 만나 결혼을 하고 30년을 함께 사셨어요. 서로에게 가장 고마웠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상헌 : 너무 많고 경중을 따질 수가 없어요. 그래도 굳이 물어보신다면, 그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는 법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준 것을 가장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웃음)
옥혜숙 : 이건 아직까지 가족도 모르는 비밀인데 10여년 전 남편이 번 아웃에서 회복한 후 얼마 있다가 제가 향수병에 걸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두말 않고 (물론 제가 나무 도마에 아채를 올려놓고 식칼을 보란 듯이 탕!탕! 두드려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행 4박 5일짜리 비행기표를 끊어 줬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친구랑 놀다가 돌아 오라면서요. 그동안 본인이 아이 둘을 다 봐주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다녀오고 향수병은 씻은 듯이 사라졌죠.
두 분은 관심 분야, 성격, 성향 등 많은 부분이 다르신 것 같아요. 이렇게 다른 두 분이 만나서 쭉 좋아하고 사랑하고 어떻게 이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옥혜숙 : 많이 다릅니다. 저는 운전을 할 때도 익숙한 길로만 다니고 차선도 미리 바꿉니다. 남편은 무조건 처음 가는 길로 가고 차선도 막판에 가서야 바꾸죠. 이런 사소한 차이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몰라요. 대신 집안의 큰 문제를 결정할 때는 둘이 의견을 내고 합리적인 쪽의 손을 쿨하게 들어 줍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서로가 하는 일을 다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관계 유지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결혼 후 딸을 낳고 딸의 병명을 알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셨어요. 이상헌 저자님은 학업을 이어가며 3년 반의 유학 생활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옥혜숙 저자님은 두 아이의 육아와 가정 살림을 하면서 김치 장사, 머리핀 사업에 도전하기도 하셨어요. 아내가 머리핀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말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웃음)
이상헌 :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말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원론적’ 생각이 우선이고요. 물론 생각처럼 늘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게다가 어쩌다가 유학을 와서 저는 제 일로 바쁜 중에, 아내가 자신이 살림을 돕겠다고 나서니, 고마움은 둘째고 제가 뭐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처참할 정도로 부실한 손수레 같은 것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 이후로도 ‘사업’을 몇 번 벌렸는데, 두어 번 실패하고 나니까 알겠더군요. 아내의 사업 수완이 낙제점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내가 절대 불굴의 낙천적 의지의 소유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하려고 할 때마다 기꺼이 심정적 금전적 지원을 해 주되, 항상 액수를 못박아 정해 두었습니다. 아내에게는 ‘투자’라고 했지만, 돈이 아내에게 넘어가는 순간 저는 ‘비용 처리’했습니다 (웃음). 사실, ‘사업’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모두 소소했습니다.
두 분의 에세이를 읽으신 독자들은 분명 옥혜숙 저자님의 낙천성에 반하실 것 같습니다. 남편의 친구들까지 사랑하는 마음,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신 걸까요?
옥혜숙 : 아내가 예쁘면 처가집 기둥만 보고도 절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남편이 예뻐서 그 친구들도 다 좋은가 봐요”라고 대답하면 너무 재수 없겠죠? (웃음) 사실은 제가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 친구, 남편 친구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친구들과 오래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무조건 반갑죠.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환대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됩니다.
닮은 듯 보이지만 성격은 많이 다른 부부입니다. 서로의 장점을 말해 주신다면요?
이상헌 : 마루바닥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걸 보면 혹시 집이 무너질까 걱정하고, 도로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나면 내가 뭘 잘못했나는 먼저 걱정하지만, 큰 일에는 신기할 정도로 낙관적이고 담대해요. 인간에 대한 낙관과 수용도는 엄청나고요.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믿어도 되나 싶을 때도 있는데, 아직 아내가 멀쩡한 걸 보면, 인간에 대한 신뢰는 무한탄력적인가 싶기도 합니다. 좋은 에너지는 남에게 나누어 주고, 나쁜 에너지는 속으로 삼켜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분명 그것 때문에 살이 찐다고 할 겁니다.
옥혜숙 : 저는 늘 손가락만 보고, 나무만 보는데 남편은 달을 보고 숲을 보면서 동시에 손가락과 나무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습니다. 감탄할 때도 많지만 그 때문에 저의 근시안적인 점을 지적 받을 땐 너무 얄미워서 단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분의 회고록이지만 출판물이 되었습니다. 책으로 엮으면서 상상한 독자들이 있을까요?
이상헌 : 책에도 썼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내와 나의 ‘기록’입니다. 기록하면서 ‘독자’를 특정해서 생각할 수는 없죠. 만약 그랬다면, 글의 분위기와 내용이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온전히 둘이서 주고 받는 얘기와 누군가 지켜보는 곳에서 나누는 얘기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원래 상업적 출판을 계획한 책도 아니었던 탓에, 이 책은 독자를 깡그리 무시한 ‘부부의 독백’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어요. 초고를 읽어 보신 분들이 ‘상업적 성공’을 위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는데, 머리로는 백 번 공감하면서도 결국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 포기했습니다. 둘이서 잠옷 입고 나눌 얘기를 정장을 갖춰 입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이 ‘독백’에서 뭔가 ‘공유’와 ‘공감’의 틈이 있어서 독자들이 그 틈에서 자신의 ‘독백’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런 바람대로 될 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옥혜숙 : 남편 말대로 이 글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기록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상상했던 독자층은 없습니다. 다만, 저와 관계된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 글을 읽음으로써 말로만 듣고 상상했던 저희 생활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부부가 전하는 조언이 궁금합니다.
