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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에게 전하는 위로

『백년을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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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에서 눈길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내 삶과 작별하기 전 가장 그리울지도 모를 시절을. (2022.04.22)

요즘 잘 나오고 잘나가는 책들을 보면 N잡이나 파이프라인, 조기 은퇴 같은 키워드들이 많다. 이들이 수렴하는 것은 파이어족, 즉 빨리 돈을 모아서 조기 은퇴하고 젊을 때 즐기며 살겠다는 포부다. 그게 가능하다고?

파이어족을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투자든 N잡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한 저자들이 나온다. 가능하다고 하니 솔깃해 한 권 읽어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취업준비생이었을 때, 이 광활한 도시에 내 직장 하나 없을까 하며 쏟아지는 탈락 문자들을 꾹꾹 삼키곤 했다. 붙여만 주신다면 세상을 구할 기세였고, 정년까지 꽉꽉 채워 다니겠노라 다짐했다.



누구나 그렇듯 관성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들은 직장에서 소속감과 안정된 삶을 부여받지만, 한편으로는 노동해야 하는 삶에서 탈출을 꿈꾸기도 한다. 예전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다가 시지프스의 형벌이라는 신화를 알게 되고, 잠시 현기증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지프스는 죄를 지어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고통 속에 정상으로 올려놓으면 바위는 반대편으로 굴러가고, 다시 또 밀어 올려야 하는 반복. 이 부조리함을 카뮈는 인간의 삶에 연결시킨다. 고단한 일상의 반복과 비슷하다고 느껴진 찰나, 나는 잠시 휘청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파이어족이든 자산 증식이든, 무엇이 목표인지는 모르겠으나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책들에 관심이 가던 요즘,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 백 년을 살아 본 사람은 파이어족.. 아 아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서른여덟인 나는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철학계 원로이자, 100살이 넘어서도 현역이신 김형석 교수. 삶의 의미와 수익률이란 단어 속에서 헤엄치고 있던 내게, 또 다른 구명조끼가 되어줄 것 같았다. 1920년생으로 이 나라에서 흘러간 격동의 세월을 다 겪어낸 분의 삶과 단순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온, 또는 살아내 온 저자가, 100여 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사랑이 있는 고생'이었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휘청했다.

50년이 지난 후를 떠올려봤다. 사랑하는 아내, 가족, 친구들과 이별을 앞두고 인사를 나눌 때, 지나온 내 삶에서 가장 그리운 순간은 언제일까. 어제 산 주식이 상한가 쳤을 때? 물론 그것도 조금은 그립겠지만, 아마 그 순간은 바로, 이들과 고생스러운 삶 속에서도 사랑이 가득했던 시절일 거라 확신한다. 물론 고생 없는 사랑이 더 낫지만, 고생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으로 삶을 채워 갔을 때가 더 그리울 것은 직관으로 안다.

언젠가 아내가 나는 너무 앞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그랬던 것은 현재가 고생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드는 것. 다른 말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여전히 지향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에서 눈길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내 삶과 작별하기 전 가장 그리울지도 모를 시절을.



백년을 살아보니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저
덴스토리(DE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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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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