이상헌 : 이것도 우리가 걱정했던 질문입니다. (웃음) 결혼 30주년으로 이렇게 부부가 책을 낼 정도면 뭔가 대단한 부부 아닌가 하는 환상이나 착각이 생길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그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감할 수 밖에요. 우리도 자주 티격태격하고, 새로운 일이 생기면 생각이 갈라집니다. 같은 경우가 별로 없더라고요. 수십 년을 같이 살면, 생각이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해 볼 능력이 조금 생길 뿐입니다. 다른 생각을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이 늘어나는 거지요. 그걸 ‘지혜’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 싶지만, 생각해 볼수록 이건 성실한 관찰을 통해 체득하는 ‘요령’에 불과해요. 아내와의 ‘특수 관계’에만 써먹을 수 있지, 보편적인 관계에는 아무 쓸모가 없거든요. 이런 특수하고 기술적인 것은 ‘요령’이지, ‘지혜’는 아닌 것 같아요. 오래 살면 생각이 같아진다는 신화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나는 심지어 선거 때 투표하는 곳이 달라요. 서로 물어보는데 절대 답해주질 않습니다 (웃음)
옥혜숙 :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거 말고는 진짜 잘 모르겠어요. 혹시 제가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는데 그거 때문일까요? (웃음)
부모로서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셨나요?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상헌 : 사람들이 물어볼까 노심초사 걱정했던 질문입니다. 부끄럽지만,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가 살아간다고 바둥거렸기 때문에, 이상적인 부모상이나 자녀교육법은 없었어요. 설혹 그런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실천하지 못했을 겁니다. 크게 나쁜 일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쓸데없이 목소리 높여 싸우지 않고, 아이들과 종종 싸우고 미안하다고 하고. 그런 기억뿐이지요. 고압적이지 않은 부모가 되려고 하긴 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심했어요. 아내가 달리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유독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여행도 같이 가고 식사 자리에 부르고 했지요. 그런데 둘이 곧 헤어져 버렸어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나 뭐래나. 하도 어이가 없고 해서, 우리 부부는 마치 우리 일인 양 아쉬워했습니다. 자녀 일에 가장 몰두했던 시기였지 싶습니다 (웃음).
옥혜숙 : 너무 아이들을 성의 없이 키운 것 같아서 한 번 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잘해보고 싶습니다. 근데 솔직히 한 번으로 족하네요. 그래도 한 가지 자녀 양육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절대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거의 잘 지킨 것 같습니다.
최근 읽으신 책 중에 정말 좋았다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상헌 :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책은 루신의 일기였습니다. 이 엄청난 사상가가 남긴 일기가 무려 2천 쪽이 넘는데 다 읽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거든요. 대부분은 “별일 없음”이라고 적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굉장히 통쾌했어요. “별일 없음”을 갈망하나 봐요. 물론 다른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웃음)
옥혜숙 :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입니다. 그 중에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로마의 인사법이 나오는데요. 혐오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함께와 더불어의 가치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 좋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잘 나타나는 인사말이죠.
이상헌 저자님은 <한겨레>에서 '이상헌의 바깥길' 칼럼을 연재하고 계시죠. 단독 저서 집필 계획은 없나요?
이상헌 : 아직은 없습니다. 요즘은 약간 무기력한 느낌도 있습니다. 최근의 정치적 변동도 그렇고, 제가 속한 세대가 지금 과연 사회적 발언권이 있나 싶기도 하구요. 지금도 신문 칼럼을 쓰고는 있지만, ‘바깥’ 쪽 얘기만 쓰고 있습니다. 곧 그만 써야겠다고 하고 있는데, 아직 떠밀려 쓰고 있습니다. 직장 일이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또다른 이유가 되겠습니다. 꼭 한번 쓸려고 하는 책이 있긴 합니다. 제 전공분야인 고용과 노동에 대한 ‘대중적 학술서’, 말하자면 쉽게 쓰고 일상의 친숙한 소재를 가져오되 엄밀한 증거와 분석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이지요. 그런데, 그런 불가능성이 신통하게도 꽤 힘이 되어, 지금도 열심히 챙겨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상헌 "이상헌은 나의 아빠다. 늘 내게 큰 영감을 준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거실에 시집, 소설, 자서전, 경제 서적 등 다양한 책이 나열된 도서관을 마련해주었다. 아빠는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컸는데, 그건 큰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보다도 그의 타고난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난 아빠가 스위스에서 경제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매일 직접 지켜봤다. 아빠는 늘 곧고 정직한 것을 추구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며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모습에서 나도 많이 배웠다. 아빠는 옳은 것과 정직한 것을 위하고 다른 이를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빠가 마련해주신 서재의 책들을 읽지 못했고 아빠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하지만, 아빠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신중히 고려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두 저자의 아들, 이재원 씀) *옥혜숙 "옥혜숙은 나의 엄마다. 집 안에 늘 기쁨을 가져다준다. 언제나 재미있고, 밝은 웃음과 미소로 방을 환하게 비춘다.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며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모습이 감탄스럽다. 나는 매일매일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를 아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엄마는 한인회 행사에서 무대를 장악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1등 상도 타온다. 외향적인 성격과 열린 마음 덕분에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쉽게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친구들을 집에 자주 초대한다. 어머니가 다이어트에 실패하거나 불어를 배우는 데 어려워할 때마다 장난으로 놀리곤 하지만, 사실 나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배운 것이 많다." (두 저자의 아들, 이재원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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